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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5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70
미련하게 어둠을 헤매는 넋
― 백귀야행 5
이마 이치코 글·그림
서미경 옮김
시공사 펴냄, 1999.8.26. 5000원
어둠은 어둡습니다. 어두우니 어둠입니다. 더없이 마땅한 말입니다만, 이 마땅한 말을 잊거나 놓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어둠은 어둠일 뿐 무서움이 아닙니다. 어둠은 어둠일 뿐 죽음이 아닙니다. 어두운 곳에 있기에 두려워야 하지 않아요. 그저 어둠이에요.
우리는 어두운 곳에 있기 때문에 별을 봅니다. 어둡지 않은 곳에서는 별을 못 봐요. 어둡지 않은 곳에서는 빛도 못 보지요. 환한 낮에 불을 켜 보셔요. 불은 거의 안 보이거나 아예 눈에 뜨이지도 않습니다.
“병실에 누워 있을 땐 이 거울 속이 내 세계였는데,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부터 거울은 필요 없게 되었지요. 더 즐거운 생활을 당신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31쪽)
“즈카사! 그 아인 살아 있지 않아.” “거짓말! 이렇게 뚜렷이 보이는데?” (64쪽)
《백귀야행》 다섯째 권에 흐르는 어둠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어둠에 갇혔다는 생각에 그만 이승을 못 떠나는 넋이 있습니다. 어둠이 너무 싫어서 저승으로는 건너가지 않는 넋이 있어요. 그리고 이승에서 가슴에 아픔이나 생채기가 많이 쌓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어둡게 바뀌고 어둠을 키우려는 넋이 있습니다.
“죽이는 것보다 같이 즐기는 걸 원한다.” “낙천적인 요괴구만.” (113쪽)
“재미없다. 인간은 왜 이다지도 빨리 죽는 것일까? 이 아이는 섭취할 만한 생기도 거의 없었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야.” (124쪽)
우리는 어둠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살는지 모릅니다. 어둠이나 밝음이 무엇인지, 밝음하고 어둠은 서로 어떻게 잇닿는지, 어둠하고 밝음이 왜 따로 있는가를 하나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는지 몰라요.
낮에 일어나서 움직이고 밤에 잠들며 꿈꾸는 얼거리를 생각합니다. 꿈을 꾸려고 잠드는 밤을 생각합니다. 무서워서 잠이 못 드는 밤이 아니라, 온통 깜깜한 곳에서 비로소 몸을 누이고 쉬면서 꿈을 꾸어요. 몸을 내려놓고 꿈을 꾸면서 쉬는 밤, 곧 어둠이에요.
‘증오심에선 아무것도 생길 수 없어. 자신이 그걸 깨달을 무렵에는 상당히 인생을 허비한 후겠지.’ (143쪽)
“불쌍한 녀석이야. 어두운 풍경만 보고 자라서 검은 생명체로 변하고 있어.” (206쪽)
어둠을 고이 받아들이기에 새롭게 피어납니다. 어두운 곳에서 꿈을 지피기에 새롭게 자라납니다. 씨앗이 싹을 트고 애벌레가 나비로 깨어나는 곳은 언제나 어둠이라는 품이에요. 그런데 이 어둠을 제대로 못 살피면서 미움이나 싫음이나 짜증을 가슴에 담는다면? 이때에는 그야말로 바보스러운 미움이나 싫음이나 짜증만 쌓일 테지요.
고이 쉴 노릇입니다. 어둠에 잠기며 꿈을 꿀 적에는 기쁨도 내려놓고 슬픔도 내려놓을 노릇이에요. 미운 누군가 있었다 하더라도 어둠에 잠기며 꿈을 꿀 적에는 살며시 내려놓을 노릇이에요. 언제까지 미워해야 할까요? 이제 그만 미워하고 우리 삶을 스스로 새롭게 찾아야지요. 꿈을 꾸어야지요. 2017.1.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