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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외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 지은이 : 엘리자베스 키스, 엘스펫 K.로버트슨 스콧
- 옮긴이 : 송영달
- 펴낸곳 : 책과함께(2006.2.2.)
- 책값 : 20000원
.. 경부선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산하와 사람들의 모습은 키스가 지닌 미술가로서의 본능적 욕구를 강렬하게 자극했다. 다른 한편, 기차역마다 오르내리는 일본 군인들은 한국이 압박받는 식민지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여전히 전국 여기저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와 제시는 무자비한 일본 경찰과 군인들의 칼과 몽둥이 아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고문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 〈13∼14쪽 : 옮긴이 송영달 씀〉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참 끔찍하고 괴롭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담아내어 보여주고 함께 나누거나 적바림하는 이들을 만나기가 ‘뜻밖에도 어렵’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장애인 문제만 하더라도, 그 흔하디흔한(?) 남녀차별 문제만 하더라도 얼마나 말이 많고 시끄럽고 큰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어린이문학-어른문학’ 글감이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어떤가요? 사진 작품에 이런 이야기가 담기나요? 그림은 어떤가요? 그림 작품에 이런 줄거리가 보이나요? 텔레비전 연속극에, 영화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보이는지요?
.. 만약 어떤 사람이 1919년에 서울을 방문하여 큰길로만 다녔거나 전차만 타고 다녔으면, 아마 서울도 극동의 여느 도시들처럼 부분적으로 서구화된 지저분하고 재미없는 도시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대로를 벗어나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들어서면, 알라딘 단지 같은 장독들이 늘어서 있는 신비스러운 집안 마당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 흰색의 돌담길을 돌아 들어가면 까만 머리를 헝클어트린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밝은 햇빛 아래서 즐겁게 춤추며 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 뒤로 열려 있는 마당 저편에는 암갈색의 장독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고 그 곁에 반들거리는 노란 바가지들이 걸려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골목은 일종의 미로와 같아서 한구석을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관광객에게 보여준다 .. 〈48∼49쪽〉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에는 삶이 담겼습니다. 사람 냄새가 짙게 묻어나옵니다. ‘우리들’ 발자취라기보다는 어느 한때를 살아간 사람들 모습과 이야기가 진득하게 배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엘리자베스 키스 자매는 ‘마침 한국땅을 밟게 되어’ 이곳 삶터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이들이 네팔이나 수단이나 코트디브와르에 갔다면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겠지요. 그러니까 이 책에 담긴 그림과 글은, 지난날 우리 자취이자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만날 수 있던 ‘낮은 자리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멋과 맛을 잘 알고 있는 수수한 사람들’이라 하겠어요.
1920년에서 여든여섯 해를 훌쩍 뛰어넘은 2006년 오늘날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서울에 가서 버스와 전철이 다니는 길로만 다닌다면 ‘대단히 많은 곳이 서양나라처럼 되어 버린 지저분하고 재미없는 미친 도시’라는 느낌을 받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다녀 본다든지, 자전거조차 갈 수 없는 산비탈 골목길을 두 다리로 다녀 본다면, ‘참사람이 살고 있었네’ 하는 느낌과 함께, 우리가 누구나 간직하고 있으나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한 수수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는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곳에서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한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그림과 글로 보여줍니다. (4339.6.27.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