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린네 21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42



바다를 보고 싶던 나무가 바다를 못 보니

― 경계의 린네 21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6.25. 4500원



  나무는 오백 해도 살고 천 해도 살며 삼천 해도 삽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나무가 오백 해쯤 산다면 숲에 있는 수많은 짐승들이 쓰는 ‘온갖 말’을 두루 알아들을 만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리고 ‘사람이 쓰는 말’도 알아들을 만할 수 있겠다고요.


  사람이 백 해를 훨씬 뛰어넘어서 삼백 해나 오백 해나 천 해를 산다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 이만 한 해를 살아낼 수 있으면 몸이나 마음이나 머리에 ‘더 많은 지식’을 쌓을 테고, ‘더 많은 말’을 익힐 테지요. 다른 외국말뿐 아니라 ‘나무가 들려주는 말’도 어렵잖이 익힐 만하리라 느껴요.



“악령이 아니다. 나는 수령 200년 된 나무의 정령. 나는 산에서 태어나 200년을 산에서 살았기에 산 속밖에 몰랐다. 그런데 어느덧 인간의 말을 알아듣게 되어, 이 세상에 바다라는 것이 있음을 알았지.” (37쪽)


“원래 나 혼자 살던 집이라 가족도 없고, 정원도 잡초투성이네요. 그렇게 예뻤는데.” (65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 스물한째 권을 읽습니다. 사람들이 멧자락에 판 굴길(터널)에 갇힌 문어 이야기가 나오고, 숲에서 사람한테 베여 기둥으로 바뀐 나무가 바다를 보고 싶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못 믿을 이야기라 할 테지만, 어느 모로 보면 그럴 만한 이야기입니다. 참말로 우리가 생각을 넓게 하고 마음을 활짝 열면 이 같은 대목을 읽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같은 성질을 가진 혼.”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라면, 즉 짝사랑! 빨간 국수가닥을 ‘잡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사카키 아야메의 강한 영능력이 이상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국수가 폭주하기에 이른 것이다.” (92∼93쪽)



  숲에서만 살며 숲만 보던 나무가 바다를 보고 싶은데, 막상 기둥이 되어 집 바깥을 내다볼 수 없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나무로서 무척 고달프고 슬플 테지요. 작은 새나 벌레나 짐승도 이와 비슷하리라 느껴요.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붙이는 ‘아쉬움’이나 ‘서운함’이나 ‘슬픔’이나 ‘아픔’을 느끼리라 봅니다. 나도 이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웃과 동무 누구나 이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아쉬움을 풀지 못하니 앙금이 쌓입니다. 서운함을 풀지 못하니 응어리가 집니다. 앙금도 응어리도 풀어야 합니다. 서로서로 가슴에 아무것도 맺히지 않으면서 홀가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볍고 산뜻하며 즐거울 때에 비로소 꿈을 이루고 사랑을 이루거든요.



“미안해서 어쩌지? 나만 이렇게 행복해지고.” “그래서 내 성불은?” “이제 국수는 폭주하지 않을 거예요.” “자, 젓가락을. 그리고 빨간 국수는 못 잡았다는 아쉬움보다, 잡고 싶었다, 잡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 봐요. 그럼 틀림없이 잘 될 거예요.” (95쪽)



  꿈을 이루는 사람과 못 이루는 사람을 헤아려 봅니다. 다른 사람을 말하기보다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내가 언제 꿈을 이루는지, 또 내가 언제 꿈을 못 이루는지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홀가분하면서 즐거운 마음일 적에는 늘 신나게 꿈을 이룹니다. 나 스스로 홀가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즐겁지도 않은 마음을 적에는 늘 고단한 나날이 이어지면서 꿈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스스로 새롭게 아침을 열며 살림을 꾸려야 사랑이 샘솟습니다. 스스로 새롭지 못한 하루라면 사랑이 흐르지 못합니다. 언제나 바로 내가 내 삶을 짓고, 참말로 늘 나 스스로 내 살림을 가꿉니다. 만화책 《경계의 린네》는 이 같은 대목을 무척 쉬우면서 부드럽고 재미나게 잘 짚으면서 보여주는구나 싶습니다. 2016.8.1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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