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젖 잠 - 돼지가 우리를 본다, 박찬원 사진책
박찬원 지음 / 고려원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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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1



아기 돼지를 안으니 따뜻해, 이 숨결을 사진으로 찍지

― 꿀젖잠

 박찬원 사진·글

 고려원북스 펴냄, 2016.6.23. 12000원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시골은 들마다 누런 물결이 일렁입니다. 봄에는 빈논에 유채꽃이 피어나면서 샛노란 물결이요, 가을에는 무논에 나락이 굵으면서 샛노란 물결이에요. 사람들이 흔히 먹는 쌀밥은 겨하고 씨눈을 많이 깎아 하얀 빛깔로 보이지만, 막상 들에서 맺는 나락이라는 열매는 샛노랗습니다. 이 샛노란 열매를 거두어 햇볕에 말리면 차츰 누르스름한 빛깔로 바뀌지요. 겨만 살짝 벗긴 누런쌀(현미)로 밥을 지으면 누런 기운이 뱁니다.


  시골에서 살지 않는다면 ‘쌀알’, 그러니까 ‘벼 열매’가 ‘샛노란 빛’에서 ‘누르스름한 빛’으로 달라지는 결을 알기 어렵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하얀 쌀알만 본다면 ‘벼 열매’ 빛깔이 무엇인지 잘못 알 수 있어요.


  봄에 맨 먼저 심은 나락은 맨 먼저 벱니다. 봄에 심은 대로 논마다 벼를 베는 기계가 들어가서 한두 시간 즈음이면 논배미 하나를 말끔히 거둡니다. 요새는 낫으로 벼를 베는 곳이 거의 없어요. 다들 기계를 부려요.


  기계를 부리면 기계는 바로 낟알까지 훑어서 자루에 담으니 일손을 크게 덜 수 있습니다. 또 기계는 볏짚도 손쉽게 묶어 주어요. 아무래도 오늘날 시골에는 젊은 일꾼이 거의 없으니 기계를 빌지 않고서야 논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에 어린이도 젊은이도 많던 때에는 딱히 기계를 쓰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시골에 일손이 많이 있으니 굳이 기계를 다루지 않아도 되었어요. 이러면서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늦도록 일손을 거들면서 온몸으로 시골살이를 익혀요. 젊은이는 씩씩하게 땅을 가꾸지요. 이동안 어른들은 대견스러운 아이들한테 틈틈이 주전부리를 챙겨 줄 뿐 아니라 노래를 불러 줍니다. 이른바 ‘일노래’인데, 어른들이 부르는 일노래는 고된 일을 쉬는 구실도 하지만, 시골일을 거드는 아이들한테 삶을 배우도록 북돋우는 구실도 해요.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서 일손을 거들거나 놀면서 아이들끼리 노래를 불러요. 바로 ‘놀이노래’입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이나 책이나 영화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어도 시골사람은 스스로 놀이를 짓고 노래를 지으면서 삶을 지었어요.


  오늘날 시골에서는 온통 기계가 논밭을 휩쓸어요. 시골에 어린이도 젊은이도 없기 때문이지만, 논밭에 기계만 드나들면서 예전 같은 일노래는 싹 자취를 감추어요.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서 일이나 살림을 배우지 못하고, 오랜 옛날부터 입과 몸으로 물려주던 노래와 놀이와 잔치도 차츰 잊힙니다. 이러면서 시골 어린이와 젊은이는 도시로 떠나고 시골은 그야말로 고요하거나 쓸쓸하게 바뀝니다.



