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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한자루 농법 - 귀농, 귀촌 그리고 도시농부를 위한 9가지 농사 비법 ㅣ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53
안철환 지음 / 들녘 / 2016년 9월
평점 :
숲책 읽기 108
‘호미 한 자루’를 쥐면 누구나 농사꾼
― 호미 한 자루 농법
안철환 글
들녘 펴냄, 2016.9.26. 13000원
낫 한 자루를 손에 쥐고 풀을 벨 수 있습니다. 낫으로는 벼를 벨 수도 있어요. 요즈음은 기계로 벼를 베고, 또 기계로 풀을 베곤 해요. 기계를 쓰면 벼베기나 풀베기를 아주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기계를 쓰면 기곗소리가 대단히 커요. 기계를 쓰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고요.
낫으로 풀을 베거나 벼를 베면 어떠할까요? 낫질을 할 적에는 서걱서걱 풀포기가 눕는 소리만 퍼집니다. 낫질은 무척 조용하다고 할 만합니다. 낫질은 사람이 몸소 하는 일이기에 기름이 들 까닭이 없습니다. 조용히 낫질을 하기 마련이라, 낫질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때로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호미로 땅을 쫄 적에도 무척 조용해요. 관리기라는 기계를 쓰면 아주 빠르게 땅을 갈 수 있지만 무척 시끄러워서 말소리도 안 들립니다. 이와 달리 호미를 손에 쥐고 밭자락에 앉으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고, 일노래도 부를 수 있어요.
모두가 흙에서 살 때는 먹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돈도 필요 없었다. 들이나 산에서 나물을 캐 먹든, 논밭에서 곡식과 채소를 심어 먹든 다 그렇게 살았으니 먹고사는 일이 배부르지는 않았어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7쪽)
원래 땅이 가진 능력을 초과한 양을 생산해야 하니 땅을 보호하는 농사가 아니라 땅을 수탈하는 농사를 짓게 된다. 이른바 ‘수탈농사’이다. 수탈농사를 하니 땅이 병들고 병든 땅엔 병충해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더더욱 농사가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15쪽)
경기도 안산에서 바람들이농장을 일구기도 하고, 전통농업연구소를 꾸리기도 하는 안철환 님이 쓴 《호미 한 자루 농법》(들녘,2016)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름 그대로 ‘호미 한 자루’로 흙을 살리고 만지고 가꾸고 사랑하면서 살림을 짓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경운기도 트랙터도 콤바인도 아닌, 예초기도 농약도 비닐도 아닌, 오직 호미 한 주를 손에 쥐고서 땅을 만지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호미 한 자루만 쥐고서 흙을 만진다니, 얼핏 보자면 우스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골 할매는 호미 한 자루로 모든 일을 건사해 냅니다.
호미 한 자루로 씨앗을 심어요. 호미 한 자루로 풀을 매고 나물을 캐요. 호미 한 자루로 땅을 북돋우지요.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고 살림을 지어요.
흙의 주인은 이런 하찮은 생명들이다. 이런 생명들이 땅을 갈고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미생물들은 땅을 부드럽게만 만드는 게 아니라 땅에 양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양분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땅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양분이란 바로 유기물을 뜻하고 유기물이 풍부해야 땅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46쪽)
직파할 때는 물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뿌리가 먼저 나온다. 땅속에 수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을 주지 않으니 땅속의 물을 빨아 먹으려고 뿌리를 깊고 튼튼하게 내린다. 뿌리가 건강하니 그 힘으로 밀어 올려진 싹도 건강하다. (111쪽)
‘호미 한 자루’를 이야기하는 《호미 한 자루 농법》은 오직 호미만 말하지는 않습니다. ‘낫 한 자루’라든지 ‘괭이 한 자루’나 ‘삽 한 자루’도 말해요. 때로는 낫이나 괭이나 삽을 쓰고, 때로는 호미를 씁니다. 그러니까 ‘호미 한 자루’란 더 많은 농기계나 농약이나 비닐에 기대지 않는 흙살림을 밝히는 실마리나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어요. 관행농법에서 벗어나, 예부터 손수 씨앗을 심고 가꾸어 갈무리한 뒤, 이 씨앗을 이듬해에 새롭게 심고 가꾸는 조촐한 살림을 밝힌다고 할 만합니다.
《호미 한 자루 농법》를 쓴 안철환 님은 이녁 스스로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고 밭벼도 심은 살림살이를 풀어놓습니다. 이녁 스스로 먼저 오랫동안 해 보고 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싶은 이웃들한테 ‘흙 만지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려는 이웃들한테도 ‘흙일이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이야기도 들려주고요.
섣불리 땅을 갈기만 하기 때문에 땅이 되레 딱딱해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밭에 물을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가 하는 대목을 알려줍니다. 땅속에서 막상 흙을 살리고 기름지게 하는 흐름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곡식이나 남새에 따라 어떻게 다루고 살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누구나 손수 익혀서 아이들한테도 물려줄 수 있을 만한 땅짓기를 하자고 북돋아 줍니다.
영화 〈인터스텔라〉(2014)를 보면 끝없는 옥수수 단작 평원 너머 어마어마한 흙바람이 이는 장면이 있다. 분명히 옥수수에 의한 심각한 토양 수탈의 대가였을 게다. 감독은 그걸 어떻게 알고 옥수수 평원을 찍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139쪽)
우리 조상들은 콩을 재배하면서 먹기만 한 게 아니라 콩 종자의 가짓수를 많이 번식시켜 왔다. 과연 얼마나 콩 가짓수를 번식시켰을까? 자그마치 4천여 가지가 넘었다고 하면 믿을까? (148쪽)
호미 한 자루로 농사꾼이 되어 보자는 《호미 한 자루 농법》은 ‘전문 농사꾼’이 아니라 ‘즐거운 흙일꾼’을 꿈꾸는 길을 밝히려고 해요. ‘땅을 지어 돈을 버는 길’이 아니라 ‘땅을 짓는 재미와 보람과 웃음’을 찾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모든 사람이 농사꾼이 되어야 하지는 않을 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밥을 먹어요. 내가 손수 땅을 일구면 내 밥상에는 내가 키운 곡식하고 남새가 오를 수 있어요. 남이 지어 준 곡식하고 남새를 사다가 먹을 수 있지만, 어느 만큼은 손수 가꾸는 텃밭살림을 해 볼 수 있어요. 조금씩, 천천히, 하나씩, 꾸준히 밥살림을 바꾸고 마을살림을 고칠 수 있어요.
도시에서도 조그맣게 텃밭을 가꾼다면 우리 똥오줌도 스스로 거름으로 바꾸어 땅을 살리는 일을 작게나마 할 수 있어요. 바로 호미 한 자루를 쥐면 말이지요. 2016.10.1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