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야샤 1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80



오백 해를 가로지르는 따순 마음

― 이누야샤 1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3.25. 4500원



  만화책 《이누야샤》는 500년이라는 나날을 우물을 사이에 두고 가로지르면서 만나는 두 사람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본에서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열두 해에 걸쳐 나온 작품이며, 만화영화로도 나왔어요. 한국에서는 한때 ‘견야차’라는 이름으로 해적판이 나왔으나, 2002년부터 정식계약을 맺은 번역판이 나왔습니다.



(1400년대 일본 전국시대) “이것을 내 몸과 함께 태워 다오. 두 번 다시 사악한 자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사혼의 구슬은 내가 저 세상으로 가지고 가겠다.” (9∼10쪽)



  첫 회가 나온 지 어느덧 스무 해 남짓입니다. 1996년 첫 연재에 나오는 배경은 1999년이라고 합니다. 1999년에 살던 열다섯 살 푸름이가 어느 날 ‘집으로 들어온 지네 요괴’한테 붙잡혔다가 풀려나면서 ‘집에 있는 오래된 우물’에 빠져요. 이러다가 1400년대 옛날로 넘어간대요. 이때에 열다섯 살 푸름이는 무엇을 느낄 만할까요? 두려움일까요? 무서움일까요? 새로움일까요? 또는 모험이나 용기나 어떤 다른 이름을 붙일 만한 마음일까요?


  ‘(만화 배경으로 본다면) 아니 2000년대를 눈앞에 둔 때’에 웬 지네 요괴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테지요. 더구나 ‘뜬금없다 싶은 지네 요괴’에 뒤이어 자그마치 오백 해를 거슬러 올라가서 짚으로 지붕을 잇고 자동차는커녕 자전거조차 없을 뿐 아니라, 온통 숲이요 들뿐인 시골마을에 떨어진다면? 이리하여 자칫 ‘내가 살던 1999년’으로 못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느낌이 될까요?



(1999년 일본 도쿄) “사혼의 구슬?” “음, 이것만 있으면 가정은 화목하고 사업은 번창하지.” “이걸 팔겠다교, 할아버지? 그냥 유리구슬인데?” (11쪽)



  만화책 《이누야샤》를 이루는 큰 줄거리는 ‘사혼 구슬’을 둘러싸고 흐릅니다. ‘사혼 구슬’을 거머쥐면 엄청난 힘을 끌어내어 쓸 수 있다고 여긴다고 해요. 요괴도 사람도 이 구슬을 손에 쥐려고 용을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1400년대 이야기예요. 1999년 언저리에 보기에 사혼 구슬은 그저 흔한 유리구슬 같다고 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이 사혼 구슬을 손녀딸 생일선물로 주려고 하는 할아버지는 “가정 화목 사업 번창”을 이야기하고요.



‘방금 그건 뭐였지? 꿈? ……이 아니야.’ (21쪽)


“지네 요괴 같은 조무래기를 상대로 뭘 쩔쩔매는 거야?” (38쪽)


“어쩔 거야, 여자! 여기서 나하고 같이 죽을래?” ‘이, 이런 알 수 없는 곳에서, 죽는 건 싫어! 되살아나라, 이누야샤!’ (53쪽)



  꿈이라 여길 수 없는 일을 삶에서 맞닥뜨리는 열다섯 살 푸름이는 생각을 곧장 추스릅니다. 뜬금없거나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멍하니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곳에 똑 떨어진 셈이지만, 이 새로운 곳에서 뾰족한 수를 찾아보려고 마음을 기울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을 하’고 ‘마음을 써’요. 주저앉지 않습니다. 머무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달리고 자꾸자꾸 길을 걷습니다.