잠은 꿈입니다. 꿈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전생과 현생, 내생을 훨훨 날아 다닙니다. 잠은 혼과 백이 대화하며 운명을 이끌어 주는 시간이라 생각했습니다. 생명을 ‘숨 젖 잠’으로 보면 생명을 보는 시간과 공간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생만이 아니라 전생, 내생을 이어 삶을 보게 됩니다. (36쪽)



  박찬원 님이 두 권째 선보이는 사진책 《꿀젖잠》(고려원북스,2016)을 읽으면서 어쩐지 ‘시골살림하고 어린이’가 떠오릅니다. 사진책 《꿀젖잠》을 읽는 내내 자꾸자꾸 ‘노래하고 놀이가 사라진 시골’이 떠오르고, 노래하고 놀이는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시골일에 기계만 쓰이면서 예전처럼 일노래나 놀이노래가 흐르던 흠벅진 잔치마당도 함께 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도시에서도 다들 저마다 바쁘게 일은 하지만 신나는 놀이마당이나 잔치마당으로 어깨동무하는 일은 거의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박찬원 님 사진책 《꿀젖잠》은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를 찍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사진책을 보는 동안 시골마을 가을들이 떠올라요. 오직 기계만 드나드는 논이 떠올라요. 들에서도 마을에서도 자취를 감추는 아이들이 떠올라요. 시골은 시골대로 시골스러움이 사라지는 모습이 이 사진책에서 자꾸 떠오르고, 도시는 도시대로 도시스러움이 무엇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어느 날 어미젖을 가만히 보니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새끼들이 빠는 힘이 의외로 강합니다. 새끼 이빨에 찢겨져나간 젖도 있었어요. 젖은 희생이구나 생각이 들었죠. (38쪽)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지난날에 돼지는 ‘집에서 키우는 짐승’이었어요. 요즈음처럼 ‘공장식 축산’이나 ‘대규모 축산’으로 돼지를 키우지 않았어요. 소도 돼지도 닭도 모두 예전에는 ‘집집마다 알맞게 키우면서 한식구’로 지냈어요. 예전에는 모든 짐승한테 이름이 있었지요. 사람하고 똑같은 한식구였으니까요. 이러면서도 고기를 먹어야 할 적에는 ‘한식구 목숨을 앗아야’ 하니 괴로운 노릇이었다 했고, 차마 ‘우리 집 고기’를 먹기 어려울 적에는 이웃집한테 주고, ‘이웃집 고기’를 받아서 먹었다고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집에서 알맞게 소나 돼지나 닭을 기르는 집이 아주 크게 줄었어요. 도시에서는 전화만 걸든 가게로 찾아가든 아주 손쉽게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값싸게 먹어요. ‘오래도록 한식구로 살던 짐승’을 손수 잡아야 하는 슬픔이나 아픔을 느낄 새 없이 고깃살을 입에 넣기 바쁘지요.



저는 종교는 갖고 있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모르는 제3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사람이나 돼지 같은 동물은 물론 나무, 풀 같은 식물이나 염전, 소금, 바위 같은 무생물도 신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돼지 사진을 찍고 있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돼지를 통해서 보고 있고 듣고 있는 것이지요. (40쪽)



  일흔 살이 넘는 사진가 박찬원 님(1944년에 태어남)은 《꿀젖잠》이라는 사진책을 내놓고 사진전시를 열려고 ‘돼지하고 백 날 동안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스치듯이 구경하는 돼지를 찍은 사진이 아니라, 돼지우리에서 돼지하고 함께 뒹굴고 뒤엉키다가 문득 한 장씩 찍었다고 해요.


  박찬원 님은 일흔 살이 넘어 돼지를 사진으로 찍기 앞서까지는 돼지를 ‘쉽게 먹는 고기’로만 여기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처음으로 돼지하고 ‘함께 뒹굴며 사는’ 나날이 되면서 비로소 돼지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뜰 수 있었다고 해요. 돼지하고 눈을 맞추면서, 돼지하고 돼지우리에서 함께 낮잠도 자고 함께 놀기도 하면서, 어린 돼지를 품에 안아 보기도 하고, 다 해지고 만 어미 돼지 젖을 바라보면서, 이 새로운 삶과 살림을 마주하는 눈으로 돼지를 바라보면서 무언가 가슴으로 뭉클하게 올라왔다고 해요.


