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장치의 사랑 1
고다 요시이에 지음,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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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0



로봇은 노예가 아니라서 눈물 흘릴 줄 알아요

― 기계 장치의 사랑 1

 고다 요시이에 글·그림

 안은별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4.11.28. 11000원



  누가 저한테 이렇게 묻습니다. “최종규 씨는 국어사전 쓰는 일을 하신다는데, 만화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시는 줄 몰랐어요. 어떻게 만화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셔요?” 저는 이 물음에 싱긋이 웃으면서 대꾸합니다. “한국말사전은 우리 생각을 말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아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북돋우는 책이에요. 만화책은 글하고 그림을 아름답게 엮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에요. 그래서 말을 다루며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엮는 일을 하는 저로서는, 만화책이 우리한테 베푸는 ‘삶을 사랑으로 마주하며 곱게 그리는 꿈’이라고 하는 대목을 배워야 한다고 느껴요. 만화책을 읽으면서 한국말사전을 즐겁게 쓴답니다.”


  제 대꾸가 뜬금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다 요시이에 님이 빚은 만화책 《기계 장치의 사랑》(세미콜론 펴냄)을 읽어 보신다면, 제 말을 좀 알아차려 주실 만하리라 생각해요. 책이름부터 남다른 “기계 장치의 사랑”이에요. ‘로봇’이 노예가 아닌 사랑이 흐르는 숨결이라고 하는 대목을 비추는 만화책입니다.



‘이번에도 난 중고로 팔려가게 될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날 산 사람도 있었어. 이상한 짓을 하려고 구입한 사람도 있었지. 다음엔 어떤 사람에게 팔려가게 될까.’ (12∼13쪽)


“누구야, 쟤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같이 살았던 로봇이란다.” ‘그때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이 (로봇) 녀석, 울고 있어요.” “설마, 오일이 새는 거겠지.” (21쪽)


“이 (로봇) 아이, 예전에 길렀던 적이 있거든요.” “아, 그렇지만 메모리는 이미 삭제했는데.” “괜찮아요. 제가 기억하니까요.” (24쪽)



  《기계 장치의 사랑》은 아홉 가지 로봇 이야기를 짤막하게 다룹니다. 아홉 가지 로봇 이야기를 읽는 내내 눈시울이 촉촉합니다. 맨 처음 이야기에서는 ‘어린이 로봇’를 다루는데, ‘어린이 로봇’을 심심풀이처럼 다루는 어른이 있고, 괴롭히는 어른이 있어요. 그리고 수많은 어른들 가운데 이 어린이 로봇을 오롯한 사랑으로 안아 준 어른이 꼭 하나 있어요.


  늘 버림받고 생채기를 입던 어린이 로봇은 어느 날 ‘메모리 장치에 남은 따스하고 즐거운 추억(또는 기억)’에 따라서 그 따스한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그 따스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길에 이 어린이 로봇은 눈물을 흘려요.


  어린이 로봇이 ‘다른 사람 임자한테서 달아났다’며 붙잡으러 온 정비공들은 로봇 따위가 무슨 눈물을 흘리느냐고, 그저 기름이 샜을 뿐이라고 말해요. 그러나 어린이 로봇은 정비공이 아무리 닦아내도 사라지지 않는 눈물 자국을 눈 밑에 냅니다.



“반장님.” “뭐야.” “우린 지금 뭘 굽고 있는 걸까요.” “음, 그건 나도 모르지.” “그렇군요.” “시키는 일을 할 뿐이지.” (31쪽)


“어렴풋이 눈치챈 녀석들도 있겠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 자기들이 로봇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게 되니까. 그래서 자네 같은 열등 로봇을 점포마다 한 대씩 배치해 놓은 거야. 인간들이 우리 기계에게 열등감이나 혐오감을 갖지 않게 하려고.” (60쪽)



  기계 장치한테 마음이 있을까요? 기계 장치는 그저 쇠붙이나 플라스틱 껍데기일 뿐일까요? 우리가 쓰는 손전화나 셈틀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가 타는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나 비행기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연필이나 볼펜에는, 또 공책이나 책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돌이나 바람이나 비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모래나 물고기나 바다에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리고 우리 사람한테는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는 참말 사람으로서 사람다우며 ‘마음’이 있는 살림을 짓는다고 할 만할까요?



‘확실히 나 역시, 보노보 녀석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이 녀석에겐 아무래도 인격 비슷한 게 있달까. 나 역시 보노보 덕에 몇 번이나 목숨을 건졌는지 몰라.’ (99쪽)


“넌 늘 책만 읽는군. 인터넷에서 데이터로 받으면 1초 만에 머릿속에 들어가는 거 아니었나.” “그런 건 독서가 아니지요. 이렇게 눈으로 좇으며, 천천히 체험하며 읽어야 독서겠죠.” “자꾸 웃는데 말야, 유머소설인가?” “하하. 아니요 인간의 어리석음을 묘사한 소설입니다. 먼 옛날 소설이지만, 작가의 독기에 웃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101쪽)



  만화책 《기계 장치의 사랑》은 사람과 기계 사이에 흐르는 삶을 조용히 건드립니다. 기계와 기계 사이에 흐르는 삶을,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삶을 넌지시 짚습니다.


  사람이 기계나 로봇을 만든다면, 왜 만들까요? 노예처럼 부려먹으려고 기계나 로봇을 만들어서 쓰나요? 즐겁게 기계나 로봇을 마주하면서, 사람으로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거나 밝히거나 나누려고 하는 뜻일까요?


  그런데 사람은 전쟁무기를 만들어요. 기계나 로봇뿐 아니라 총칼도 만들고 미사일과 폭탄도 만들지요. 끔찍한 핵폭탄까지 만드는 사람이에요. 우리 사람한테 참말로 착한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 있다면, 전쟁무기를 굳이 만들어야 했을까요? 우리 사람한테 참으로 맑은 마음이나 밝은 마음이 있다면, 수많은 전쟁과 차별과 계급을 언제쯤 없앨 만할까요?



“마사루 군이잖아.” “생각났어? 나, (보모 로봇) 마시가 20년 전에 길러 줬던 혼다 마사루야.”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다니, 못 알아볼 뻔했어.” “마시 손에 자란 아이들은 절대 마시를 잊지 못해. 나만 해도 그래서 이 회사에 들어왔을 정도야. 마시가 가르쳐 준 사랑은, 누구라도 평생 못 잊을 거야. 그러니 걔도 괜찮아!” (130쪽)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그놈(재벌·권력자)들의 소유물이 아니야! 자연의 것이다. 그거야말로 하느님의 것이라고!” (213쪽)



  한국말사전은 낱말만 잔뜩 담은 창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지식이나 정보만 담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계나 로봇은 우리 사람이 일만 시키면서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식이나 정보도 대수롭지만, 지식이나 정보를 슬기롭게 다스리면서 사랑스레 나눌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대수롭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은 사전으로서 삶을 아름답게 비추는 구실을 하도록 말을 담을 노릇이에요. 책은 책으로서 사람마다 살림을 스스로 기쁘게 짓는 길동무 노릇을 해야지 싶어요.


  눈물을 지을 줄 아는 로봇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웃음을 지을 줄도 아는 로봇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람도 이와 같아요. 우리는 사람으로서 눈물하고 웃음이 함께 있어요. 여기에 노래랑 춤도 함께 있어요. 사람이 로봇을 지어내어 곁에 둔다면, 로봇은 일만 해야 하는 노예가 아닌, 사람하고 함께 웃고 울며 노래하고 춤추는 아름다운 삶을 나누는 벗님이지 싶습니다. 2017.3.1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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