“저 말야. 나는 카고메야. 키쿄우가 아니라. 그러니까 사이좋게 지내지 않을래? 응?” “헹. 너, 바보냐? 네가 누구든 간에, 사혼의 구슬을 뺏기 위해선 인정사정 안 봐줘.” “그치만 네가 아무리 날뛰어도, ‘앉아’ 하고 말만 하면.” (77∼78쪽)


“먹이와 함께 찢어버릴 테다!”“뭐? 바보야! 어린애는 살려야지!” (106쪽)



  만화이기에 마치 꿈 같은 이야기를 지어서 그릴 수 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만화가 아닌 우리 삶이나 사회를 보아도 마치 꿈 같은 이야기가 흐르기도 해요. 터무니없다 싶은 말썽거리로 온 나라가 들끓을 수 있어요. 엉터리라 할 만한 핑계를 대는 사람들을 둘레에서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더없이 아름답거나 착한 사람들을 마치 꿈처럼, 이른바 천사나 요정이라고 느낄 만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해요.


  진작에 연재가 끝난 묵은 만화책을 새삼스레 들추면서 ‘꿈’하고 ‘삶’ 사이에 잇닿는 끈을 헤아려 봅니다. 무엇을 꿈이라 할 만하고, 무엇을 삶이라 할 만한지 곱씹어 봅니다. 오랜 만화책을 되읽는 까닭이라면, 오래도록 꾸준히 사랑받는 만화책에 흐르는 숨결을 되짚고 싶기 때문이에요. 오늘을 비추어 어제를 되새기고 모레를 새로 지어 보려는 마음이 되고 싶기도 합니다. 오늘은 아이로 살지만 모레에는 어른으로 살림을 지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슬기를 가다듬고 싶기도 합니다.


  사이좋게 지내려고 서로 이름을 밝히면서 마음을 여는 몸짓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고빗사위나 벼랑에 몰려도 ‘해야 할 일’이나 ‘지킬 것’을 생각하는 마음을 살펴봅니다. 만화책 《이누야샤》에는 ‘반요(반만 요괴. 주인공 이누야샤)’하고 ‘사람(그저 오롯이 사람. 주인공 카고메)’이 나오고, 이 둘을 둘러싼 숱한 요괴랑 사람이 나옵니다. 마음이 시커먼 요괴나 반요나 사람이 있고, 마음이 맑은 요괴나 반요나 사람이 있습니다.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도무지 사람답지 않은 짓을 일삼는 누가 있어요. 겉모습은 요괴여도 참으로 사람다운 넋을 보이는 누가 있어요. 우리는 겉모습만으로 ‘요괴·사람’을 가릴 수 있을까요? 겉모습만으로도 틀을 가르거나 나눠도 될까요?



‘어쩐지 지금까지의 일이 꿈 같아. 그래도, 저쪽 세계, 괜찮을까?’ (161쪽)


‘이상하다. 유라의 목적이 사혼의 구슬이라면, 목적은 벌써 달성했을 텐데. 나와 이누야샤를 노리고 있나?’ “이누야샤, 돌아가자!” “웬일로 말귀를 알아먹게 됐어?” “사실은 가기 싫지만.” ‘이대로 현대에 있으면,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게 돼.’ (178∼179쪽)



  모두 56권으로 마무리를 지은 《이누야샤》입니다. 56권에 이르는 긴 만화책을 찬찬히 읽어 보면 두 주인공 사이에 흐르는 마음은 겉모습을 넘어서며 이어지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두 주인공을 둘러싼 이웃들한테 ‘겉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설 적에 누구나 마음을 새롭게 열 뿐 아니라, 삶과 사랑도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열 수 있다는 대목을 밝혀 주어요.


  한국말로는 ‘씻김’이고 한자말로는 ‘정화’인데, 사람인 카고메는 바로 이 ‘씻김(정화)’을 합니다.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힘들거나 다치거나 눈물조차 메마른 뭇목숨을 씻길 수 있는 기운이 바로 ‘사람인 카고메’한테 있다고 해요. 이 기운, 바로 모두를 따사로이 어루만지거나 달래거나 품거나 돌볼 줄 아는 기운인 사랑이란, 참말로 만화책 주인공한테만 흐르는 기운이 아닌 ‘사람인 우리 모두’한테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흐르는 기운이리라 생각합니다. 2017.2.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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