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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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0



시골에서 길어올린 고운 살림을 노래하다

―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황풍년 글

 행성B잎새 펴냄, 2016.8.24. 15000원



  한국말사전에서 ‘촌(村)’을 찾아보면 “= 시골. 마을”로 풀이합니다. ‘시골’을 찾아보면 “1.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을 이른다 2. 도시로 떠나온 사람이 고향을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다음으로 ‘도시(都市)’를 찾아보면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풀이합니다. 이러한 뜻풀이를 깊게 헤아리거나 살피는 사람은 드물리라 봅니다. 어쩌면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는 분조차 드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도시’를 바라보고 살피는 눈길을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기만 할까요? 시골이란 “개발이 덜 된 곳”이기만 할까요? 시골이란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이기만 할까요? 그리고 도시는 참으로 “정치·경제·문화가 중심이 되는 곳”이기만 할까요?



뉘라서 촌사람들과 이른바 촌스러운 것들을 업신여길 수 있으랴. 이제라도 ‘촌스러움’의 미덕을 회복해야만 끝없는 욕망의 전쟁터가 된 우리의 삶터에 사람의 온기가 돌고, 온갖 개발의 삽날에 찢기고 망가지는 산천도 가까스로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촌이란 우리 모두의 태생지이자 지금도 우리의 목숨줄을 부지해 주는 생명의 곳간인 것이다. (29쪽)



  황풍년 님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행성B잎새,2016)을 읽으면서 시골하고 도시 얼거리를 새삼스레 되새겨 봅니다. 황풍년 님은 〈전라도닷컴〉 대표를 맡으면서 전라도 이야기를 온나라에 고루 퍼뜨리는 일을 합니다. 잡지 이름처럼 〈전라도닷컴〉은 전라남·북도 이야기를 다루는데, 전라남·북도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도시가 아닌 시골 이야기를 다루어요. 남원이나 전주나 광주나 순천이나 여수나 광양이나 목포나 군산 같은 도시 이야기는 거의 안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룬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전라도닷컴〉은 세 가지 이야기를 다루어요. 첫째, 흙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둘째, 물(냇물하고 바닷물)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셋째, 숲과 멧골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지요.


  이처럼 오로지 시골 이야기만을 다루는 잡지가 바로 〈전라도닷컴〉이고, 시골에서 흙이랑 물이랑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정갈하게 갈무리해서 들려주려는 잡지가 〈전라도닷컴〉이에요. 황풍년 님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하는 책은 ‘전라도’라는 삶터를 놓고 쓴 이야기입니다만, 넓게 보면 ‘이 나라 시골’을 다루는 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남동떡 엄니의 손에 들린 오이는 잘쭉한 듯 둥그렇고 노리끼리한 빛이 영락없는 ‘물외’다. 비바람 무시로 들이치는 한데서 햇빛 달빛 쪼여가며 몸피를 불린 오이들도 시골 엄니들을 닮았나 보다. 엄니들은 오이를 한사코 ‘외’라 하고, 노란 참외와 구분해서 ‘물외’라 한다. (130쪽)



  전라도에서 살기에 전라도 이야기를 다루고 씁니다. 마땅한 노릇이에요. 경상도에서 산다면 경상도 이야기를 다루고 써야 마땅할 테고, 강원도에서 산다면 강원도 이야기를 다루고 써야 마땅할 테지요. 그리고 전라도에서는 전라말을 쓰고, 경상도에서는 경상말을 쓰며, 강원도에서는 강원말을 쓰겠지요.


  황풍년 님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에서도 찬찬히 밝히는데, 시골사람이 쓰는 시골말은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집에서 시골마을을 이루고 시골살림을 지으면서 시골사랑이 고스란히 담아낸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책으로 배운 말이 아닌 시골말이에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말인 시골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시골사람이 먼먼 옛날부터 입과 몸과 손과 마음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이 시골말은 고장마다 다 다르면서도 비슷해요. 다 다른 대목은 소릿값하고 결하고 생김새가 달라요. 비슷한 대목은 어느 고장 어느 시골에서든 시골사람 스스로 모든 말을 새롭게 지어서 써요.



“오메! 어찌까. 별라 맛도 없는디.” “하이고, 이런 짜잔흔 음식을 뭐던다고 자랑해.” 우리네 엄니들의 첫 반응은 대개 이러하다. “늘 드시는 대로 차려서 수저 하나만 더 얹으시면 된다”라며 졸라대지만 솔찬히 질긴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해도라문 허겄제만, 넘덜한테 자랑할 만한 음식은 아닌디.” (194쪽)



  시골사람이 하는 시골일은 학교나 책으로 배우지 않아요. 늘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혀요. 손으로 배우고 눈코입으로 익히지요.


