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 -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의 실전 노하우
아라이 요시미 & 가가미야마 에츠코 지음, 최성현 옮김, 가와구치 요시카즈 감수 / 정신세계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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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9



“열 해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옛말을 곱씹다

―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

 아라이 요시미·가가미야마 에츠코 글

 최성현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2017.1.31. 22000원



  우리 옛말을 생각합니다. “열 해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있어요. 이 옛말을 조금 더 헤아리면 “열 해이면 숲이 바뀐다”라든지 “열 해이면 숲이 된다”로 생각해 볼 만합니다.


  이런 생각이 요새 문득 들어요. 저는 도시를 떠나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 깃든 지 2017년 올해로 일곱 해째입니다. 일곱 해쯤 땅갈이를 안 하고 뒤꼍을 묵히면서 지켜보니 ‘땅이 어떻게 살아나는가’ 하는 얼거리가 살짝 보입니다. 앞으로 세 해를 더 지켜볼 수 있다면 ‘왜 예부터 열 해를 말했는지’ 환하게 알아차리리라 느껴요.


  다만 누구나 땅뙈기를 열 해씩 묵히기란 만만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땅 한켠은 갈아서 이것저것 심으며 돌볼 수 있어요. 그리고 땅 한켠은 그대로 두면서 열 해쯤 어떤 풀이 나고 지는가를 살필 뿐 아니라, 땅이랑 흙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몸으로 배워야지 싶습니다.



논밭이 있는 생활, 대자연 속에서 그 은혜들 가운데 사는 시골 생활은 참으로 즐겁고 뜻깊다. 마음을 담아 보살핀 채소가 저절로 자라는 걸 보며 날마다 감동한다. 아침 해에 두 손을 모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밭에 가면, 잘 자란 잎사귀 속에서 여기저기 드러내는 꽃봉오리 또한 감동이다. (8쪽)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정신세계사,2017)은 아주 뜻깊은 ‘자연농 길잡이책’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이 태어나도록 자연농을 일군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은 농약 안 쓰고 비료 안 쓰고 비닐 안 쓰는 시골살이를 하는 동안 다음처럼 두 가지 일을 겪었다고 해요.


  첫째, ‘세 해 동안 논은 다 죽었다’고 합니다. 둘째, ‘열 해 동안 논밭에서 잘못을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농약이나 비료나 비닐이 없이 땅을 짓던 지난날에는 ‘누구나 다 알고 슬기롭게 흙을 살렸’습니다만, 일본이든 한국이든 ‘근대 농법’이 스며들면서 ‘예전에는 누구나 다 알던 흙살림’을 이제는 ‘누구나 다 모르는’ 얼거리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래서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은 열 해에 걸쳐 논은 세 해 동안 다 죽이면서 배우고, 밭은 열 해 동안 잘못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배웠다고 해요.



풀이나 벌레, 소동물이 나고 죽고, 그 자리에 쌓여가며, ‘주검의 층’이 생기고, 거기에 미생물이 활동하며, 더욱 생명력이 넘치는 땅으로 바뀌어 간다. (15쪽)


갈면 일시적으로 흙이 부드러워지지만 곧바로 딱딱해집니다. 그러므로 한 번 갈면 다시 갈아야만 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 자연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도 간다거나 비료를 준다거나 하지 않는데도 나무는 크게 자라고 이윽고 숲이 되고, 산채나 버섯 따위가 해마다 돋아난다. (16쪽)


자연 생태계의 균형이 지켜지고 있을 때는 병도, 해로운 벌레도 생기지 않는다. (17쪽)



  ‘자연농’이란 ‘갈지 않는 흙살림’입니다. 우리는 쉽게 ‘자연농·유기농·화학농(관행농)’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은 모두 일본에서 들어왔어요. 일본에서 ‘농법’을 놓고 붙인 한자말 이름을 한국에서 고스란히 받아들였지요.


