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 - 짚풀 공예 신기방기 전통문화
정인수 지음, 최선혜 그림 / 분홍고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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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5



짚살림을 가꾸던 때에는 쓰레기가 없었네

―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

 정인수 글

 최선혜 그림

 분홍고래 펴냄, 2016.7.9. 13000원



  어린이 인문책이라고 할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분홍고래,2016)를 읽고서 우리를 둘러싼 ‘짚살림’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지난날에는 짚이 없으면 살림을 할 수 없었다고 할 만하지만, 오늘날에는 짚이 없어도 비닐끈을 널리 써요. 오늘날에는 짚으로 살림살이를 꾸리는 손길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멍석은 평소에는 곡식을 널어 햇볕에 말리는 데 쓰지만, 잔칫날에는 마당에 깔아두고 손님을 앉게 했어. 또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방안에 깔아 방바닥처럼 쓰기도 했고, 재주나 장기를 부릴 때에는 무대처럼 쓰기도 했어. 동네 법이 지켜지는 법정이기도 했어. (41∼42쪽)


똬리가 이렇게 지방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까닭은 그만큼 긴 세월 동안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야. (62쪽)



  문득 생각해 보니, 집안살림을 알뜰히 건사하려고 하면서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안 쓰려 하더라도 둘레에 비닐끈이 참 많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제가 어릴 적이던 1980년대 무렵에는 새끼줄을 도시에서도 심심찮게 썼고, 물고기를 엮을 적에도 새끼줄을 썼어요. 그때에는 능금이나 배를 파는 과일집에서 나무로 짠 궤짝을 쓰면서 겨를 깔았어요.


  그러나 요새는 과일집에서 으레 비닐을 씁니다. 뽁뽁이를 쓰고 스티로폼을 써요. 예전에는 책을 쌀 적에 정갈한 종이나 한지를 썼다면, 오늘날에는 대수롭지 않게 비닐을 써요. 더 생각해 본다면, 예전에는 책을 선물로 보낼 적에도 종이로 쌌어요. 책이 안 다치게 하도록 두꺼운 종이로 싸고, 겉은 누런 종이로 다시 마감했지요. 그런데 요새는 뽁뽁이라든지 비닐로 된 바람주머니를 씁니다.



설거지할 때에는 짚으로 만든 수세미를 사용했어. 대개 짚을 잘게 잘라 실패처럼 감아 만들었는데, 새끼줄을 둥그렇게 말아 쓰기도 했어. 둥그런 수세미로는 솥과 같이 검댕이가 많이 묻은 것을 닦을 때 썼어. 재와 모래, 기왓장 가루를 섞어서 세제로 쓰면 기름때가 묻은 놋그릇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이곤 하지. (75∼76쪽)


짚 그릇은 다른 재료로 만든 그릇보다 큰 편이야. 섬이나 가마니도 그릇이라고 하거든. 짚 그릇 중 멱서리는 쌀 한 가마니 양을 통째로 넣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아래를 넓게 만들고 둘레는 높게 올린 것을 말해. (101쪽)



  정인수 님이 글을 쓰고, 최선혜 님이 그림을 넣은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는 ‘짚살림’을 가꿀 줄 아는 할아버지 한 분이 선보이는 멋진 ‘짚공예’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요. 온갖 짚살림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 짚살림이 아득히 먼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 안 된 가까운 우리 살림살이였다는 대목을 밝힙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제 어릴 적을 더 더듬어 보았어요. 우리 어머니나 이웃집 어머니는 된장을 담그려고 메주를 띄울 적에 새끼줄을 썼습니다. 비닐끈을 쓰지 않았어요. 도시에서도 참말 어디에선지 짚을 얻어서 썼어요.


  새끼 꼬기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가시내 머리카락 엮기하고도 닮습니다. 머리카락도 짚도 댓잎도 이래저래 엮으면서 살림을 짓던 손길이로구나 싶어요. 손수 씨앗을 심어서 가꾼 나락을 베어 바심을 하고 절구를 찧어 쌀을 얻듯이, 손수 짚을 건사하고 말리고 가다듬어서 새끼를 엮고 바구니를 짜거나 둥구미를 빚지요.



팡개를 진흙에 푹 박으면 쪼개진 부분에 진흙이 잔뜩 끼는데, 그것을 새나 동물에게 던져서 새를 쫓았어. 흔히 바닥에 물건을 내동댕이치는 것을 팽개친다고 하는데, 바로 팡개에서 온 말이야. (117쪽)


소 담요란 소의 등에 얹는 언치를 말해. 소가 짐을 등에 실을 때 길마를 얹는데, 언치란 바로 길마 아래에 까는 물건이야. 소 등 아프지 않게 방석을 깔아두는 것이지. 언치를 두르면 겨울에는 한결 따뜻하니까 담요이기도 해. (120쪽)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를 읽으면 ‘짚수세미’ 이야기가 나옵니다. 참말 그렇겠네 싶어요. 수세미 열매를 말려서 설거지를 할 적에 쓰기도 하지만, 짚으로도 수세미를 삼을 수 있구나 싶어요. 저도 가끔 짚으로 설거지를 하거든요. 기름이 많이 묻은 냄비를 설거지를 하려면, 먼저 풀잎으로 훑어요. 날 풀잎도 좋지만, 마른 풀잎이 더 좋아요. 기름때를 훔친 풀잎이나 짚은 불쏘시개도 되고, 불쏘시개로 안 쓴다면 밭둑에 놓아 다시 땅으로 돌아가도록 할 수 있어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짚신을 삼지 않고 미투리도 엮지 않습니다만, 화학섬유로 만든 신발은 다 낡거나 닳거나 찢어지면 쓰레기통으로 가요. 쓰레기가 됩니다. 지난날 짚신이나 미투리는 다 낡거나 닳거나 찢어지면 손질해서 더 쓰고, 더 손질하기 어려우면 땅으로 돌아가요. 짚살림에서는 쓰레기가 없지요.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가장 정갈하면서 아름다운 삶이에요.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 지난날 시골살림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마디는 할 만해요. 오늘날 우리 문명 사회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지 않느냐고, 오늘날 우리 문명 사회에는 스스로 삶을 못 짓는 흐름이 너무 깊거나 짙지 않느냐고, 오늘날 우리 문명 사회에는 손수 짓고 쓰고 나누는 재미나 즐거움이 어느새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달걀 하나도 소중했던 그 옛날 한 알 한 알 일일이 짚으로 엮어서 만든 달걀 꾸러미는 정성이 가득한 선물이었어. 특히 가난하던 1950년대에는 설날 선물로 달걀꾸러미가 최고의 인기였어. (135쪽)



  어린이 인문책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는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아주 흔하던 짚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주 흔할 뿐 아니라 시골사람 누구나 사랑하면서 보듬던 수수한 살림살이를 다루어요. 비록 오늘날에는 거의 다 잊히거나 자취를 감추어 버리려 하지만, 시골로 돌아가서 조용하게 살림을 짓고 싶다는 꿈을 키우려는 사람들한테 ‘짚을 이렇게 알뜰히 여겨서 쓸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짚살림을 가르쳐 줄 어른이 곁에 없더라도,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유투브 같은 데에서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새끼를 꼬는 손길부터 짚을 삼아서 그릇을 빚는 솜씨까지 익혀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머리로만 담는 지식이 아닌, 두 손으로 즐거이 짓는 살림을 다루는 아이들이 널리 아름다이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2016.10.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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