  돼지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모르는 제3의 세계”를 돼지우리에서 느낀다고 하는 말은 괜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참말로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다른 누리’가 있겠지요. ‘귀로 듣지 못하는 누리’라든지 ‘입으로 먹어 보지 못하는 다른 누리’도 있을 테고요. 그러니까 ‘마음으로만 느끼거나 알 수 있는 다른 누리’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 돼지를 손에 안았다. 따뜻하다. 기분 좋은 따스함이다. 살며시 돼지 볼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앞으로 자주 볼 테니까 잘 부탁해’ (76쪽/작업 일기 2015.8.17.)



  꿀이란 무엇이고, 젖이란 무엇이며, 잠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할아버지 사진가 박찬원 님은 돼지우리에서 돼지하고 벗님으로 지내는 동안 ‘꿀 젖 잠’ 또는 ‘숨 젖 잠’ 세 마디가 떠오르면서 늘 마음이 가득 찼다고 합니다. 삶을 이루는 꿀이요 젖이요 잠이며, 살림에 바탕이 되는 숨이요 젖이며 잠이라고 느낀다고 합니다.



돼지는 생각이 있을까? 배고프고 춥고 아픈 동물적 욕구 말고 다른 생각이 있을까? 새끼가 발에 밟혀 비명을 지르는데도 꼼짝도 않는다. 새끼들이 젖 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모로 누워 한쪽 젖만 내놓고 있다. 그런데 저 표정은 뭐지? (80쪽/작업 일기 2015.10.19.)



  사진책 《꿀젖잠》을 덮고서 아이들을 이끌고 들마실을 나옵니다. 대문 밖으로 마을논이 있습니다. 아이들하고 걷는 길은 가을들입니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락은 마을 할배가 짚으로 엮어서 세웠습니다. 논둑 한쪽에 꽃무릇이 꽃송이를 터뜨립니다. 개구리가 폴짝 뛰고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잠자리가 날고 나비가 춤을 춥니다. 이제 제비는 더 보이지 않습니다. 제비는 벌써 바다 건너 따스한 고장으로 날아갔겠지요. 참새가 무리지어 논을 덮다가 우리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전깃줄로 올라갑니다. 물까치 여럿이 날고, 박새 한 마리가 논도랑에 내려앉아 물을 쫍니다. 고들빼기가 논둑에서 꽃을 피우고, 도깨비바늘도 꽃을 피우려고 애를 씁니다.


  이 모두를 돌아보다가 잘 익은 나락이 고개 숙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요즈음 논에서 자라는 나락은 키가 매우 작습니다. 요즈음 나락은 볏짚이 얼마 안 나와요. 지난날 나락은 키가 크고 볏짚도 굵었지만, 오늘날 나락은 품종을 바꾸어 키가 작고 볏짚도 가늘어요.


  우리는 오늘날 시골논에서 새로운 눈길로 이 논빛이나 나락이나 농기계나 시멘트나 논도랑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냥 샛노란 들판으로만 바라볼 만할까요, 아니면 이 가을논에서 새롭게 눈을 뜨면서 삶과 살림을 새삼스레 바라보아 깨닫는 넋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돼지우리에서 돼지하고 뒹굴면서 돼지를 사진으로 찍다가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고 하는 박찬원 님입니다. 그냥그냥 옆에 있다고 여긴다면, 그냥그냥 지나친다면, 그냥그냥 아무것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돼지한테서든 가을들한테서든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느끼며 못 배우리라 봅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다가서서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려는 몸짓일 때에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를 스스로 깨달으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기 돼지를 안으며 따뜻함을 느껴 사진을 찍는 마음에 흐르는 숨결을 고이 헤아립니다.


  따뜻함을 느끼기에 사진을 찍고, 따뜻함을 느낀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따뜻함을 나누려고 사진을 찍고, 따뜻한 삶을 이야기하려고 사진을 찍어요. 따뜻한 사랑이 되고자 하며 사진을 찍고, 따뜻하게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짓는 꿈을 노래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2016.9.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사진넋)


* 이 글에 붙이는 사진은 박찬원 님한테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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