  이 세 가지를 한국사람이 쉽게 알아듣도록 고쳐 본다면, ‘흙살림←자연농’, ‘거름짓기←유기농’, ‘농약짓기←화학농(관행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농은 흙을 살리는 시골살림이에요. 유기농은 거름을 쓰는 시골살림이지요. 화학농은 농약이며 기계이며 비료이며 비닐을 잔뜩 쓰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흙살림을 하면서 거름을 내어 흙을 더 북돋울 수 있어요. 거름짓기인 유기농을 하는 분 가운데에는 비닐이나 비료를 함께 쓰는 분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에 바탕이 된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 자연농은 열 해 동안 쓴맛을 본 끝에 실마리를 얻었다고 해요. 이 대목에서 ‘기적의 사과’를 짓는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일본 할아버지를 떠올려 봅니다. ‘기적의 사과’는 자연농처럼 능금밭에서도 농약뿐 아니라 비료도 안 쓰고 풀을 그대로 두되 한 번쯤 살짝 낫으로 쳐 주기만 하면서 지어서 나온다고 합니다. 흙을 살리면 능금나무는 저절로 살아난다지요. 그런데 이 놀라운 능금밭을 일군 일본 할아버지는 아홉 해 동안 쓴맛을 보았다고 해요. 열 해째에 이르러 ‘흙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키가 큰 풀이 나는 곳은 기름지다. 이런 곳에서는 양분이 많이 필요로 하는 가지, 양파, 양배추, 배추, 브로콜리, 옥수수, 호박 등이 잘 자란다. (23쪽)


농사란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고,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작물의 생명 활동을 비롯하여 논밭 안의 온갖 생명의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 자연농의 큰 매력이다. (26쪽)


밭을 벌거숭이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건조와 가뭄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고, 물을 줄 필요가 없어진다. (29쪽)



  짧지 않은 나날을 쓴맛으로 보내면서 온몸으로 배운 끝에 내놓은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인 터라, 이 책은 아주 쉽고 부드럽게 흙살림을 알려줍니다. 다만 이 책은 흙살림을 이야기해요. ‘농업이라는 산업’을 다루지 않습니다. 흙을 지어서 ‘자연농 곡식이나 남새나 열매로 돈을 버는 길’을 다루지 않습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어디에서나 우리가 즐겁게 흙을 살리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흙을 살리면서 마음을 살린다고 해요. 흙을 살리기에 마을이 살아난다고 해요. 흙을 살리는 동안 숲이 함께 살아나고, 흙을 살리는 사이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살가이 어우러지는 잔치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흙살림이라면, 또 자연농이라면, 그리고 시골살림이라면, 바로 여기에 뜻이 있다고 느껴요. 더 많은 돈을 벌자는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먹고 스스로 삶을 사랑하자는 흙살림(자연농)이에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손수 지을 수는 없으나 하나씩 새롭게 배우지요. 이동안 기계나 석유나 문명에 기대지 않고도 즐거운 살림을 아이한테도 물려주고 어른 스스로도 씩씩하게 서자는 뜻을 밝혀 주어요.



풀은 이유가 있어서 거기 나는 것이다. 필요가 없어지면 다른 풀로 바뀌어 간다. 그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풀은 자유롭게 잎을 내고, 땅속으로 뿌리를 뻗고, 공기 중이나 땅속에서 영양을 모으고, 그 자리에서 썩어 가며 생명을 늘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풀은 되도록 베지 않고, 가능한 한 그 자리에서 일생을 마치게 한다. (35쪽)


새가 작물을 먹어버리면 속이 상한다. 하지만 새는 벌레를 잡아먹어 밭의 조화를 찾아 주는 역할도 한다. (56쪽)



  새로 맞이하는 봄에 쑥을 뜯습니다. 쑥을 뜯는 밭은 바로 농약 한 방울 안 친 자리입니다. 농약을 마구 친 자리에서는 쑥을 못 뜯습니다. 겨우내 농약을 뿌린 마늘밭 언저리에서는 쑥을 못 뜯어요. 멧골에 들어 나무를 캐는 까닭은 멧골에는 아무도 농약을 안 치기 때문입니다.


  시골살림을 꿈꾸는 이웃님이라면, 또 도시에서 싱그러운 숲정이를 바라며 아기자기한 마을살림을 바라는 이웃님이라면, 이 어여쁜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을 곁에 두고서 즐겁게 흙살림을 배워 보시면 좋겠어요. 맨손으로 만질 수 있는 흙, 맨발로 디딜 수 있는 흙, 바로 이 흙에서 씨앗이 자라고 우리 보금자리가 싱그럽게 깨어나요.


  그런데 한 가지, 이 책이 아쉬운 대목은 있습니다. ‘누른다’나 ‘다지다’라고 하면 되는데 ‘진압한다’라는 일본 한자말을 씁니다. ‘갈다·안 갈다’라 하면 되는데 ‘경운·무경운’이라고 적어요. ‘씨뿌리기’를 ‘파종’으로 적지 않아도 되고, ‘씨앗받기’를 ‘채종’으로 적지 않아도 돼요. 흙살림을 처음 마주하는 분한테는 꽤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본 한자말은 다음 쇄에서 찬찬히 걸러내 준다면 더 좋겠어요. 2017.3.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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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2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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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2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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