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그리고 4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51



논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에서 그림을 배워서

― 그리고, 또 그리고 4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정은서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6.8.10. 8000원



  우리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우리 마음에 꿈이 있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우리 마음에 아무런 꿈이 없다면 그림을 그릴 수 없구나 싶어요. 돈을 벌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맨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는 기쁨을 알았기에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새 돈을 버는 그림으로 바뀌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녁 마음에도 꿈을 그리는 숨결이 고이 흐르기에 씩씩하게 그림을 그릴 만하지 싶습니다.



“히가시무라 씨, 나 말입니다, 주인공이 평범하게 현재진행형으로 노력하거나 성장하는 만화가 보고 싶어요.” 너무나 타당한 의견이라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9쪽)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이 빚은 만화책 《그리고, 또 그리고》(애니북스,2016) 넷째 권을 읽는 동안 이 같은 대목을 가만히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림’하고 다르다는 ‘만화’에 마음이 끌린 이야기라든지, ‘그림’보다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그림이든 만화이든 펜이나 연필이나 붓을 씁니다. 손에 뭔가를 쥐고서 새로운 이야기를 종이에 빚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종이를 보며 ‘그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어느 종이를 보며 ‘만화’라는 이름을 붙일 뿐이에요.



선생님은 제가 없으면 곤란하실까요? 제자이자 부하이며 심부름꾼으로 나이 차는 크지만 가끔은 믿음직한 파트너. 제비꽃과 민들레를 싣고 시골길을 달리는 경트럭. 제가 그린 만화보다 이게 훨씬 더 순정만화 같습니다. (20∼21쪽)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철야로 원고를 완성해 가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저는 만화를 그리는 작업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35쪽)



  화가이든 만화가이든 모두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꿈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두 사람이 품는 꿈이란 두 사람이 저마다 살아오며 마음에 아로새긴 삶이요, 이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할 만해요.


  화가이기에 높은 이름이지 않고, 만화가이기에 낮은 이름이지 않아요. 《그리고, 또 그리고》라는 만화책이 나올 수 있도록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을 단단히 다그친 스승님은 이녁한테 늘 ‘그리라’는 말을 외쳐 주었고, 여기에 ‘괜찮다’는 말을 붙여 주었어요.


  언제이든 그리고, 무엇이든 그리라 했어요. 언제나 괜찮고, 무엇이든 괜찮다 했지요. 그러니,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으면서 꿈을 그리면 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림도 만화도 빚지 못해요. 글도 노래도 이와 같아요. 내가 나를 사랑할 적에 비로소 쓰고 나누고 펼칩니다.



그림은 시간을 초월하여 형태를 바꾸는 일 없이 그대로 그때 그대로 영원히 남습니다. 고독해도 즐겁지 않아도 커다란 미술관에 걸리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42∼43쪽)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일본가옥에서 고교생이 입시용 데생을 배운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것 같습니다. “내가 다닌 학원에는 저런 선생님이 없었어.”“응? 그야 그렇겠지. 저런 사람이 도쿄의 입시학원에서 가르쳤다간 당장 문제를 일으킬걸?” “하하, 하지만, 나도 저 선생님에게서 배웠다면 5수까지 하진 않았을 거야. 아키코가 부럽다.” (56쪽)



  입시미술을 배우든 정통미술을 배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입시학원을 다니든 어느 뛰어는 스승한테서 배우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손에 내 꿈을 그리려는 마음이 흘러야 그림이나 만화가 태어납니다. 내 삶에 내 사랑을 담으려는 생각이 흘러야 그림이나 만화로 나아가요.


  논으로 둘러싸인 시골에서, 또 가까이에 바다가 있는 시골에서, 또 조금만 나가도 멧골이 펼쳐지는 시골에서, 이러한 터전에서 그림을 배운 몸이요 마음이기에 만화를 그릴 적에도 다른 사람들은 담아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흐를 만합니다. 꼭 시골내기이기에 남달리 만화를 그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알게 모르게 몸이랑 마음에 스며드는 싱그러운 바람이 있다는 뜻이에요. 비록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은 이 대목을 오랫동안 미처 못 느꼈다고 하더라도, 도쿄 입시학원에서 다섯 해 동안 재수를 하며 입시미술을 배운 이녁 남자친구는 바로 알아채고 부럽다고 말하지요.


  저절로 스미고 시나브로 흐르는 손길을 말이지요. 어느새 삶이 되고 어느덧 살림으로 번지는 눈길하고 마음길을 말입니다.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은 시골에서 나지 않았거나 그 스승님이 안 계셨다면 만화가로 살 수 없었을는지 몰라요. 또는 만화가가 되었어도 이러한 이야기를 빚을 수 없었을 테고요. 2016.10.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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