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우거진 나무를 타며 놀자
[시골 살림 도감] 나무
시골살림에서 손꼽는 즐거움으로 나무를 으레 꼽아요. 시골살림에서는 흙도 물도 바람도 돌도 풀도 좋아요. 이 가운데 나무는 우리 살림집을 이루어 줍니다. 살아가는 바탕에 나무가 크게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만해요.
나무가 있어 추운 겨울에 불을 지피며 따뜻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기에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얹으면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으니 마루를 깔고 평상을 짜며 책걸상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어 주니 종이랑 연필을 얻어 우리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갈무리해서 책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 동안 온누리에 싱그러운 숨결이 가득하여 맑은 바람을 언제나 즐거이 쐴 수 있습니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살아도 나무를 널리 누릴 수 있어요. 아파트가 아니라면 나무로 지은 오래된 골목집을 찾아 깃들 수 있고, 마당 있는 작은 골목집 한쪽에 나무를 심을 수 있고, 집안 살림살이를 나무그릇으로 바꿀 수 있겠지요.
가만히 보면 우리 겨레는 먼 옛날부터 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나무에서 살림을 얻어요. 나무 곁에서 하루를 누려요. 여름에는 그늘을 베풀어 주는 나무요, 겨울에는 땔감으로 따스한 불길을 나누어 주는 나무입니다. 여름에는 꽃을 주고 가을에는 열매를 주며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 주기도 하는 나무예요.
마당에 나무 한 그루 크게 서니 ‘우리 집’을 쉽게 알아봅니다. 마당에 선 나무 한 그루는 철 따라 해가 어떻게 움직이며 달라지는가를 잘 알려줍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 온갖 멧새가 찾아들어 노래를 부릅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 나비가 알을 낳아 애벌레가 깨어나요. 애벌레는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번데기를 틀고는 새로운 나비로 깨어나지요. 새는 애벌레를 찾아 나무로 찾아들고, 애벌레는 새한테서 벗어나려고 요리조리 숨듯이 자라다가 나비로 거듭납니다.
나무하고 함께 사는 동안 여러 삶을 지켜봅니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 아이들 몸이며 키가 자라요. 갓난쟁이 무렵에는 나무 둘레에서 기더니, 어느덧 나무를 타고 오르려 하고, 나무를 타고 오를 만한 나이에는 나무한테 귀를 살며시 대면서 나무가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듣습니다.
마실길에 만나는 나무한테 다가섭니다. 나무를 온몸으로 붙잡고 올라 보려 합니다. 숲이나 골짜기나 바닷가에서 만나는 나무가 반가워서 큰 소리로 부릅니다.
사람은 살림을 지으려고 나무를 알맞게 벱니다. 그러나 나무가 몽땅 없어지도록 베지 않아요. 나무를 몽땅 베어서 숲을 밀다가는 그만 보금자리도 마을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언제나 푸르게 우거진 숲일 적에 사람살이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밥도 집도 주는 나무요, 더위와 추위를 막아 주는 나무요, 모든 목숨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나무예요.
나뭇가지는 장난감 구실을 합니다. 나뭇가지는 바지랑대 노릇을 합니다. 나무를 깎고 다듬은 널은 징검다리 같은 놀잇감이 되어 줍니다. 나무를 만지는 손에 나뭇결이 스밉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눈망울에 나뭇빛이 어립니다. 나무하고 함께 노는 몸에 나무내음이 번집니다.
이리하여 우리 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하루를 그린 뒤에 나무한테 찾아가서 속삭입니다. 잘 잤니, 오늘은 날이 어떨 듯하니, 오늘도 기쁘게 푸른 바람을 베풀어 주렴, 하고 말을 겁니다. 나무 밑을 걷고, 나무줄기를 쓰다듬습니다. 겨울을 씩씩히 나고 새봄에 터지려는 움을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얼마 앞서 파뿌리를 마당 한쪽에 심다가 어린 유자나무를 만났어요. 지난해일는지 지지난해일는지 유자차를 담고서 유자씨를 밭 한쪽에 뿌렸는데 이 가운데 하나에 싹이 텄나 봐요. 작은 씨에서 깨어난 작은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랄 날을 기다립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