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정은석 옮김 / 더숲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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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0



새벽에 까마귀 노래를 들으며 일어나는 생물학자

―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정은석 옮김

 더숲 펴냄, 2016.9.19.16500원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가까운 시월 끝자락이니, 시골은 벼베기로 부산합니다. 벼베기를 마친 논을 겨우내 묵히기도 하고, 품앗이로 마늘을 심기도 합니다. 이제는 보릿고개라는 이름도 배고픔도 잊힌 지 오래라, 벼베기를 마친 논에 보리를 뿌리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한가을이나 늦가을 즈음이면 빈 들에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봄부터 첫가을 무렵까지는 까마귀가 한두 마리씩 따로 다니는데,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로 접어들면 수백 마리에 이르는 까마귀가 크게 무리를 짓고 한꺼번에 돌아다니곤 해요. 이에 질세라 까치도 수백 마리가 까마귀떼에 맞서서 들이나 하늘을 까맣게 덮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거닌다든지 자전거마실을 다니다가 이 까마귀떼하고 까치떼를 보면 걸음을 멈추거나 자전거를 세워요. 그야말로 하늘을 까맣게 덮으면서 우렁차게 우짖는 소리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스레 느끼고, 쫙 펼친 커다란 날개를 새롭게 느껴요.



수평선을 향해 내려가는 태양의 황금빛이 강물의 검고 파란 물방울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마라니쿡 호수 위에서 조용한 아비새 한 쌍의 검은색 실루엣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러더니 노랑솔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서 우리 쪽에 있는 버드나무 덤불로 가서는 맨 마지막 저녁 간식인 하루살이를 찾아다닌다. (361쪽)



  까마귀를 몹시 좋아하면서 까마귀 연구를 하는 베른트 하인리히 님이 쓴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더숲,2016)를 읽으며 까마귀떼나 까마귀를 문득 떠올립니다. 베른트 하인리히 님은 어린 까마귀를 이녁 아이처럼 살뜰히 아끼면서 돌보기도 하고, 다 자란 까마귀가 숲으로 돌아가도록 보내 주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헨리 데이빗 소로 님처럼 숲에 오두막을 짓고는 이 오두막에서 살며 까마귀를 비롯해서 숲살림을 곰곰이 살피기도 한대요. 이녁이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을 오두막으로 불러서 몹시 추운 겨울에 보름쯤 함께 먹고자면서 온몸으로 숲을 느끼고 살피도록 이끌기도 한답니다.



난 이 친구들을 정말 좋아한다. 이 땅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생생한 꿈을 꾸어 본다. 난 내 아들 스튜어트가 이 땅이 주는 굳건하고 안정적이고 친숙한 느낌을 느끼며 이곳에서 자라고,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길 바란다. 또한 내가 아름다운 대자연의 어머니 같은 여인을 나의 이브로 삼아 이곳에서 사는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한다. (139쪽)


나는 그가 어떻게 ‘삼림을 관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는 자격증 같은 것이 없다. 그냥 농부다. 하지만 그의 숲은 예일대학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삼림 감독원이 돌보는 숲처럼 아름답다. (329쪽)



  새를 연구하는 학자이니 학교에 머물 수 없을 테고, 도시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어렵겠지요. 새는 연구실이 아닌 들이나 숲에서 살기에 새를 연구하자면 연구실이나 실험실이나 강단이 아니라, 참말로 숲에 깃든 고즈넉한 오두막에서 조용히 살면서 새를 살필 수 있어야겠지요. 생물학자로서는 들이 배움터일 테지요. 숲이 학교요 멧자락이 책방이며 냇물이 도서관이 되겠지요.


  베른트 하인리히 님은 오두막집에서 홀로 살며 새를 비롯한 크고작은 짐승하고 푸나무를 살피면서 《홀로 숲으로 가다》를 쓰는데, 이 책은 자연관찰기이기도 하면서 문학이기도 합니다. 숲을 그리는 문학이요, 숲이 베푸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그리는 문학이며, 숲에서 깨닫는 삶하고 살림을 그리는 문학이라고 할 만해요.


  책을 읽다가 때때로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내가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살며 새벽마다 듣는 멧새 노랫소리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로 찾아드는 수많은 새가 베푸는 기쁜 노랫소리를 떠올립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에도 새로 깨어나서 팔랑거리는 나비를 헤아립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니 조물조물 깨어나는 갓잎하고 유채잎을 빙그레 웃으며 마주합니다. 가을볕에 열매가 익고 씨앗이 굵는 소리를 고요히 그리기도 하고, 바람이 들려주는 싱그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3일 후인 7월 14일, 금속을 두드리는 (까마귀) 잭의 빠른 걸음 소리와 지붕 위에서 부르는 듣기 좋은 노랫소리에 아침 5시 30분 잠에서 깨었다. 멋지군. 그러다 조용해졌다. 잭을 불렀다. 대답이 없다. 잠시 후 도로 근처에서 라이플 총소리가 들렸다. 밀렵꾼 놈들! (72∼73쪽)



  모든 사람이 생물학자 한 사람처럼 숲에 오두막을 짓고 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기도 해요.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자동차 구르는 소리에 파묻히는 풀벌레 가을노래를 잊는 이 도시를 차분히 돌아보면 어떠할까 싶지요. 높은 건물이 너무 많아서 ‘그 높다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틈이 거의 없는 이 도시를 다시금 돌아보면 어떠할까 싶어요.


  우리가 즐겁게 바라볼 곳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우리가 기쁘게 귀를 기울일 소리나 노래나 말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바쁜 도시살이를 하는 바람에 그만 잊거나 잃은 따사롭거나 넉넉한 품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요. 우리가 수수하게 되찾으면서 투박하게 어깨동무를 할 손길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30분일 수도 있고 한 시간 30분일 수도 있는 시간이 지나갔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처럼 쳐다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아마도 이곳에 온 지 5개월이 다 되는 동안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 매료되었고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주변의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잠길 수 있었다. (156∼157쪽)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가만히 몸을 맡깁니다. 해가 좋은 날에는 평상이나 마루에 앉아 해가 움직이는 결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 따라 춤을 추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나도 나무를 따라서 마당에서 춤을 추어 봅니다.


  10분도 좋고 30분도 좋아요.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살더라도, 한동안 셈틀을 끄고 손전화를 닫은 뒤에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어 보기를 바랍니다. 하늘빛을 올려다보고 큼큼 가을내음을 맡아 보기를 바랍니다. 가을이 되어 시드는 들꽃을 보려고 길바닥에 쪼그려앉기도 하고, 이 가을이 되니 새로 돋는 들꽃을 살피려고 골목을 걸을 수도 있어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어요. 사랑스러운 하루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을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또 숲과 바다에서도 함께 누려요. 2016.10.2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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