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3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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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5



귀신한테도 마음이 있으니

― 백귀야행 3

 이마 이치코 글·그림

 강경원 옮김

 시공사 펴냄, 1999.3.15. 5000원



  오늘날 아파트에는 ‘지킴이’를 안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늘날 아파트에는 ‘지킴이’를 둘 자리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부터 어느 겨레이든 집이나 마을에는 ‘사람’뿐 아니라 ‘사람 아닌 다른 넋’이 함께 있다고 여겼어요. 한겨레는 ‘사람 아닌 다른 넋’ 가운데 사람을 보살핀다는 ‘지킴이’를 헤아렸고, 집이나 마을 곳곳에 ‘사람 아닌 다른 넋’을 기리거나 모시거나 섬기거나 아끼는 ‘무언가’를 두었어요. 이러면서 먹을거리를 조금씩 덜어서 함께 나누었고요.


  지난날 한겨레를 비롯해서 지구별 여러 겨레는 다 다른 모습과 몸짓으로 ‘사람 아닌 다른 넋’을 기리거나 모셨어요. 어느 모로는 두려워하기도 했고, 어느 모로는 포근히 여기기도 했어요. 어느 모로는 깍듯이 생각하기도 했고, 어느 모로는 살가운 동무나 이웃으로 삼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짚과 풀과 나무와 돌로 지은 한겨레 옛집에는 개구리도 지네도 풀벌레도 거미도 개미도 같이 살아요. 이뿐인가요. 서까래에는 참새 둥지도 있고, 처마 밑에는 제비 둥지도 있지요. 더구나 구렁이까지 한집에서 살고요. 흙에는 지렁이랑 두더지가 함께 살고, 수많은 풀벌레랑 딱정벌레가 집이며 마을에 함께 있어요. 여기에 온갖 새가 함께 살지요.



“깜짝 놀랄 테니 보러 와. 사실은 어제 저녁 우리 집 정원에 갑자기 …… 연못이 생겼다고 친구한테 전화했는데, 어떻게 하룻밤만에 없어진 거야?” (52쪽)


“사실은 우리들, 이 집에서 굉장히 외롭거든요. 좀 제멋대로긴 하지만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모두들 당신이나 후유키 같으면 좋을 텐데.” (75쪽)


‘도대체 수호신이란 뭘까? 그 집은 (수호신이던) 그녀들의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어.’ (95쪽)



  이마 이치코 님 만화책 《백귀야행》 셋째 권을 읽으며 이 많은 ‘다른 넋’을 하나하나 그려 봅니다. 이 만화책에는 “온갖 귀신(백귀)”이 다 나오는데, 이 “온갖 귀신”은 그야말로 ‘저승’에서 살다가 ‘이승으로 와서 사람하고 함께 사는’ 요괴나 마물이 있다고 해요.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 요괴나 마물이 있다 하고, 사람을 돕고 싶은 요괴나 마물이 있다 하며,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 요괴나 마물이 있다 해요. 그리고 이승에서 목숨이 다했으나 미처 저승으로 건너가지 못한 채 ‘몸 없는 넋으로만 이승에 남아’서 넋씻이를 받아야 하는 “죽은 사람”도 있대요.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어느새 이런 곳에 문이.” “할머님, 여기에는 옛날부터 문이 있었어요. 다들 보지 못했던 것뿐이에요. 전 이 집에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사람들은 진짜로 있었던 거예요.” (100쪽)


‘아버님께서는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는 아이가 생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그건 제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그녀들을 보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통하기만 한다면, 자식을 낳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저는 작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내년 봄에는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에요.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아내에게 호적이 없기 때문에…….’ (116쪽)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는 무 자르듯이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느껴요.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은 깜깜한 곳을 무서워해요. 밤을 무서워한다든지 사람 없는 깊은 숲을 무서워하기도 해요. 아무도 없는 지하실이나 창고를 무서워하기도 하지요.


  우리는 왜 무서워해야 할까요? 혼자이니까? 귀신이 있으니까? 아니면 그냥? 귀신이 있다면 귀신은 왜 무서워해야 할까요? 겉모습이 여느 사람하고 달라서 무서워해야 할까요?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해 보여서 무서워해야 할까요?


