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 어느 과학자의 탄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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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과학자 한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글

 김명남 옮김

 김영사 펴냄, 2016.12.2. 19500원



  여기 과학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녁은 심부름꾼을 여럿 거느린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공무원’인 아버지하고 함께 살다가 영국으로 건너와서 학교를 다닙니다. 이녁 아버지는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인 곳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는데 어느 날 문득 ‘꽤 큰 재산’을 물려받아요. 이런 큰 재산이 없어도 넉넉한 살림이었다는데, 이녁 아버지하고 어버이는 꽤 큰 재산(땅과 집)을 물려받은 뒤 ‘식민지 공무원’ 살림을 접기로 하고, 꽤 높은 연금도 안 받기로 합니다. 이러면서 영국에서 꽤 일찌감치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살림으로 바꾸었다고 해요. 어린 도킨스는 어버이 곁에서 낡은 기계로 들일을 할 적마다 으레 거들었다고 합니다.


  정규 수업에 예배가 있는 학교를 다니던 이녁은 어느 날 버틀란드 러셀이 쓴 책을 한 권 읽었대요. 이 책을 발판으로 삼아서 ‘하느님(신)’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슴에 품습니다. 이 생각은 앞으로도 무럭무럭 자랍니다. 책 한 권 읽었을 뿐이니 어쩌면 먼지처럼 사라질 만한 생각일 수 있으나, 이녁은 차근차근 과학자라는 길을 마음에 담습니다. 천천히 과학자라는 길을 가면서 ‘하느님은 없다’랑 ‘종교는 모두 거짓이다’는 생각을 과학 논증으로 풀어내는 다윈 진화론을 퍼뜨리는 몫을 맡습니다. 이러면서 이녁이 써낸 책이 《이기적 유전자》하고 《만들어진 신》입니다.



마콰팔라에 살 때 (네 살이던) 내가 오후에 혼자 놀면서 이런 말을 중얼거리면 부모님은 옆에서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분다 / 바람이 분다 / 비가 온다 / 추위가 온다 / 비가 온다 / 매일 비가 온다 / 왜냐하면 나무 때문에 / 나무의 비니까.” (72쪽)



  《이기적 유전자》하고 《만들어진 신》이라는 대중과학서를 쓴 이는 리처드 도킨스 님입니다. 1941년에 태어났으니 어느덧 일흔 고개를 넘었습니다. 바야흐로 이녁 삶자국을 돌아보는 책을 손수 쓰기로 했으며, 영어로는 2015년에 이 책이 나왔다고 해요. 두 권으로 나온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김영사,2016)은 ‘다윈 진화론을 바탕으로 무신론을 과학으로 입증하는 과학자’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으며 어떻게 배웠고 어떤 생각을 키운 끝에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과학 연구를 할 수 있었는가를 차분하게 풀어냅니다.



우리가 과거의 아이와 현재의 성인이 같은 ‘인간’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기는 하다. 아이의 몸을 물리적으로 구성했던 분자들 중에서 수십 년 뒤까지 살아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아도, 어쨌든 우리 기억은 오늘에서 내일로, 나아가 지난 10년에서 다음 10년으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137쪽)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첫째 권을 보면, 리처드 도킨스를 낳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어떤 어린 날하고 젊은 날을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가 꽤 꼼꼼히 나옵니다. 리처드 도킨스 님으로서는 이녁 어버이 어린 날을 ‘알 수 없’지만, 두 분이 알뜰히 적어 놓은 글하고 책이 있고, 또 두 분이 살뜰히 건사한 숱한 기록이 있어서 두 분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었다고 해요. 또 이녁 어머니는 너덧 살밖에 안 된 어린 리처드 도킨스가 재미난 말을 노래처럼 읊을 적마다 이 말을 꼼꼼히 적어서 모았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 님은 ‘알 수 없’고 ‘떠오르지 않는’ 지난날이라 하더라도, 두 분이 남겨 준 멋진 글하고 책을 바탕으로 이녁 자서전 첫머리를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의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어서는 안 된다. 그 목적이라면 책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요즘은 인터넷도 있다. 강의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자극해야 한다. 훌륭한 강사가 내 눈앞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어떤 생각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가끔은 난데없이 나타나 멋진 생각을 잡아내는 광경을 구경하는 것이다. (209쪽)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은 자서전인 만큼 앞선 대중과학서처럼 과학 이론이나 논증은 거의 안 펼칩니다. 그래도 이녁이 살아온 나날을 되짚으면서 몇 가지 과학 이론이나 논증을 살며시 곁들여요. 이를테면,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는 동안 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하고 모진 따돌림이나 괴롭힘이나 체벌을 놓고, 어떻게 그때에 그런 바보짓을 일삼을 수 있었고 눈감을 수 있었을까 하고 뉘우치는데요, 오늘날 도킨스 님으로서는 그런 바보짓은 더 안 한다지만 어릴 적에는 이녁뿐 아니라 영국 사회가 통틀어서 그 같은 바보 문화가 널리 있었다고 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서 유전자 얘기를 붙이지요. “아이의 몸을 물리적으로 구성했던 분자들 중에서 수십 년 뒤까지 살아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137쪽)”을 말이에요.


