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우정에 관하여 - 자매애에서 동성애까지, 그 친밀한 관계의 역사
메릴린 옐롬.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지음, 정지인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66



여성이 맺는 평화로운 우정을 생각한다

―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

 메릴린 옐롬·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글

 정지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6.8.1. 19500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글로 남은 책은 거의 모두 사내가 썼습니다. 오늘날에는 글을 쓰는 가시내도, 대학교수나 정치인인 가시내도 많지만,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가시내가 무슨 글을?’ 하는 얘기가 있었어요. ‘얼마 앞서’란 고작 서른 해 안팎입니다. 그 서른 해 안팎 즈음 ‘가시내가 글을 쓴다’고 한다면 ‘시나 소설이나 수필’에 머물러야 한다고 여기기도 했는데, 조금 더 앞당겨 쉰 해나 일흔 해쯤 앞서는 ‘시나 소설이나 수필’조차 가시내가 쓰기는 매우 어려웠어요.



기원전 600년부터 서기 1600년까지 서구 역사의 첫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정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은 오직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기록의 대부분은 당연히 남성 저자들이 다른 남성들을 위해 쓴 것이었다. (15쪽)


중세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공공연히 함께 사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베긴회 공동체에서는 여성 친구들이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91쪽)



  메릴린 옐롬 님하고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님이 함께 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2016)를 읽으면서 ‘사내와 가시내 사이에 놓인 길’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책은 유럽과 미국에 ‘남은 기록’을 바탕으로 삼아서 지난 2000년 사이에 ‘여성 사이에 어떤 우정이 있었나?’를 밝히는 역사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가시내 이름’은 우리가 흔히 배우는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책 뒤쪽에 나오는 ‘엘리너 루즈벨트’쯤은 세계사 교과서에도 이름이 오를락 말락 할는지 모르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닌 ‘엘리너 루즈벨트’를 세계사 교과서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은 사회 현실’이라고 느껴요. 더욱이 엘리너 루즈벨트라고 하는 사람이 ‘여성 사이에 맺은 우정’뿐 아니라 ‘여성 인권과 평등과 평화’를 이루려고 땀흘린 발자취를 세계사 교과서에서 다루기도 쉽지 않겠지요.



셰익스피어는 여성 친구들이 존재했음을 확인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관계에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고, 서로 협력하여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내는 두 여인의 행위에 의지해 플롯을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 셰익스피어는 어머니가 이모들이나 여자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여성들 간의 유대가 풍기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흡수했던 것 같다. (101, 103쪽)


19세기 초에 책을 접할 수 있었던 여성들 상당수는 독학에 몰두했다. 공교육은 어차피 아직 허술한 수준이었지만, 그런 교육의 기회조차 여성들에게는 잘 돌아오지 않았다. (216쪽)



  한자말 ‘우정’은 “친구 사이에 흐르는 정”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자말이 우리 삶자락에 들어오기 앞서 ‘동무’나 ‘벗’이라는 낱말을 썼어요. 가까이에서 사귀기에 ‘동무’이고, 나이나 생각이 비슷하기에 ‘또래’이며, 가까이에서 사귈 뿐 아니라 나이하고 생각이 비슷하기에 ‘벗’입니다. 둘이나 여럿 사이에 우정이 흐른다면, 나이를 넘고 재산을 넘으며 신분을 넘어서 서로 아끼면서 어루만질 수 있는 사이라는 뜻이라고 느껴요.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는 ‘글로 남은 자료’에 나온 ‘가시내 사이에 흐르던 따스한 마음’을 살핍니다. 가시내 스스로 남길 수 있던 글은 너무 적다 하고, 더욱이 사내 눈치를 안 보면서 홀가분하게 쓸 수 있던 글은 몹시 적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글을 훑고 살피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벗’은 사내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가시내 사이에도 얼마든지 있다는 대목을 밝혀요. 나이가 들어도 가시내 사이에 흐르는 서로 아끼는 마음은 빛이 바래지 않는다는 대목을 보여주고, 집안일과 아이키우기를 온통 도맡으면서도 마을과 나라와 사회를 바라보는 슬기로운 눈길이 깊었다는 대목도 보여줍니다.



1880년부터 1900년 사이에 성년이 된 1세대 신여성들은 자신들이 청년기 초기에 누렸던 자유가 결혼과 함께 끝나버릴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 노동계급 여성들은 대체로 결혼한 후에도 원하지 않아도 일을 해야 했고, 이민자들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랬다. (242, 243쪽)


여자들은 일단 남편만 ‘낚아채면’ 자기 운명에 만족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특히 대공황의 불안한 구름이 채 걷히지 않았던 1930년대에는 더 그러했다. (297쪽)



  가시내 사이에 맺는 따스한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내인 나로서는 이 따스한 마음을 알기 어렵습니다. 아마 가시내인 몸으로 사내 사이에 맺는 따스한 마음을 알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성별이라는 껍데기’를 내려놓고서 ‘사람이라는 넋’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아끼는 따스한 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남녀 사이에 우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거나 ‘남자 사이 우정이 더 깊다’거나 ‘여자 사이 우정이 더 깊다’ 같은 말은 할 수 없겠지요. 남녀 사이가 되든 여여 사이가 되든 남남 사이가 되든, 서로 ‘사람으로서 아끼고 사랑할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우정이라고 하는 마음이 싹트지 싶어요.



맞벌이 가정에서는 남편이 가사일의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경우라고 해도 주부/어머니가 해야 할 일들로 이루어진 ‘추가 근무’는 여전히 주로 아내의 몫으로 남는다. (332쪽)



  나는 시골에서 살며 집일을 도맡습니다. 아이키우기도 제가 도맡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면서 바깥일도 모두 해요. 오늘날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사내가 바깥일하고 집일을 모두 한다’고 하는 대목을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이 꽤 많습니다. ‘사내가 바깥일을 하면 가시내가 집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고 여기거든요. 그러면 거꾸로 생각해서 ‘가시내가 바깥일을 한다’면 이때에는 어떻게 해야 즐거운 살림이 될까요? 사내하고 가시내가 함께 바깥일을 한다면 이때에는 또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살림이 될까요?


  ‘가시내 사이에 흐르는 따스한 마음’이 남다를 수 있는 바탕이라면, 집 안팎으로 모든 살림을 헤아리는 눈길이 있으면서, 아이를 마주하는 손길까지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내는 으레 ‘남자가 밖에서 돈을 벌면 집에서는 쉬어도 되지!’ 하는 생각이기 일쑤인데, 가시내는 이 같은 생각을 ‘으레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바깥일이야 바깥일이요, 집에서는 집대로 누구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옷을 입으니, 집일이란 ‘바깥일을 하거나 말거나 누구나 스스로 즐겁게 맡아서 할’ 일이요 살림이에요.



소셜미디어는 장기적인 유대 관계를 이어가게 해줄 뿐 아니라, 새로운 친구를 발견하고 사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334쪽)



  2010년대에 나온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는 지난 2000년에 걸친 ‘가시내 사이 우정’과 얽힌 글 가운데 ‘지난날 모습’을 들춥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문득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서른 해만 더 흘러도, 또 쉰 해나 백 해쯤 더 흐른다면, 그때에는 2050년대나 2100년대쯤에 누군가 새롭게 쓸 ‘여성 우정’ 이야기는 훨씬 깊고 넓으면서 삶도 사회도 아름다우면서 평화롭고 평등하게 북돋우는 즐거운 노래라고 하는 대목이 돋보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2016.8.2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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