멋진 여우 씨 동화는 내 친구 48
로알드 달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 논장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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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69


미련한 세 사람은 여우를 잡으려고 악쓰는데
― 멋진 여우 씨
 로알드 달 글
 퀸틴 블레이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7.2.15./2017.3.15. 9000원


  1916년에 태어나고 1990년에 숨진 로알드 달 님은 1970년에 ‘fantastic Mr.Fox’를 씁니다. ‘여우 씨’를 다루는 어린이문학입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여러 나라에서 널리 사랑받다가 2009년에 〈판타스틱 Mr. 폭스〉라는 이름을 붙인 영화로 새로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2007년에 비로소 한국말로 옮깁니다. 2017년에 이 어린이문학이 새 옷을 입습니다. ‘로알드 달이 태어난 지 100돌’을 맞이한 뜻에서 새 옷을 입혔다고 합니다.

  영화로도 재미있지만 책으로도 재미있습니다. 영화는 영화 나름대로 곁이야기를 여러모로 입혀서 보여주고, 책은 책 나름대로 ‘여우 씨’가 숲에서 어떻게 사람들하고 맞서면서 슬기롭고 놀라운 생각과 재주를 뽐내는가 하는 대목을 도드라지게 보여줍니다.


여우 씨는 말을 하려다가 멈추더니 한숨을 쉬고는, 슬프게 고개를 저었어요. 여우 씨가 다시 주저앉았어요. “소용없어. 어차피 안 될 거야.” “왜요, 아빠?” “굴을 더 파야 하는데, 사흘 밤낮을 굶었으니 우리에게 그럴 기운이 남아 있겠어?” 새끼 여우들이 벌떡 일어나 여우 씨한테 우르르 달려가며 소리쳤어요. “아니에요, 팔 수 있어요, 아빠! 할 수 있어요. 하는지 못하는지 한 번 보세요! 아빠도 할 수 있고요!” 여우 씨는 새끼 여우들을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59쪽)


  숲에서 사는 여우 씨는 수수한 수여우는 아닙니다. 이 여우 씨는 사람들이 가꾸는 농장에 슬그머니 들어가서 닭이나 거위나 칠면조를 훔치거든요. 대단히 날렵한 사냥꾼이요 몹시 뛰어난 숲짐승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와 달리 농장에서는 이 여우 씨를 끔찍하도록 싫어합니다. 여우 씨는 으레 세 군데 농장에서 집짐승을 훔쳐요. ‘보기스’네 농장에서 암탉을 훔치지요. ‘번스’네 농장에서 오리나 거위를 훔쳐요. ‘빈’네 농장에서 칠면조를 훔치고요.

  세 농장 임자인 보기스랑 번스랑 빈은 가멸찬 살림입니다. 여우 씨가 가끔 닭이나 거위나 칠면조를 훔친들 대수롭지 않을 만합니다. 그러나 이들 셋은 좀 미련하면서 까탈스럽습니다. 먼저 보기스는 날마다 고기만두를 듬뿍 곁들인 삶은 닭만 먹어요. 번스는 도넛하고 거위 간만 먹어요. 빈은 칠면조를 엄청나게 키웠지만 능금 농장도 하면서 밥은 한 톨도 안 먹고 오직 능금술만 마셔요.

  이러다 보니 마을에서 아이들은 세 농장 임자를 놓고 놀리는 노래를 지어서 부른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보기스, 번스, 빈 / 뚱뚱보, 땅딸보, 말라깽이 / 이 지독한 악당들은 / 생김새는 영 딴판이지만 / 마음씨는 똑같이 치사하고 못됐다네.” 하고.

  마을 아이들이 이렇게 부르는 노래를 듣는 세 농장 임자는 어떤 마음일까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세 아저씨는 마음씨를 다잡거나 추스르거나 고칠까요? 아니면 더욱 미련스럽거나 까탈스럽게 굴까요?


여우 씨가 명령했어요. “기다려! 정신 차리렴! 뒤로 물러서! 진정해라! 일을 제대로 해야지! 일단 다들 물부터 마시렴!” 새끼 여우들은 닭의 물통으로 달려가서 달고 시원한 물을 할짝할짝 마셨어요. 그러고 나자 여우 씨가 가장 통통한 암닭 세 마리를 골라 솜씨 좋게 꽉 물어서 바로 숨통을 끊어 놓았어요. (67쪽)


  로알드 달 님은 어린이문학 《멋진 여우 씨》로 여우 씨하고 세 농장 임자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 여우 씨는 여느 날처럼 세 농장 가운데 한 곳을 골라서 즐겁게 사냥을 하려고 여우 굴을 나서다가 그만 총알질을 받습니다. 여느 날하고 바람이 다르게 부는 줄 더 깊이 살피지 않은 탓에 그만 세 농장 임자가 저희 여우 굴을 둘러싸고서 잔뜩 벼르며 총알을 잰 줄 알아채지 못했어요.

