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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강상중.현무암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7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중·현무암 글
책과함께 펴냄, 2012.9.20. 17000원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이가 민주 아닌 독재를 휘두른다면, 이들은 정치만 독재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독재정권은 군대를 비롯해서 공공기관하고 학교도 독재로 휘두르려고 해요. 어느 곳에나 계급이나 신분으로 틀을 지으려 하지요. 이러면서 사람들이 독재정권을 우러르도록 교과서를 바꾸려 해요.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온통 ‘독재자 섬기기’로 갈아치우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독재가 아닌 민주라고 하지만, 정치 우두머리는 역사 교과서를 그들 멋대로 주무르려고 합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춤이나 노래로 문화와 예술을 밝히려고 하는 이들까지 멋대로 휘두르려고 해요. 이른바 ‘국정 역사교과서’나 ‘문단 블랙리스트’는 독재정권이 보여주는 숱한 몸짓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박정희는 “모든 조건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스스로 “일사봉공 박정희(一死奉公 朴正熙)”라고 반지(半紙)에 혈서를 써서 동봉한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를 만주국 치안군 군정사 정모과로 보냈던 것이다. 거기서 “일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의 굳은 결심”을 피력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충성을 다할 각오”를 표명했다. (121쪽)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함께,2012)는 강상중·현무암 두 분이 글을 써서 지은 책입니다. 일본 사회를 제국주의와 반민주와 반평화로 이끄는 데에 앞장선 ‘만주국 권력자’라는 기시 노부스케하고, 전쟁과 쿠테타로 독재를 누리면서 사회를 윽박지른 ‘만주군 장교’ 박정희를 서로 맞대면서 역사라는 흐름에서 두 ‘독재자’가 어떤 몸짓으로 어떤 일을 꾀했는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기시 노부스케가 외할아버지라고 합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을 앞둔 박근혜는 박정희가 아버지라고 하지요. 두 사람과 두 사람, 모두 네 사람은 서로 어떻게 닮았을까요. 이들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를 어떻게 주무르려는 마음일까요.
여순봉기로 숙군의 태풍이 몰아치며 극형에 처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궁지에서 그를 구해 준 사람은 백선엽과 정일권이라는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의 ‘선배’들이었다. 그 후 군부 내에서 진급이나 군사쿠테타 계획에서도 박정희의 만주 인맥은 숨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189쪽)
‘만주군 장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붙어서 살아남는 길을 걸었습니다. 해방이 된 곳에서는 갈 곳이 없을 뿐더러 친일파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으나 이 나라에 전쟁이 터집니다. 일제강점기 만주국은 ‘만주군 장교’를 키웠고, 이이는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서 친일파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길을 찾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이어진 이승만 독재를 사람들이 드디어 갈아엎었는데, 갈아엎기는 했어도 정권을 잡은 정치인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어요. 이 틈에 ‘만주군 장교’는 옛 ‘만주군 선배’와 하나가 되어 군사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이러고서 스무 해 가까이 이 나라에 군사독재를 속속들이 심어 놓습니다.
소련 혹은 북한과 대치하는 방공(防共) 국가, 집권적인 군부독재, 반공적인 국민통합 이념, 국방산업과 연계된 중화학공업화, 관료 주도에 의한 계획경제적인 자본주의산업의 구축 등 만주국과 박정희의 한국 사이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유사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18쪽)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에 ‘재건체조’라고 해서 시작한 라디오체조의 모델은 만주국의 건국체조였다.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개최된 반공대회나 멸공대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국에서 수없이 열린 반공대회에 가 닿는다. (270쪽)
군사독재로 사회가 억눌리던 때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무렵 이루었다는 경제발전은 재벌 주머니에 돈이 들어갔어요. 수많은 어린 노동자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70년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외마디소리를 남기고 몸을 불사른 젊은 넋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독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았고, 더 무서운 유신독재로 억누르려고 했어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이러한 사회 흐름을 ‘만주국’에서 뿌리를 찾으려 합니다. ‘만주군 장교’로 친일부역을 했던 독재자는 만주국에서 배운 대로 한국에서 독재를 펼쳤고, 만주국에서 함께 친일부역을 하던 선배를 비롯해서 ‘만주국 소속 조선인 친일 관리’가 바로 한국에서 군사독재를 버티는 바탕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주의 친일조선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만주국 소속 조선인 관리들이다. 만주국에서 근무한 조선인 관료는 대략 3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 만주국 최대의 친일조적인 협화회에는 만주국의 조선인 관리나 유력자들이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기 최대의 어용학자였던 이선근이 협화회 간부 출신이었다 … (정일권은) 1960년대에 박정희가 한일회담을 진행할 때는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일제로부터 독립했다는 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모두 만주군 장교 출신이니, 한일 국교 정상화(한일회담)가 과연 정상으로 되었겠는가. (304, 305, 306쪽)
한국이 ‘민주’ 나라이거나 ‘독립한’ 나라라 한다면 참말로 민주스럽고 독립한 나라다운 모습이어야지 싶습니다. 독재자를 추켜세우는 국정교과서는 하루빨리 걷어치워야 할 테고, 일본군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 넋을 달래려는 ‘소녀상’은 일본 대사관 앞뿐 아니라 청와대 앞에 얼마든지 세울 수 있어야지요. 아니, 일본 총리실 앞에도 소녀상을 세운다거나 도쿄 한복판에도 소녀상을 세워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난날 저지른 일을 되새기면서 돌아보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 나라가 민주나라라 한다면 어용학자가 발을 붙일 수 없어야 해요. 이 나라가 독립한 나라라 한다면 전쟁무기와 군대는 이제 멈추고 남북녘이 평화로이 어깨동무하는 길로 거듭날 수 있어야겠지요.
“경험도 없는 우리한테는 그저 맨주먹으로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욕에 왕성합니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청년 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분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오카모토 미노루 중위 즉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이 발언을 (1961년 11월 11일 일본 수상 관저) 오찬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어떤 생각으로 듣고 있었을까? (19쪽)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역사에서 이 ‘만주군 장교’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식민지가 키우고 전쟁이 먹여살리고 쿠테타로 총칼을 거머쥐고 독재로 평화·민주를 짓밟은 ‘만주군 장교’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이제부터 이 나라가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와 평화여야 할 테지요. 아직도 군사독재 얼거리가 단단한 터라 부정부패와 불평등이 판치고 말 테지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은 이제 우리가 이 땅에서 ‘만주군 장교’ 뿌리를 잘라내고 몸통도 잘라내면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밝히지 싶습니다. 대통령 탄핵부터 비롯해서 모든 썩은 몸통을 내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2017.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