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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6년 11월
평점 :
사랑하는 배움책 40
그러면 난 스스로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 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들
하이타니 겐지로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펴냄, 2016.11.7. 12000원
오늘날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을 아주 마땅하게 여깁니다. 나이가 찬 아이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가야 한다고 여겨요. 그러면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이기에 모든 아이가 가야 한다고 여길까요? 우리는 학교가 얼마나 학교다운가를 생각하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을 할까요?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쓴 《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들》(양철북,2016)을 읽으면 첫머리에 ‘자급자족을 하는 섬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님은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섬에서 혼자 지내면서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낚았다고 하는데, 섬에서 만난 거의 모든 이웃은 ‘딱히 학교라는 곳’에 기대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면서 다 같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살림을 짓는 모습을 늘 볼 수 있었다고 밝혀요.
섬 사람들은 대부분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자연을 경외하고 자연에서 배우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 조부모를 보며 자란다. (14쪽)
머리로 생각해서 얻은 것과 몸과 마음으로 느껴서 알게 된 것 사이의 불균형이 사람들로부터 배려와 상냥함을 빼앗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앗아갔다. (19쪽)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급자족을 배우지 못해요. 학교는 자급자족을 안 가르치거든요. 그렇지요? 학교는 교과서를 가르쳐요. 교과서는 흔히 국·영·수라는 이름처럼 지식을 가르쳐요. 그리고 이 지식을 놓고 시험을 치러서 점수를 따지고요.
학교에서는 집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밥을 짓는 살림을 가르치지 않아요. 학교는 시멘트로 다 지어 놓은 집이에요. 학교라는 집을 어떻게 지었는지 아이들은 하나도 모르고, 교사조차 하나도 몰라요. 학교옷이든 체육옷이든 손수 지어서 입도록 하지 않고 모두 돈으로 사서 입도록 해요. 학교에서 아이들더러 옷을 손수 짓거나 깁거나 손질하도록 이끌지 않아요. 학교에서 먹는 밥도 아이가 손수 지어서 먹는 밥이 아니라 급식실에서 조리사가 따로 한꺼번에 지어서 밥판을 들고 받아서 먹도록 해요. 학교에 손수 지은 밥으로 마련한 도시락을 싸서 오는 일이란 이제 거의 모두 사라졌어요.
도쿄는 게다를 신고 걸어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절실히 느꼈다. 도시라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힘껏 내디디며 걸을 수가 없닫. 미끄러지기 쉬워 너무나 위태위태하다. (64쪽)
자신과 관계없다는 생각이 이 사회를 얼마나 나쁘게 만들어 왔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98쪽)
《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들》은 오늘날 사람들더러 ‘이제라도 자급자족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고 묻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를 물어요. ‘자급자족을 잃거나 잊은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가?’ 하고 물어요.
곰곰이 돌아봅니다. 자급자족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고, 자급자족을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인 터라,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대학교에 가든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든 해야 합니다. 손수 집·옷·밥을 얻도록 살림을 지을 줄 모르니, 오직 돈으로 집을 얻고 옷을 사며 밥을 마련해야 해요. 밭을 일구거나 논을 가는 일손을 배우지 않으니, 늘 먹는 밥이 어떻게 나오는지, 또 한국이 쌀을 자급하는지 수입하는지, 손수 지은 쌀이나 농약을 치는 쌀이나 나라밖에서 들여오는 쌀이 어떠한가를 도무지 모를 수밖에 없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사회’를 배우기보다는 ‘오직 돈으로 움직이는 사회’에 길든다고 할 만해요.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사회’나 ‘스스로 짓거나 가꾸는 사회’가 아닌 ‘톱니바퀴처럼 맴돌며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사회’에 얽매인다고 할 만하지요.
아이들은 야무지다. 앞뒤 문장을 보고 구덩이의 깊이를 추측한다. 그것도 지혜이다. 경험과 상상력으로 삼 미터 사십오 센티미터라는 길이를 생각해낸 아이는 훌륭하다. (114쪽)
아이들은 꾸며서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상냥한 마음이, 눈빛이 전해진다. (117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실마리를 풀면서 《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들》이라는 책을 엮습니다. 지식에 갇히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지핍니다. 아이들은 꾸미지 않을 적에 상냥하고, 이 상냥한 눈빛으로 따스히 말을 건다고 해요. 이 아이들은 둘레 어른이나 어버이한테서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요, ‘시험성적을 잘 받는’ 아이가 아니라 ‘삶을 스스로 짓는’ 아이가 될 수 있는 길을 눈빛 밝은 아이들한테 가르치거나 물려줄 수 있어야 아름답겠지요. 대학교에 잘 붙도록 시험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아니라 손수 살림을 가꿀 줄 아는 씩씩하고 다부지며 알뜰한 아이로 자라도록 이끌 때에 사회가 넉넉하면서 따사롭겠지요.
학교에서 급식만 하기보다는 아이하고 교사가 함께 밥을 짓도록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아이도 교사도 손수 지은 밥을 먹도록 가르치고 배울 만하리라 생각해요. 학교옷을 값비싸게 맞추어 입기보다는 갓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이 한 주나 한 달에 걸쳐서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익혀서 짓도록 함께 배우고 가르쳐 볼 만해요. 학교 한켠을 주차장으로 삼기보다는 텃밭으로 삼아서 ‘손으로 지어 거두는 기쁨’을 누리도록 해 볼 만해요.
“밭일 잘하는 비결 같은 건 없습니까?” “그런 건 없어요. 밭에 있는 녀석들에게 선생님의 발소리를 되도록 많이 들려주세요.” 찌릿찌릿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153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은 늘 끊임없이 물었다고 해요. 섬마을 아이들한테 묻고, 섬마을 어른들한테 물었대요. 아이들한테는 티없이 흐르는 생각이 샘솟는 기쁜 웃음을 지켜보면서 어쩜 그렇게 사랑스러운가 하고 묻고, 어른들한테는 무엇이든 손수 지으며 이웃하고 넉넉히 나누는 너른 숨결을 마주하면서 어쩜 그렇게 아름다운가 하고 물었대요. 그리고 하이타니 겐지로 님 스스로 물었다지요. 자, 이 아름다운 이웃들 곁에서 하이타니 겐지로 님 스스로 ‘바로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대요.
책을 읽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덮은 우리는 무엇을 할 적에 즐겁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울까요? 책을 읽어서 무엇을 배울 만하고, 삶에서 무엇을 새롭게 지을 만할까요? 어른인 우리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거나 가르칠 만할까요? 오늘날 학교 얼거리를 입시지옥으로 그대로 두어도 될 만할까요? 삶을 가르치는 학교, 살림을 함께 배우는 학교, 사랑을 서로 나누는 학교, 이러한 참된 학교가 되도록 이제부터 뜻을 모으고 손을 모으고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야지 싶습니다. 2016.12.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배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