  이때에 여우 씨는 꼬리가 잘립니다. ‘멋쟁이’ 여우 씨는 그만 꼬리 없이 볼품없는 여우 씨가 됩니다. 그러나 일은 여기에서 안 그치지요. 세 농장 임자는 이 여우한테서 꼬리만 빼앗고 싶지 않거든요. 세 농장 임자는 여우네 식구들 목숨을 모조리 빼앗고 싶습니다.

  세 농장 임자는 처음에는 삽으로 굴을 파헤쳐요. 나중이는 기계를 가져와서 파헤치고요. 그렇다면 여우 씨는? 여우 씨는 온 식구가 죽어라 굴을 파서 더 깊이 들어갑니다. 세 농장 임자하고 여우 씨네 식구는 땅파기를 겨루면서 살아남느냐 잡느냐 하는 싸움을 벌입니다.


오소리가 분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자네 탓인 줄 다 아네! 농부들은 자네를 잡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불행히도 자네가 잡힌다는 건 우리도 잡힌다는 거지. 이 언덕에 사는 모두가 말이야.” 오소리는 한 발로 어린 아들을 감싸며 나직하게 말했어요. “우린 끝장이야. 가엾은 내 아내는 굴을 1미터도 팔 기운이 없다네.” (76쪽)


  여우 씨가 괜히 사람 농장을 건드렸기 때문에 온 식구가 죽을 고비를 맞이하도록 한 셈일까요? 여우 씨는 사람 농장은 안 건드려야 했을까요? 농장을 하는 사람들은 좀 너그러울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농장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어느 쪽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해요. 여우 씨는 사냥을 하러 갈 적에, 그러니까 보기스나 번스나 빈네 농장에 집짐승을 훔치러 갈 적에 더 꼼꼼히 둘레를 살폈어야겠지요. 보기스나 번스나 빈 세 사람은 ‘좋아하는 한 가지’만 먹으면서 늘 몸이 아프거나 뚱뚱해지거나 까탈스러워지는 모습을 털어낼 수 있으면 좋을 테고요.

  여우가 가끔 저희 집짐승을 한두 마리 훔친들 수천 수만 마리에 이르는 대단한 재산을 헤아린다면 아무것도 아니라 할 만해요. 이 대목에서 더 살핀다면, 사람들이 커다랗게 농장을 하는 탓에 숲짐승은 보금자리가 줄어들고 사냥터도 빼앗겼지요. 숲짐승 여우 씨로서는 먹잇감을 찾으러 사람 농장에 갈 수밖에 없는 얼거리이기도 합니다.


여우 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여, 지금부터 심각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내일과 모레와 글피를 생각해 봅시다. 밖으로 나간다면 우린 죽을 겁니다. 그렇죠?” “그래요!” 모두들 입을 모아 소리쳤어요. 오소리가 말했어요. “1미터도 가기 전에 총에 맞을 거요.” 여우 씨가 말했어요.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밖에 나가고 싶은 분 있나요? 우리는 다들 굴을 잘 팝니다. 바깥을 싫어하고요. 밖에는 적들이 득실거립니다.” (121∼122쪽)


  《멋진 여우 씨》라는 어린이문학에서 ‘여우 씨’가 그냥 여우가 아닌 ‘멋진 여우’라는 이름이 붙는 까닭을 돌아봅니다. 이 여우 씨는 죽음이 코앞에 닥친 때에 머리를 번득이면서 ‘여우는 굴을 잘 판다!’는 생각으로 온 식구가 힘을 모아 굴을 더 깊이 파서 저 무시무시한 삽차한테서 벗어나자고 이끕니다. 이다음으로는 새롭게 생각을 번득여서 ‘보기스 번스 빈’ 셋이 여우 굴 어귀에서 더 깊이 파헤치는 데에만 사로잡혔으니, ‘여우 굴 파기 솜씨’를 부려서 세 농장 밑으로 굴을 내어 숨어들면 어떠할까 하고 아이들(새끼 여우)을 북돋웁니다.

  여우 씨는 ‘번득이는 생각’을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세 농장 사람이 삽차로 온 숲을 파헤치면서 여우 식구를 찾아내려고 눈알을 부라리는 터라, 다른 숲짐승은 보금자리를 잃고 먹이마저 잃습니다. 이때에 여우 씨는 ‘모든 숲짐승’이 땅밑에 넓게 굴을 새롭게 파서, 또 이 굴을 바로 ‘보기스 번스 빈네 농장 밑’에 파서,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즐겁게 살아 보자고 이끌어요.

  자, 그러면 세 사람, 보기스랑 번스랑 빈은 무엇을 할까요? 이 세 사람은 삽차를 써서 땅을 어마어마하게 깊이 판 뒤에 천막을 치고 총을 거머쥔 채 굴을 지키기로 합니다. 여우 식구는 틀림없이 굶고 지쳐서 뛰쳐나올 테니 그때까지 이 녀석들을 기다렸다가 한 방에 골로 보내자고 생각하지요. 언제까지나, 내내, 하염없이, 마음속에 아무런 꿈이 없이 그저 여우를 총으로 쏘아죽이겠다는 생각만 품고서. 2017.4.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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