  그러고 보면 이 글을 쓰는 제 몸을 이루는 분자구조 가운데 열 해나 스무 해쯤 앞선 때 내 몸을 이루는 분자구조는 하나도 없다고 할 만해요. 열 해나 스무 해뿐 아니라 서너 해 앞선 때 내 몸을 이루던 분자구조는 오늘 나한테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고, 고작 한두 달 앞서라든지 서너 주 앞선 때 분자구조조차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하고 오늘 나는 틀림없이 ‘같은 나’라고 여깁니다. 다섯 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을 살던 나하고 마흔 살을 사는 나는 ‘다른 나’라고 여기지 않아요. 아니 몽땅 ‘똑같은 나’이지는 않을 테지만 틀림없이 ‘나’인 대목이 있되, ‘다른 나’로 거듭나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는 정확한 복사본의 형태로 불멸을 누릴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유전자와 성공적이지 못한 유전자의 차이가 정말로 중요하다. 그 차이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상은 세상에 존재하는 일에 유능한 유전자들, 여러 세대를 거쳐 살아남는 유전자들로 채워진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개체가 번식할 때까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갖춘 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다른 유전자들과 협동하는 유전자다. 몸이야말로 유전자가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이자 유전자를 후대로 넘겨줄 운반체이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는 생물 개체를 ‘생존 기계’라고 불렀다. (341쪽)



  도킨스 님은 이녁 자서전 첫째 권 뒤쪽으로 갈수록 과학 이야기를 더 다룹니다. 아무래도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과학자로 일할 무렵 이야기를 적으니, 유전자 이야기를 안 쓸 수 없을 테지요. 그리고 우리가 도킨스 님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바로 이 유전자 이야기를 헤아리려는 마음일 테고요.


  ‘유전자’로서는 ‘우리 몸’을 그저 ‘유전자가 담기는 그릇’으로 여긴다고 해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몸이 아니라 유전자를 물려주며, 무엇보다도 ‘유전자가 새롭게 진화하도록’ 마음을 기울일 때에 사람도 사회도 참말로 ‘진화를 이룬다’고 해요. 이 같은 이야기를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에서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가 도킨스 님 자서전을 읽는다면, 이 자서전에 깃든 이녁 발자취를 ‘지식으로 알거나 외우려는’ 뜻은 아니지 싶어요. 과학자 한 사람이 어떻게 ‘다윈 진화론’을 과학 이론에 맞추어 논증하는가를 살피려는 뜻으로도 이녁 책을 읽을 테고, 참말로 유전자란 무엇이고 우리 몸(생체)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이루는 삶하고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이녁 책을 읽지 싶습니다.


  한국말로는 “이기적 유전자”로 옮겼는데, 유전자로서 본다면 ‘나 혼자만 아는’ 유전자라기보다 ‘나를 사랑해서 아이한테 이 사랑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인 유전자이지는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나밖에 모른다’고 할 만한 ‘이기적’ 유전자라기보다는 ‘나를 참다이 사랑하면서 아낄 줄 아는 숨결을 새로운 아이들한테 이어주고 싶은 마음’이 깃드는 유전자일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해요.



지금 제가 할아버지에게 클로드 섀넌과 정보이론에 관해 말씀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꿀벌, 새, 심지어 뇌의 뉴런이 사용하는 소통 원리가 다 같다는 사실을 알려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9쪽)



  도킨스 님은 이녁이 파고드는 과학 연구와 이녁이 쓰는 과학대중서가 이렇게 많이 팔리며 읽힐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녁이 외치고 싶던 ‘다윈 진화론’이 널리 알려지려면 이녁 책이 데즈먼드 모리스 님 책처럼 많이 팔려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대요. 그리고 참말 그처럼 도킨스 님 책은 많이 팔리고 널리 읽힙니다.


  도킨스 님 두 어버이는 도킨스 님이 어린 날 ‘예배 거부’를 하든 어떤 모험을 하든 서글서글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모두 다 어린 도킨스한테는 기쁘며 새로운 ‘배움’이 될 만하다고 여겼다고 해요.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도킨스 님 어버이처럼 아이들이 새롭고 기쁜 ‘배움’을 몸소 겪거나 치르면서 홀가분하고 너른 숨결을 과학으로도 인문으로도 정치로도 문학으로도 펼칠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답겠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과학자가 쓴 자서전 한 권은 우리한테 바로 이 대목을 건드려 줄 수 있지 싶어요. 자유로운 터전에서 자유로운 생각이 싹트고, 평화로운 보금자리에서 평화로운 생각이 움트며, 사랑스러운 나라에서 사랑스러운 생각이 자란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2016.12.2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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