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애벌레 말캉이 1 - 궁금한 건 못참아!
황경택 글.그림 / 소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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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6



‘한 달’을 사느냐, ‘일곱 해’를 사느냐

― 꼬마 애벌레 말캉이 1

 황경택 글·그림

 소나무 펴냄, 2010.12.12. 9500원



  아이들은 낮이나 밤에 좀처럼 잠들려 하지 않습니다.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서 아이들이 낮잠이나 밤잠을 들려 하지 않으면 퍽 고단합니다. 아이들은 더 놀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틀림없이 졸린 눈이요 몸이면서도 자꾸 놀려 하니 고단하지요.


  잠을 안 자려 하는 아이들은 ‘자는 때’가 아깝다고 여깁니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지요. 나도 어릴 적에 이 아이들 같았어요. 한잠이라도 덜 자면 한동안이라도 더 놀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열 살이나 스무 살을 지날 즈음에도 조금이라도 덜 자면서 조금이라도 더 깨어서 지내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무튼 나를 보호해 줘서 고맙다.” “너 스스로 보호한 거야.” “내가 스스로 보호했다고? 야, 난 태어날 때부터 천재구나!” (14쪽)


“꺼억, 잘 먹었다.” “아예 다 먹지 왜 남겼니?” “어, 그럴까 했는데.” “날 걱정해서 그랬구나?” “아니, 배불러서.” (17쪽)



  황경택 님이 빚은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소나무,2010) 첫째 권을 조용히 읽어 봅니다. 이 만화책에는 ‘갓 깨어난 애벌레’가 나옵니다. 이 애벌레는 이제 막 깨어났어도 잎을 갉아먹지요. 다른 벌레나 나무나 새하고 말도 섞어요. 우리들 사람으로 치면 삼백예순닷새를 살아내야 한 살입니다만, 이 애벌레로서는 하루를 살았어도 ‘할 것’을 다 해요. 그러나 아침에 깨어나서 이제 겨우 낮을 지나가는 한삶을 누리니까 저녁이나 밤을 모르지요. 다른 벌레나 나무나 새는 ‘하루’뿐 아니라 ‘한 해’도 알지만 애벌레는 몰라요. 겪은 일이 없거든요.



“너 같은 곤충이 없으면 식물들은 열매를 맺지 못해. 그럼 식물들이 사라지겠지? 그럼 동물들도 살 수 없어. 그래서, 네가 아주 강하다는 거야. 뭔 말인지 알지?” “아니, 모르겠어.” (58쪽)


“낮과 밤을 합치면 하루야. 그 하루가 또 오는 거야. 그게 바로 내일이야.” “……. 넌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마 경험해 보면 너도 알게 될 거야.” (62쪽)



  하루를 오롯이 살아 보지 못한 애벌레로서는 ‘하루’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요. ‘밤’이나 ‘잠’이나 ‘꿈’도 알 길이 없어요. 문득 우리 아이들을 돌아봅니다. 이제껏 날마다 낮밤으로 잠이나 꿈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는데, 아이들은 낮에도 밤에도 졸린 눈을 껌뻑이거나 비비면서 더 놀려 합니다. 그래요, 밤도 잠도 꿈도 아직 잘 모르니 여러 해에 걸쳐 밤이나 잠이나 꿈을 이야기해 주었어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해서 밤에 고요히 눈을 감고 잠들면서 꿈꾸는 하루로 고이 쉬려고 안 할 만하겠구나 싶어요.


  우리는 무엇을 알까요? 우리는 무엇을 겪었을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 일을 조금 더 잘 안다고 할 만할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겪더라도 제대로 못 느끼거나 못 알아채는 살림은 아닐까요? 겪으면 더 제대로 알 수 있다지만 겪으면서도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나머지 못 배울 수 있어요.



“근데, 이 풀이, 넌 맛있어?” “응. 맛있어. 아주 아주.” “아냐, 맛없어!” “맛있어!” “되게 맛없어!” “되게 맛있어!” (72쪽)


“사실, 네가 날 수 있을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 “난 날 거야!” “왜?” “난 날고 싶으니까.” (140쪽)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나도 어릴 적에는 매미가 땅속에서 너무 오래 잠자다가 고작 한 달밖에 못 사네 하고 여겼어요. 어느 매미는 자그마치 열일곱 해나 잠을 자다가 기껏 한 달을 사네 하고 여겼어요.


  그렇지만 매미로서는 다르게 바라보거나 여길 수 있어요. 매미로서는 땅속에서 꿈을 꾸며 지내는 나날이 ‘오롯이 살아가는 숨결’일 수 있어요. 사람 눈으로 보자니 매미는 ‘고작 한 달’을 살지만, 매미 눈높이와 삶자리에서 본다면 ‘고작 한 달’이 아니라 ‘넉넉히 일곱 해’나 ‘즐거이 열일곱 해’일 만합니다.


  잠자리도 개구리도 하루살이도 모두 그렇지요. 사람 눈으로 섣불리 ‘잠자리 나이’나 ‘개구리 나이’나 ‘하루살이 나이’를 따질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모든 목숨붙이는 저마다 다른 살림을 나고 태어나면서 저마다 즐겁게 저희 삶을 짓고 저희 사랑을 나누리라 느껴요.



“한 달 살기 위해 7년을 기다려?” “아니. 그게 아니라, 7년을 살기 위해 한 달을 기다리는 거야. 지금의 나는 알을 낳기 위해 잠시 이 몸을 만든 거야.” (144쪽)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를 읽는 어린이는 이 책에 깃든 이야기를 얼마나 스스로 잘 알아낼 수 있을까요? 또는 이 만화책을 어버이가 함께 읽어 본다면,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새롭게 헤아리면서 찬찬히 들려줄 만할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 눈길’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을 기울이며 사랑을 꽃피우는 대로 산다고 느껴요. 사람이 매미를 어떻게 보든 매미는 매미 나름대로 즐거우면서 새로운 살림이에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기쁘면서 새로운 삶이요 사랑이에요.


  이제 아이들을 이끌고 자전거를 달려서 바닷가로 나들이를 다녀올까 하고 생각합니다. 밥도 든든히 먹였고, 설거지와 빨래도 말끔히 마쳤고, 햇볕도 따뜻하고, 모두 좋습니다. 바람도 살랑살랑 싱그러이 불어요. 아이들이 오늘 하루 누리는 놀이와 살림을 아이들 가슴맡에 기쁜 웃음으로 아로새길 수 있기를 빕니다. 어버이인 나도 내 가슴맡에 오늘 하루 일손과 살림을 신나는 노래로 아로새기려 합니다. 2016.7.1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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