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과 아홉 형제 - 중국 옛이야기, 개정판
아카바 수에키치 글 그림, 박지민 옮김 / 북뱅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16



권력만 지키려던 임금님은 물속에 잠기다

― 임금님과 아홉 형제

 아카바 수에키치 글·그림

 박지민 옮김

 북뱅크 펴냄, 2003.3.10. 8500원



  문득 생각해 보면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부치면서 사는 이들은 으레 아늑하면서 고요합니다.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삶을 지을 적에는 언제나 사랑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조그맣게 집 한 자리를 일구는 사람이 모이는 마을에는 따로 마을지기가 없어도 사이가 좋으면서 아름답습니다. 이런 마을이 여러 곳 있더라도 굳이 여러 마을을 아우르는 고을지기가 없어도 되어요.


  지난 2000년뿐 아니라 4000년 지구 역사를 더듬어 보면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이나 “싸운 발자취”가 그득합니다. 이른바 “전쟁 역사”예요. 나라지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군대를 일으키고 무기를 갖추어 이웃나라로 쳐들어갔어요. 서로서로 땅을 더 넓게 차지하면서 더 크게 힘을 부리려 했어요. 곰곰이 따지자면 ‘군대와 무기 없이’ 나라를 아늑하면서 아름답게 다스리던 나라지기는 찾아볼 길이 없다시피 합니다.



두 사람은 늘 ‘아이가 있으면, 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만, 꼬부랑 노인이 됟도록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너무도 슬픈 나머지 혼자 연못가에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 연못으로 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4쪽)



  중국에 있는 아주 작은 겨레붙이인 ‘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어 내려온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아홉 형제 이야기라고 해요. 이 이야기에 그림을 얹어 《임금님과 아홉 형제》(북뱅크,2003)라는 책이 나왔다고 합니다. 옛이야기는 수천 해에 이르도록 중국 ‘이’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서 내려왔고, 그림책은 일본에서 1969년에 처음 나왔다고 해요. 일본에서도 오래된 그림책이지만, 한국말로 나온 지도 제법 되었어요. 무엇보다 중국 ‘이’ 사람들한테는 아득히 오래된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옛이야기를 살피면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시골 늙은 할매랑 할배가 나와요. 다음으로 못에서 사는 신선이 나오지요. 늙은 할매랑 할배가 낳은 아홉 형제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임금님이 나오는데, 임금님 곁에는 이이를 따르는 신하와 군대가 잔뜩 있어요.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이 아이들은 스스로 훌륭하게 자랄 것이니라.” 이렇게 말하더니 노인은 아이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붙여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힘센돌이, 먹보, 배불뚝이, 차돌이, 꺽다리, 얼음동자, 불개, 무쇠돌이, 물찬돌이’였습니다. (8쪽)



  아이가 있기를 바랐으나 늙도록 아이를 못 낳은 할머니는 못가에서 눈물을 글썽였대요. 못에서 사는 신선은 늙은 할매 눈물을 보더니 아홉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요. 늙은 할매는 한꺼번에 태어난 아홉 아이를 어찌 건사해야 좋을는지 모릅니다. 시골 할매랑 할배는 수수한 살림이니 밥 걱정 옷 걱정이 많았겠지요.


  이때 못에 사는 신선이 다시 나타나 찬찬히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훌륭하게 자란다고 말이지요.


  중국 ‘이’ 사람들 옛이야기에서 들려주는 슬기로운 마음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서 드러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 옷·밥·집이라는 물건을 더 잘해 주려고 마음을 쓰지 말라는 뜻이에요. 어버이로서 옷·밥·집을 잘 챙겨 주어야 할 노릇이지만, 아이들을 물건보다 ‘사랑’으로 따스히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아이들을 기쁘게 믿으면서 ‘걱정 아닌 사랑’으로 마주할 적에 아이들은 스스로 씩씩하면서 훌륭하게 자랄 테지요. 아이들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 더 많은 옷이나 밥이나 집을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임금님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이 센 데다가 그렇게 잘 먹어치우는 남자라면 언젠가는 나를 몰아내고 이 나라의 왕이 되려고 할 게 틀림없어.” 그렇게 생각한 임금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남자를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쪽)



  이제 임금님을 바라봅니다. 임금님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도록 북돋우는 일보다 ‘임금님 자리’를 걱정합니다. 시골 할매 곁에는 못에 사는 신선이 있어서, 아이들을 키울 적에 ‘걱정 아닌 사랑’이라는 마음이 되도록 북돋우는데, 임금님 곁에 있는 신하나 군대는 임금님을 슬기롭게 이끌지 못해요. 아마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테지요? 임금님 곁에 있는 신하나 군대는 ‘임금님이 시키는 일’만 고분고분 따르니까요.


  생각해 봐요. 군인들이 임금님더러 ‘이보시오, 임금! 우리한테 무기를 손에 쥐게 하지 말고 낫하고 쟁기를 쥐게 해서 살림을 아름답게 일구도록 일을 맡겨야 하지 않으오? 임금 자네도 스스로 호미랑 삽을 쥐고 밭을 일구어 스스로 밥을 지어 먹을 줄 알아야 하지 않으오?’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느 군인들이 임금님더러 ‘이보시오, 임금! 이웃 여러 나라와 우리 나라 모두 무기를 버리고 평화롭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으오?’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임금 자리에 선 이는 이런 말을 귀담아듣고는 ‘전쟁 아닌 평화’로 나라를 다스리는 슬기를 펼칠 수 있을까요?



마침내 물찬돌이는 입 안 가득 강물을 빨아들였다가 “푸우!” 임금님을 향해서 내뿜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요? 임금님도 신하들도 궁전도 다 커다란 강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더니 그만 파도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39쪽)



  조그맣고 조그마한 작은 겨레붙이 사이에 오랫동안 이어 내려온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오늘 우리 사회를 헤아려 봅니다. 대통령이나 이이를 둘러싼 사람들이 온갖 잘못을 저지른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못하는 모습도 함께 곱씹어 봅니다. 이들 곁에서 슬기로운 말을 들려준 사람이 없거나 슬기로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탓이지 않을까요. 권력 자리를 지키려는 생각이 너무 큰 나머지, 사람들이 다 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레 어우러지는 길은 생각하지 않은 탓이 아닐는지요. 2017.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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