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라, 물개 신나는 새싹 30
주디스 커 글.그림, 길상효 옮김 / 씨드북(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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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1



사람들이 이 녀석을 총으로 쏘려고 했거든요

― 행복해라, 물개

 주디스 커 글·그림

 길상효 옮김

 씨드북 펴냄, 2016.3.18. 12000원



  주디스 커(Judith Kerr)라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아흔 살을 훌쩍 넘긴 분으로, 《행복해라, 물개》(씨드북,2016)라는 이야기책을 서른일곱 해 만에 새로운 책으로 선보였다고 해요.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나 《고양이 모그》 같은 그림책으로 널리 사랑받는 분이기도 하지요. 아흔이 넘은 나이에 선보인 《행복해라, 물개》에는 그림보다 글이 많습니다. 어릴 적 이녁 집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물개 이야기를 새롭게 꾸미려 했다고 합니다.



알버트 아저씨는 따뜻한 햇볕에 온몸을 내맡긴 채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표정으로 누워 있는 새끼 물개를 바라보며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 (17쪽)


아파트 경비원이 아저씨를 막아서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새장 안의 작은 새를 보고도 발끈했던 경비원이 과연 목줄도 매지 않은 커다란 새끼 물개를 보고 뭐라고 할지 걱정이었어요. (32쪽)



  주디스 커 님은 처음에는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나치가 힘을 뻗으면서 독일을 떠나야 했다고 해요. 주디스 커 님을 낳은 아버지가 쓴 책은 나치 독일이 활활 불태우기도 했다지요. 그무렵 아주 어린 나이였던 주디스 커 님은 그 나라(독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답니다. 무엇보다도 고향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온 식구가 흩어진 뒤에 다시 만나야 하는 까닭도 알 길이 없었다고 해요.


  이야기책 《행복해라, 물개》는 주디스 커 님 아버지가 이녁 젊은 날에 ‘집에서 물개를 기르던 이야기’를 언제나 재미있게 듣던 일을 되새기면서,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마무리를 고쳐서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젊은 날 집에서 물개를 기르다가 그만 안락사를 시켜서 박제를 해 놓았다는데, 이야기책에서는 물개가 아버지하고 이웃 아주머니 품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동물원에서 오래오래 함께 잘 살았다는 줄거리로 흘러요.



“이 마개가 문제였…….” 아저씨가 말문을 여는데 아주머니가 다짜고짜 물었어요. “어째서 욕실에 물개를 데리고 있는 거죠?” “동물원에 데려다 주려고요.” 아저씨가 대답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어요. 아저씨가 다시 말했어요. “사람들이 이 녀석을 총으로 쏘려고 했거든요.” “아…….” 아주머니가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물개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39쪽)



  이야기에 나오는 물개는 새끼 물개입니다.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는 이들은 물개가 물고기를 많이 잡아먹는다고 여겨서 물개를 총으로 쏘아 죽이곤 했답니다. 이때에 새끼가 있는 어미 물개를 쏘아 죽이면, 새끼 물개는 어미젖을 먹지 못해서 굶다가 죽는다는데, 바닷가 고기잡이는 어미 물개에 이어 새끼 물개까지 총으로 쏘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이를 본 주디스 커 님 아버지는 가여운 새끼 물개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답니다. 그렇다고 모든 어미 물개와 새끼 물개를 살릴 수 없었을 테지만, 어미를 잃고 우는 새끼 물개하고 눈이 마주친 뒤 차마 등을 돌릴 수 없어서 이 아이를 이녁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대요. 기차에 태워 먼 길을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새끼일 적에는 어미젖 비슷하게 우유를 주면서 키웠는데, 차츰 자라는 동안 젖에서 고기로 넘어가지 않아 몹시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찰리는 작아져버린 양철 목욕통에 들어가기 싫어 한동안 몸부림을 치더니 수레에 실릴 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봤어요. 하지만 아저씨가 수레를 밀며 아주머니와 나란히 걷기 시작하자 찰리는 금세 신이 나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전차와 수레가 지나갈 때는 놀라서 작게 짖기도 했고요. (67쪽)



  《행복해라, 물개》에 나오는 아버지와 이웃 아주머니는 새끼 물개가 느긋하게 지낼 곳을 찾아 온갖 동물원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동물원이든 이 새끼 물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해요. 자, 이제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사람은 그만 두 손을 들고 새끼 물개를 안락사라는 길로 보내야 할까요. 아니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야 할까요. 바다로 돌려보내더라도 총을 쏘아서 죽이는 사람들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바다에서 물개는 물고기를 잡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사람들도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살림을 잇습니다. 물개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아먹지 않으나, 아무래도 사람들 눈에는 물개가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는다고 느낄 만합니다. 물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낚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고 여길 만해요.


  사람들은 물개를 싫어하면서 죽이려 하고, 물개는 사람이 두렵습니다. 둘은 한 바닷가에서 함께 어우러지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바닷가이든 처음부터 사람이 먼저 살지는 않았어요. 언제나 물개가 그곳에서 조용히 살았고, 물개는 저희 목숨을 이을 만큼만 물고기를 잡기 마련입니다. 바다에서 물고기가 줄어드는 까닭은 우리(사람)가 더 많은 물고기를 낚아서 더 많이 돈을 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개가 물고기를 알맞게 잡으며 저희 무리를 지키듯이, 사람도 물고기를 알맞게 낚으면서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가장 슬기로울 텐데, 막상 이처럼 어우러지기는 만만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주디스 커 님은 이녁 아버지하고 물개가 얽힌 이야기를 새롭게 쓰면서 이 대목을 어린이한테 넌지시 들려주려고 했지 싶습니다. “이 녀석을 총으로 쏘려”고 하는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어린이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을 만한가를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이러면서 사람과 물개(를 비롯한 모든 이웃 목숨)가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는 터전을 슬기롭게 생각해 보기를 바랐지 싶어요.


  사람과 물개 사이에서,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밥을 나누고, 서로 삶터를 나누면서,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2016.7.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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