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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래! ㅣ 알쏭달쏭 이분법 세상 2
이월곡 지음, 홍자혜 그림 / 분홍고래 / 2016년 11월
평점 :
어린이책 읽는 삶 163
대통령은 사람들 ‘위에 선’ 권력자가 아니에요
― 위! 아래!
이월곡 글
홍자혜 그림
분홍고래 펴냄, 2016.11.18. 12000원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목소리가 온나라 곳곳에서 촛불로 타올랐습니다.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국회에서 의결을 해야 하고 헌법재판소를 거쳐야 해요. 그런데 이러한 법에 앞서 사람들은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온나라 어디에서나 촛불을 들고 모였어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뿐 아니라 흑산도 같은 섬이나 고흥처럼 작은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서까지 모여서 목소리를 띄웠어요.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목소리와 몸짓은 이제 더는 ‘대통령이 사람들 위에 올라선 권력자’가 아니라는 뜻을 밝히는 셈이지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대통령 탄핵은커녕 택시나 버스나 길거리에서마저 대통령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어요. 1970년대나 1980년대에 대통령 이름을 잘못 말하거나 나무랐다면서 곧장 경찰서로 끌려가거나 고문실에서 두들겨맞아야 하던 이들이 있었어요. 고작 스물∼서른 해 앞서까지만 해도 대통령은 사람들한테 까마득히 높은 ‘위’였다면, 이제부터 대통령은 사람들 위도 밑도 아닌 ‘같은 자리’에 서서 심부름꾼 몫을 맡는 자리여야 한다는 뜻이 퍼진다고 느껴요.
책을 쓴 사람이나 책 내용이 책을 읽는 독자보다 ‘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읽는 책은 나의 위도 아래도 아닌, 옆에 있는 친구입니다. (10쪽)
우리는 지구에서 위와 아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건 마치 농구공의 위와 아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북쪽이 위, 남쪽이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1쪽)
이월곡 님이 글을 쓰고 홍자혜 님이 그림을 빚은 《위! 아래!》(분홍고래,2016)는 어린이 인문책입니다. 어린이가 이 나라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사회를 똑바로 보고 슬기롭게 살펴서 아름답게 가꾸도록 이끌려고 하는 인문책이에요. 어른들끼리 뚝딱거리는 사회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이도 얼마든지 마음을 기울이고 눈길을 두며 생각을 모으면서 가꾸는 사회라고 하는 대목을 밝히는 인문책입니다.
돈이 기준이 되고, 사람 위에 돈이 있게 되면서,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어렵게 됐습니다. (43쪽)
새로 발견된 대륙에서 스페인은 대규모 농장과 금광을 운영했는데, 원주민을 농장과 탄광에서 일하는 ‘노예’로 부려 먹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이런 기회를 마치 신이 자신들에게 내려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이었을 뿐입니다. (49쪽)
우리는 말하기 좋게 ‘위 아래’를 말하지만, 막상 위나 아래를 섣불리 가를 수 없기 마련이에요. 서울은 부산보다 위가 아니고, 부산도 서울보다 아래가 아니에요. 지도를 뒤집어서 놓고 살펴보면 위도 아래도 따로 없어요. 서울이 시골보다 위일 수 없고, 시골도 서울보다 위일 수 없어요. 서울은 언제나 서울이고, 시골은 언제나 시골이에요. 서로 돕고 손을 맞잡을 사이좋은 ‘이웃 고장’이에요.
조선 같은 나라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신분이나 계급이 있었어요. 그때에는 사람들 사이에 위랑 아래가 크게 또렷이 갈렸어요. 윗자리에 있는 이들은 아랫자리에 놓인 사람을 함부로 다루었어요. 조선 사회에서 아랫자리에 있던 이들은 윗자리에 있는 이들 앞에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야 했어요.
오늘날에는 신분이나 계급이 없다고 하지만, 가만히 살피면 돈에 따라 신분이나 계급이 갈리기도 해요. 평수가 얼마나 되는 아파트인가에 따라서, 어머니 아버지 돈벌이에 따라서, 대학교 졸업장에 따라서, 때로는 자동차 배기량이나 크기에 따라서 신분이나 계급이 갈리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벌어들인 돈 가운데 진욱이나 유림이 아빠처럼 월급 받는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이나 보너스 총액보다 회사 이윤 몫으로 돌아가는 돈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시키면서 임금은 훨씬 적게 주고, 해고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2쪽)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 노동자예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어느새 정규직하고 비정규직이 크게 갈리고 말았어요. 더군다나 비정규직은 더 늘기만 하고, 줄지 않아요. 똑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일삯이 적은데다가 제대로 쉬지 못해요. 때로는 더 오래 더 많이 더 고되게 일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나 계급 탓에 외려 더 적은 일삯을 받기도 해요.
우리 어른들은 이렇게 위랑 아래로 칼같이 가른 사회 얼거리를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위랑 아래가 날카롭게 갈리고 만 사회 얼거리를 그냥 물려받아야 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위랑 아래를 낱낱이 쪼개고 만 이 사회 얼거리를 그대로 지켜보거나 안 바꾸어도 좋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어른들한테서 위랑 아래를 조각조각 나눈 사회 얼거리대로 길들기만 해야 좋을까요?
옛날 왕조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왕과 신하, 왕과 백성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 관계처럼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찬물을 어른보다 먼저 마시기만 해도 혼나는 시절에 저 위, 하늘 꼭대기에 앉은 임금에게 안 좋은 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100쪽)
다른 누구와 비교해서 탁월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여러분은 어제와 자신보다 탁월해져야 합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그 어떤 것들도 어제보다 나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132쪽)
어린이 인문책 《위! 아래!》는 처음에는 !로 열지만 이내 ?로 이야기를 잇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슬프도록 위랑 아래가 갈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로 또렷하게 밝힙니다. 이러면서 ?로 물어요. 어른들이 계급을 갈라 놓고 만 이 사회를, 조선 사회 같은 신분이나 계급은 없다지만, 돈과 졸업장과 학연과 인맥 따위로 ‘눈에 안 보이는’ 신분이나 계급이 더 크게 있다고까지 할 만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앞으로 어떻게 마주하거나 바라보아야 할는지 아이들한테 물어요.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나라를 꿈꾸면서 어린이한테 묻습니다. 대통령이 잘못할 적에 촛불을 들 줄 아는 몸짓으로 어린이한테 묻습니다. 공해를 일으키는 기업이나 정책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는지 어린이한테 묻습니다. 평등이란 무엇이고 평화는 또 무엇인지 어린이한테 물어요.
어쩌면 어린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너무 어렵거나 골치가 아플는지 모르는 물음이에요. 그러나 어른한테도 어린이한테도 비켜 가거나 고개를 돌릴 수 없는 물음입니다. 우리는 서울에 살든 도시에 살든 사회를 이루어요. 외딴 마을에 살든 도시 한복판에서 살든 크고 작게 사회를 이루지요. 아름다운 사회가 되느냐, 꽉 막힌 사회가 되느냐 하는 갈림길은 바로 우리 손으로 이룹니다. 한 표 권리를 쓸 때뿐 아니라 여느 때에도 우리 목소리랑 몸짓에 따라서 사회가 달라질 수 있어요.
위도 아래도 아닌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위나 아래를 따지는 목소리가 아닌 서로 손을 맞잡으면서 함께 걸음을 맞출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마음과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6.12.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