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24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40



앞길을 생각하면서 신나서 살아간다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4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4.6.25.



  익숙한 대로 어떤 일을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익숙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어떤 일을 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때로는 틀리거나 어긋날 수 있으니까요.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어떤 길을 걷는다고 할 만할까요? 늘 똑같은 때에 일어나서 똑같은 몸짓으로 걷는다면, 늘 똑같은 때에 잠들고 똑같은 때에 밥을 먹고 하는 흐름이라면, 이러한 삶은 ‘익숙한’ 대로 지낸다고 할 만할까요?



“너희 아버지가 ‘위대하다’는 전제 자체를 난 동의할 수 없어. 적어도 이 학교에서는 짐도 베티도 짐의 아버지도 알렌 중령도 단지 담당한 역할만 다를 뿐, 우린 다 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사람이 알렌 중령에게 직접 하면 돼.” (11쪽)


“산타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없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았어. 그런 이상 산타의 존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야.” (11∼12쪽)



  어느 모로 본다면 유택 교수는 ‘익숙한’ 대로 사는 듯합니다. 유택 교수를 둘러싼 사람들은 이녁을 ‘익숙한’ 대로 ‘똑같이’ 산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유택 교수는 달라요. 유택 교수는 스스로 ‘익숙한’ 대로 어떤 일을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유택 교수로서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보아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보이는 겉모습에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보거나 저렇게 보거나 따질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꿈을 꾸면서 새롭게 이루려는 생각을 마음에 품지요. 그래서 ‘겉모습’은 남들한테 익숙한 똑같은 몸짓처럼 보이지만, 유택 교수 마음속은 늘 새롭게 들끓거나 춤을 추어요.



“그러고 보니, 자넨, 종전 날 기쁜 듯이 거리를 걷고 있던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뭐?” “조금 더 먼 미래를 보고 싶고, 알고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 신나서 죽을 수가 없습니다.” (26∼27쪽)


“일본인은 예부터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 살면서 바람과 나무, 물과 대지 등 삼라만상에서 신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들의 아픈 곳을 달래 주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팔백만의 신의 존재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기독교도 인정합니다.” (48쪽)



  날마다 익숙한 일을 한다면 하루가 흐르고 또 하루가 흐르더라도 새로울 수 없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한다면 날짜가 바뀌더라도 새로운 일이란 없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누린다면 하루하루 늘 새로운 바람이 불어요. 그러니까 유택이라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 대목을 바라보는 셈입니다. 어제하고 오늘은 똑같을 수 없다고 여기지요. 스무 해를 살았으면 지난 스무 해 동안 ‘똑같은 날이란 한 번도 없었다’고 깨달아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숨결이 흐르고, 모든 하루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르며, 모든 마음은 저마다 새로운 꿈이 흐른다고 할 만하지요.



“그 불빛을 보고 모두가 떠올린 건 공습의 불길이야. 이글거리면서 타들어가서 나중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불길.” “그런 걸 상상한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상상한 건 축복의 따뜻한 불빛입니다.” (61쪽)


“잘 들어, 미네타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나면서 또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거야.” (155쪽)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날마다 새롭게 꿈꿀 수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는데다가 날마다 새로운 꿈이라고는 없기 때문에 삶을 짓지 않아요. 《천재 유교수의 생활》 스물넷째 권에 나오는 ‘알렌 중령’은 ‘늘 똑같을 뿐인 날’이라고 바라봅니다. 이녁을 둘러싼 사람도 ‘언제나 똑같이 그 자리에 머물 뿐’이라는 생각을 아주 단단히 붙잡습니다.


  알렌 중령으로서는 어릴 적에 겪은 어떤 일을 ‘이녁이 배울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생각’으로 여깁니다. 그 자리에서 한 걸음조차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알렌 중령한테는 달력 날짜는 대수롭지 않아요. 모두 똑같으니까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저 똑같을 뿐이에요.



“조금 더 오래 살면 난 얼마만큼의 걸작을 남길 수 있을까? 하지만 헛간에서 지하실로 연결되는 마지막 방을 꾸미면서, 난 문득 깨달았다.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은 너라는 것을.” (189∼190쪽)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배웁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더라도 못 배웁니다. 서로 사람과 사람이라는 숨결을 알아차리거나 느낀다면 이때부터 배웁니다. 서로 사람과 사람이라는 숨결을 읽지 않거나 보려 하지 않는다면 조금도 안 배웁니다.


  사람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어요.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음이 없어요. 우리가 스스로 이를 바라볼 수 있으면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를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이거나 쳇바퀴에서 맴돕니다. 2016.7.2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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