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정원, 숨 그림이 있는 풍경 1
휘리 글.그림 / 숲속여우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89



내 곁에서 ‘쉼벗’이 되는 포근한 그림책

― 위로의 정원, 숨

 휘리 글·그림

 숲속여우비 펴냄, 2016.9.30. 1만 원



  따스한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은데 막상 내가 듣는 말은 따스함이 하나도 없을 수 없습니다. 차가운 말만 듣고, 메마른 말만 들으며, 때로는 아무 말조차 못 들을 수 있습니다.


  너그러운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은데 정작 내가 듣는 말은 너그러움이 하나도 없을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말만 듣고, 따끔한 말만 들으며, 때로는 무섭기까지 한 고요만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쉬고 싶습니다. 마음을 달래고 싶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싶습니다. 마음을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고 싶습니다.



바닷속을 헤엄치던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느르지만 말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들이 내 주변을 감싸면 잠에서 깨어나 햇볕을 마주하고 웃는다. (15쪽)


발밑이 시끄러운 곳에서 나는 웃을 수 있었다. 햇볕을 보고 웃었고 비 맞은 흙냄새가 좋았다. (21쪽)



  휘리 님이 빚은 그림책 《위로의 정원, 숨》(숲속여우비,2016)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어린이한테 읽히려는 그림책’이 아니라 ‘어른한테 읽히려는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그림책은 아이들이 즐겁고 재미나며 사랑스러운 숨결이 되도록 북돋아 줍니다. 《위로의 정원, 숨》은 처음부터 어른들 마음을 따사로이 달래고 너그러이 어루만져 주려는 몫을 맡겠구나 싶습니다. 그림책은 어린이한테만 즐거운 책이 아닐 테니까요. 그림책은 어른한테도 즐거운 책이 될 테니까요. 어린이부터 읽는 여느 그림책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 마음이 따스해지는 이야기가 흐르고, 어른이 마음을 달래려고 손에 쥐는 그림책은, 어느 모로 본다면 거꾸로 ‘어른부터 아이까지’ 가만히 마음을 달래어 주는 따순 손길이 될 만하지 싶습니다.



하늘이 높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우아, 해 버렸다. 하늘이 높다는 게 무엇인지 사실은 전혀 모른다. (23쪽)


누나가 벌레를 잡았다. 많이 작은 벌레는 물을 좋아하게 생겼다. 벌레를 놓아주고 집으로 가고 싶어서 흙에 그림을 그렸다. (34쪽)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벌레를 잡고 놀면서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풀밭을 뛰다가 구르다가 누우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자, 어른은 어떨까요? 어른도 흙을 만지고 벌레를 잡고 놀면서 즐거울 만할까요? 어른도 맨발로 풀밭을 달려 보다가 벌러덩 드러누워 보면 어떨까요?


  어깨에 놓인 짐을 살며시 내려놓아 봅니다. 손에 쥔 무게를 가만히 내려놓아 봅니다. 번쩍거리는 것들이 눈앞에 가득하니 넌지시 눈을 감아 봅니다. 시끌벅적한 것들이 둘레에 넘치니 차분히 귀를 닫아 봅니다.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 보고, 마음에서 번지는 빛을 바라봅니다. 마음 한복판에 깃든 씨앗을 살피고, 내가 내 마음에서 길어올릴 사랑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봅니다.



햇볕이 좋아서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들리는 수업 종소리. 하지만 나는 여기에. (56쪽)


닮기만 하지 않았어 우리. 비슷하게 걸을 수도 있어. 얼마든지 같이 쉴 수도 있어. (68쪽)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걸을 만한 이웃을 그려 봅니다. 나한테 고운 이웃이 있기를 바라듯이, 나도 이웃한테 고운 님으로 다가서자고 다짐합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고, 이웃님이 먼저 다가올 수 있어요. 내가 먼저 따스한 말로 다가설 수 있고, 이웃님이 먼저 따스한 말로 찾아올 수 있어요.


  가을에 해바라기를 합니다. 가을에 텃밭을 일굽니다. 겨울을 앞두고 집안을 새롭게 치웁니다. 겨울에 포근한 살림이 되도록 무엇을 갈무리해 볼까 하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림책 《위로의 정원, 숨》이 말하듯이 차근차근 둘레를 돌아보려 합니다. 내가 걷는 길을 더 즐겁게 가꾸자는 마음으로 눈을 뜨려 합니다. 여름에 푸르게 물드는 들처럼, 가을에 노랗게 무르익는 들처럼, 겨울에 하얗게 눈이 덮히는 들처럼, 철 따라 내 마음에 고운 숨결이 깃들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마당하고 텃밭이 우리 몸을 달래어 주는 고마운 쉼터가 된다면, 그림책 한 권은 우리 마음을 다독여 주는 반가운 ‘쉼벗’이 되어 줄 만하다고 느낍니다. 고마운 쉼터에서 파란 하늘 같은 숨을 쉬고, 반가운 쉼벗을 곁에 두면서 너른 바다 같은 숨을 마십니다. 2016.10.1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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