  한국 문화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한겨레 옷이나 밥이나 집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임금님이 계신 궁궐 이야기도 우리 겨레 옷이나 밥이나 집이 되겠지요. 그러나 임금님을 둘러싼 권력자는 0.1퍼센트도 아닌 0.001퍼센트도 될까 말까 할 만큼 아주 작습니다. 99퍼센트뿐 아니라 99.999퍼센트가 넘는 ‘한겨레 옷밥집 문화’란 바로 시골사람 문화예요.


  시골사람이 손수 흙을 지으면서 옷을 짓고 밥을 지으며 집을 지어요. 시골사람이 손수 말을 지으면서 아이를 가르치고 마을살이를 이루어요. 시골사람이 손수 숲을 가꾸고 냇물하고 바다를 돌보면서 언제나 정갈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온누리를 이루어요.


  글을 쓰거나 책을 내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찍거나 연극을 하거나 배우·연예인이 연기를 해야만 문화일까요? 학교를 세워야만 교육일까요? 권력과 행정과 벼슬아치가 있어야만 정치일까요? 수출 수입을 하거나 공장을 세워야만 경제일까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면 언제나 가슴 한쪽이 시큰거린다. 평생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했다는 어르신들의 입에서 어찌 그리도 따숩고 명징한 논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시방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질겁게 해 주문 나도 팽야 질겁게 되는 벱이여.” “한 식구는 굶어 죽어도 열 식구는 안 굶어 죽는다고 허잖여. 내 입보다 놈의 입부터 챙겨 줌서 그라고 찌대고 사는 것이 사람이여.” “사람도 따땃헌 디서만 산 사람은 쪼깨만 추워도 혹석을 떨어. 고상을 해 본 사람은 어려워도 의젓허제. 원망한다고 되는 일이 있가디. 이담에는 잘 될 것이여, 허고 희망을 가져야제.” (334∼335쪽)



  황풍년 님은 시골 할매하고 할배한테서 삶을 배운다고 이야기합니다. 황풍년 님하고 함께 〈전라도닷컴〉을 빚는 기자들도 시골 할매하고 할배한테서 살림을 배우고 사랑을 배운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문학자나 교육학자나 이런저런 전문가한테서 배우는 삶이 아닙니다. 시인이나 소설가한테서 배우는 문학이 아닙니다. 흙을 만지고 물을 만지며 숲을 만지는 투박하고 수수한 시골사람한테서, 시골지기한테서, 시골님한테서 넌지시 배워 싸목싸목 웃음짓는 살림이고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언제인가부터 ‘사람은 나면 도시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이런 말마따나 오늘날 시골은 가뜩이나 사람이 줄어들어서 적은데, 아직도 시골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도시로만 나아가서 대학생이 되거나 회사원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겨 버릇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시골에서 시골지기나 시골사람이나 시골님이 되도록 이끄는 학교 얼거리나 행정 얼거리나 사회 얼거리나 문화 얼거리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깨지고 찌그러진 새카만 손톱 열 개는 흙투성이로 살아낸 수십 성상과 나락 한 톨에 뿌려진 일곱 근의 땀방울을 여실히 웅변한다. 그 손은 살리는 손이요 생명의 손이다. 초록을 살리고 쌀을 살리고 밥을 살리고 세끼 밥을 먹는 우리들의 목숨을 살려온 손이다. (271쪽)



  잡지 〈전라도닷컴〉이나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하는 책에는 한 가지 뜻을 이웃님하고 나누려는 마음이 흐른다고 느낍니다. 바로 ‘시골에서 길어올린 고운 살림을 노래하려는 뜻’을 나누려 하지 싶습니다. 값지거나 값나가는 옷이 아닌, 한 땀 두 땀 정갈한 손길로 지은 고운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어요. 대단하거나 멋진 밥이 아닌, 구수하면서 웅숭깊은 밥 한 그릇을 함께 먹는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어요. 커다랗거나 으리으리한 집이 아닌, 소담스러운 살림을 싱그러운 숲집에서 조촐하게 가꾸는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습니다.


  나락 냄새가 나고, 갯내음이 퍼지며, 숲바람이 일렁이는 자그마한 책을 읽으면서 시골이라고 하는 터전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시골이란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들과 숲과 바다를 가꾸어 살림살이를 손수 짓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개발이 덜 된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아이들한테 두고두고 물려주면서 고운 삶을 조용히 가꾸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이웃을 아끼고 뭇짐승하고 푸나무를 돌볼 줄 아는 사랑이 흐르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2016.10.1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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