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슬란 전기 5 - 만화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다나카 요시키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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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46



싸움터에서 만난 사람

― 아르슬란 전기 5

 타나카 요시키 글

 아라카와 히로무 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8.25. 5500원



  《아르슬란 전기》 다섯째 권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죽이고 죽는 사람들이 잔뜩 나오는 만화책인데, 참말로 많은 사내들이 싸움터에 끌려가거나 스스로 나아갔어요. 온나라 사내를 싸움터에 끌고 갔다면, 이들 사내 뒤에는 숱한 가시내가 ‘군인이 입는 옷’이라든지 ‘군인이 먹는 밥’을 지었을 테지요. 또 어마어마한 종(노예)이 ‘군인이 쓸 전쟁무기’를 만들었을 테고요.


  오늘날에는 직업군인이 있고, ‘군사시설이나 군수물자를 만드는 직업인’이 있습니다. 전쟁은 생산이 아닌 파괴입니다만, 바로 이 파괴라고 하는 데에 어마어마한 돈과 품과 겨를을 쏟아붓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면서 ‘전쟁 때문에 과학기술이 발돋움했다’고도 말합니다만, 전쟁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슬기와 힘을 모아서 얼마든지 과학이든 문화이든 사회이든 발돋움할 수 있도록 했으리라 느껴요. 오히려 전쟁 때문에 독재나 권위나 권력이 더 단단해지는 셈이리라 느껴요.



“감히 아버지를 죽였겠다! 술고래에 일자무식에 색만 밝히는 불한당 같은 아버지였지만 내 생명을 준 부모다! 조트 족장 헤이르타슈의 딸 알프리드! 아버지의 원수는 내가 갚겠다!” (30∼31쪽)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갸륵한 소녀에게 담보를 잡겠다고?” “일면식도 없는 사이니, 거래는 안전이 제일이지.” “되게 야박하네! 평생 여자도 없겠다!” (43쪽)


“기왕 살려 줬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냐! 여기서 날 팽개쳤다가 내가 그 은가면하고 재수 없이 마주쳐 죽기라도 하면 평생 후회할걸?” (50쪽)



  만화책 《아르슬란 전기》는 만화가 아라카와 히로무 님이 알맞게 살을 붙이고 재미를 더하면서 ‘사람이 만나고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새롭게 가꾸려 합니다. 싸움터에서 꼭 한 번 만나 서로 칼을 부딪다가 스러지는 사람이 있고, 싸움터에서 뜻밖에 만나 오래도록 동무가 되는 사람이 있어요. 서로 노림수가 있어서 속이거나 속는 사람이 있고요. 둘레에 있는 사람들을 바보로 삼아서 휘두르려는 사람이 있고, 둘레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헤아리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몇 년 전에 나르사스 님께 들었어요. 어른이 되면 저도 거기 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역사며 전설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엘람이 조사한 역사나 전설을 내게도 가르쳐 주겠느냐?”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162쪽)



  나라를 다스릴 만한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아무래도 마음 깊이 사랑이 흐를 만한 사람이어야겠지요. 나 스스로 사랑하고,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며, 먼 둘레 사람 누구나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한 나라 임금(또는 대통령)이 될 만하겠지요.


  그런데 임금(또는 대통령)만 사랑으로 가득해야 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이루는 여느 사람들 누구나 사랑으로 가득해야지요. 임금만 슬기롭거나 사랑스럽대서 한 나라가 아름답지 못해요. 임금은 슬기롭고 사랑스러운데 사람들은 어리석거나 바보스러워서 싸움질만 한다면, 슬기롭거나 사랑스러운 임금은 그만 쿠테타에 스러지겠지요. 거꾸로 사람들은 슬기롭고 사랑스러운데 임금은 어리석거나 바보스러워서 싸움질만 하려 든다면, 이때에도 나라는 어수선하거나 어지러울 테고요.


  《아르슬란 전기》에 나오는 ‘전하’ 같은 사람, 또 ‘나르사스’나 ‘다륜’ 같은 사람, 이런 이들은 오늘날 우리 정치나 사회나 문화에 있을는지 없을는지 문득 생각해 봅니다. 2016.9.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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