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형제 (브라더스 오브 더 윈드)
Brothers of the Wind, 2015
여섯 살, 일곱 살, 아홉 살 아이가 영화 하나에 흠뻑 빠져듭니다. 영화에 흐르는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하면서 그저 영화를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만화영화도 디즈니영화도 아닌 〈바람 형제 Brothers of the Wind〉는 여러 아이를 한눈에 사로잡습니다.
“바람하고 형제”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체코 영화에는 몇 사람 안 나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은 어린 사내, 사내를 돌보는 아버지, 숲지기(산림보호원), 이렇게 셋입니다. 깊디깊은 멧골과 숲에는 다른 사람이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한집에 살고, 다른 한 사람은 온 숲을 헤매면서 이 숲을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람 형제’ 가운데 하나인 독수리가 나옵니다.
암수 한 짝을 이룬 독수리는 알을 둘 낳습니다. 두 알에서 깬 두 새끼 독수리는 처음 깨어날 적부터 ‘너른 숲을 아우르는 우두머리’ 자리를 누가 물려받느냐 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고 합니다. 먼저 깬 새끼가 으레 우두머리가 된다는데, 나중 깬 새끼는 그만 둥지다툼에서 밀려서 높디높은 벼랑에서 굴러떨어져요.
깊은 멧골숲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면 이 새끼 독수리는 여우밥이 되거나 까마귀밥이 되거나 개미밥이 되었을 테지요. 그렇지만 이 깊은 멧골숲에는 ‘어린 사내’가 있어요. 아버지한테 한 마디조차 말을 하지 않고 마음 깊이 꽁꽁 갇힌 아이가 새끼 독수리를 찾아요.
마음에 아픔이 응어리져서 모든 것에 담을 쌓던 아이는 독수리한테 처음으로 말문을 열어요. 독수리한테 모든 기운과 사랑을 쏟으면서 말을 걸고 돌봐 주지요. 그러나 아이는 독수리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잘 모르고, 숲지기 아저씨가 드문드문 아이한테 독수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아버지하고 멧골숲에서 스스로 모든 살림을 지으면서 먹고삽니다. 다른 데에서 뭘 끌어들이거나 사들여서 꾸리는 살림이 아니라, 깊은 멧골숲에서 다른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손을 움직여서 짓는 살림입니다.
싸움에서 밀려 ‘한 번 죽었다’고 할 만한 독수리는 마음에 생채기가 쌓여 ‘한 번 죽었다’고 할 만한 아이하고 멧골숲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둥지에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싸움에만 휩싸였다면 아이하고 지내면서 처음으로 따사로운 보살핌을 누립니다. 아이도 아버지하고만 있는 집에서 벗어나 빈 오두막에서 혼자 독수리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기쁨을 새삼스레 누립니다.
그러나 아이는 마냥 독수리를 감싸안을 수 없습니다. 숲지기 아저씨는, 독수리를 이제 더 감싸안다가는 이 독수리는 드넓은 멧골숲을 가르거나 하늘을 날지 못한 채 ‘닭’처럼 될 수밖에 없다고 아이한테 얘기합니다. 아이는 곰곰이 생각해요. 사랑스러운 독수리를 품에서 떠나 보내야 하는 일을 생각해요. 왜냐하면 독수리가 독수리다우려면 아이 품이 아니라 하늘을 마음껏 가르면서 바람을 마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도 이제는 새로운 몸과 삶으로 거듭나야 할 때예요.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만 먹고, 아버지가 지어 놓은 집에서만 자는 하루가 아니라,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장작을 패고 밥을 짓고 살림을 가꿀 줄 아는, 바야흐로 철이 들면서 생각을 슬기롭게 빚을 줄 아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 독수리가 하늘을 가르며 날 수 있을 때에는 아이도 스스럼없이 말문을 열 테지요? 싸움에서 밀렸던 둘째 독수리가 앙갚음을 하지 않고 슬기로운 평화를 새롭게 짓듯이, 아이도 이제는 입을 꾹 다무는 짓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깊은 멧골숲을 고요하면서 포근하게 보듬는 사랑살림을 새롭게 지어야 할 테고요. 2016.7.3.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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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영화읽기/영화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