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2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64



아직 이승을 못 떠나는 사람들

― 백귀야행 2

 이마 이치코 글·그림

 강경원 옮김

 시공사 펴냄, 1999.3.15. 5000원



  눈에 보이기에 믿고, 눈에 안 보이기에 안 믿곤 합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기에 믿고, 손으로 만질 수 없기에 안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나 사랑이나 꿈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기도 해요. 우리한테 목숨이 있기에 오늘도 몸을 움직이며 살지만, 정작 목숨을 눈으로 본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백귀야행》(시공사,1999)은 여느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넋이나 숨결을 언제나 알아보는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는 만화책입니다. 이 둘은 할아버지한테서 ‘다른 넋을 보는 눈’을 물려받았다고 할 만한데, 어쩌면 할아버지도 다른 어버이한테서 ‘다른 넋을 보는 눈’을 물려받았을는지 몰라요.



놀면서 술래를 하다가 죽은 아이는, 죽은 후에도 술래가 된 채 헤매이는 걸까. (52쪽)


“이봐, 잠깐만. 이미 나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난 어쩌면 오래전에 죽은 게 아니었을까. 옛날 같았으면 벌써 죽었을 것을 약으로 살려 놓았던 것뿐이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집안의 도움이 되게 해 주고자, ‘목주님’께서 힘을 빌려주신 게 아니었을까.” (118∼119쪽)



  때때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고 하지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믿기 어려울 테지만, 우리가 눈으로 모두 볼 수 있다면, 믿기 어려운 일이란 없으리라 느껴요. 우리가 어느 일을 놓고 놀랍다고 여긴다면 우리 스스로 그 일을 못 해낸다든지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 일을 얼마든지 한다면 놀랄 까닭이 없어요. 우리 스스로 그 모습을 늘 지켜보거나 바라본다면 딱히 놀랍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식인귀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야. 성불하지 못하고 계속 여기에 있었겠지. 이 정원은 살아 있어. 틀림없이 솜씨가 좋은 직공이 온힘을 기울여 만들었겠지. 너무 잘 만드는 바람에 생명이 깃들게 되어 버린 거지.” (146∼147쪽)


‘백로가 말을 ……. 참, 전생에는 사람이었지.’ (201쪽)



  새도 얼마든지 말을 합니다. 입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말을 해요. 이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이제 못 듣는 사람이 있어요. 도깨비를 볼 뿐 아니라 도깨비하고 말을 섞거나 함께 노는 사람이 있어요. 이와 달리 도깨비를 못 볼 뿐 아니라, 도깨비하고 못 어울리고 못 노는 사람이 있지요.


  만화책 《백귀야행》은 바로 이 대목을 살며시 건드립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넋’을 웬만한 사람들은 도무지 못 알아채지만, 한 아이는 알아봐요. 한 아이는 알아볼 뿐 아니라 ‘죽었으나 무언가 아쉬워서 떠나지 못하는 넋’한테 말을 걸면서 이 아쉬움을 풀어 주려고 합니다. 한 아이는 다른 넋을 알아보더라도 무서워하거나 꺼리려고 합니다.



“그런 남자의 아이, 낳고 싶지 않아. 아빠를 닮아 형편없는 아이일 거야.” “누님, 그런 말씀 그만하세요. 그 애는 제 조카이기도 한걸요.” “료야. 울지 마. 나만 괴로운 줄 알았는데.” (215쪽)


“혼인식날 밤에 신랑이 싫다고 연못에 뛰어든 여자를 아내로 맞아 줄까?” “안 받아들여 주면 집으로 들어오시면 되잖아요. 빚은 일해서 갚으면 되구요! 그래도 만일, 받아들여 준다면, 그 사람은 누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거예요.” (216쪽)



  곰곰이 생각할 노릇이지 싶어요. ‘다른 넋’을 코앞에 마주할 적에 보이는 두 가지 몸짓처럼, 다른 넋이 아닌 ‘뻔히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코앞에 마주할 적에도 두 가지 몸짓은 아닐까요? 한 가지는 차분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실마리를 풀려는 이웃으로 바라보아요. 다른 한 가지는 못 본 척하거나 등을 돌려요.


  볼 수 없기에 안 믿기도 하지만, 막상 볼 수 있어도 안 믿곤 합니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둘레에 있기에 찬찬히 바라보거나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둘레에 많아도 금을 긋거나 고개를 저으면서 손사래치기만 하기도 해요.


  아직 이승을 못 떠나는 사람들은 아쉬움을 풀고 싶습니다.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은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면서 웃음을 짓습니다. 그러면 이승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요? 이승을 떠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래,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이것이었는걸!’ 하고 깨달을까요, 아니면 어리거나 젊은 날부터 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꿈을 이루는 삶을 이승에서 보낼까요? 2016.12.2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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