  영화 〈식스 센스〉를 보면 ‘죽은 사람’이 나오고, ‘죽은 사람을 보는 아이’가 나와요. 죽은 사람을 보는 아이는 ‘죽은 사람’ 때문에 늘 무서워서 떨어요. 더욱이 ‘죽은 사람을 보는 아이’를 제대로 헤아리면서 이 아이를 돕는 어른이 없어요. 왜냐하면 거의 모든 어른은 ‘죽은 사람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저 애는 사물을 뚜렷이 가려내는 것이 두려운 거예요. 자신에게 익숙한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싶었던 거지요. 하지만 덕분에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187쪽)


“왜,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지? 분별없는 말을 입에 올리면, 그대로 된다잖아.” (203쪽)



  만화책 《백귀야행》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고등학생 남학생 리쓰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귀신과 요괴와 마물’을 보면서 괴롭습니다. 게다가 학교나 마을이나 집에서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을 보는 사람이 없어요. 할아버지는 늘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을 보지만 일찍 돌아가셨어요. 주인공 남학생은 어릴 적부터 학교 공부는 도무지 할 수 없는데다가 집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일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수많은 귀신과 요괴와 마물을 느끼고 보기 때문이에요.


  이 만화책에서 다른 주인공인 여대생 사촌 즈카사도 리쓰처럼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을 봅니다. 그러나 즈카사는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냥 말을 걸거나 그냥 지나칩니다. 그래서 다른 주인공인 리쓰네 사촌 누나는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을 보더라도 아무렇지 않은데, 때때로 소스라치게 놀라지요.



“잘 보라구. 이건 즈키사 누나 때문에 생긴 거야. 다 누나가 불러들인 거란 말야! 이런 것들은 힘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엄마가 돌아가실 리 없잖아! 즈카사 누나의 불안과 공포가 저급의 요마들을 불러모은 거야. 영능력이 어중간하기 때문에 대처하는 게 미숙해서 그래.” (215쪽)



  만화책에 나오는 고등학교 남학생은 학교 공부는 도무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동무를 사귀지도 못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귀신을 볼 줄 아는’ 이 아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놀리거나 괴롭힐 뿐입니다. 귀신은 못 보고 ‘사람만 보는’ 다른 아이들은 막상 ‘사람을 보기’는 하지만, 저희하고 ‘똑같은 사람’인 리쓰라고 하는 아이를 따사로운 마음으로 맞아들이지 않아요.


  학교에 동무는 없으나 사촌 누나가 거의 동무와 같습니다. 두 사람이 ‘귀신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리쓰라는 아이는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으려 합니다. 귀신을 보기만 할 뿐 아니라 ‘귀신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고서 넋씻이를 도와주지요.



“에미의 소행을 그만두게 하고자 잠자리를 바꾸고 숨어 있는 것이 자신의 아들인지는 꿈에도 모르고 죽여버린 겁니다. 저는 슬픔에 못 이겨 산속 나뭇가지에 목을 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슬픔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 한 일조차 잊고 있었나 봅니다. 단지 슬프고 미련이 남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남아 있었던 거죠. 왜 이렇게 중요한 걸 잊고 있었을까. 제가 기억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아이는 다시 한 번 저를 찾아온 거예요. 미안, 미안하다, 용서해 주렴. 혼자서 쓸쓸했지. 같이 가자꾸나. 용서해 주렴.” (222∼223쪽)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서도 마음을 못 읽으면 서로 동무나 이웃이 못 됩니다. 우리가 서로 동무나 이웃이 된다면, 우리가 서로 마음을 읽고 나누며 아낀다는 뜻이에요. 귀신을 믿거나 안 믿거나, 또는 귀신을 볼 줄 알거나 볼 줄 모르거나, 이런 여러 가지는 대수롭지 않아요. 서로 마음을 볼 줄 아느냐가 대수롭지 싶어요. 서로 마음을 바라보면서 아낄 줄 아느냐를 살펴야지 싶어요.


  만화책 《백귀야행》은 귀신과 요괴와 마물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 자리에 ‘마음’을 가만히 얹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를 돌아보도록 넌지시 이끌어 줍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만화책에 나오는 리쓰네 어머니나 할머니는 리쓰가 어릴 적에 ‘산수 시험 5점’을 받아도 걱정하지 않아요. 시험종이에 이름을 썼으니 잘했다고 여겨요. 공부가 시원치 않더라도 마음을 쓰지 않아요. 아이가 튼튼하면서 씩씩하게 잘 자라는 데에만 마음을 써요. 아이가 스스로 꿈을 찾고 제 길을 생각하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여요.


  어쩌면 바로 이런 마음이 흐르기 때문에 ‘귀신을 보든 말든’ 또 ‘귀신을 믿든 말든’,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가 아름다운 마음에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차츰차츰 거듭날 수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2016.12.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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