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표현력 사전 - 수준 높은 책읽기 논리적인 글쓰기 교양 있는 말하기를 위한
기획집단 MOIM 지음, 조양순 그림 / 파란자전거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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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0



‘교양 있는 표현력’은 한자말인가?

― 초등 표현력 사전

 기획집단 MOIM 글

 조양순 그림

 파란자전거 펴냄, 2016.4.20. 13900원



  《초등 표현력 사전》(파란자전거,2016)은 “수준 높은 책읽기, 논리적인 글쓰기, 교양 있는 말하기를 위한” 같은 작은이름이 붙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가 “수준 높은” 책읽기를 하도록 도우며, “논리적인” 글쓰기를 하도록 도우며, “교양 있는” 말하기를 하도록 돕겠다고 하는 뜻처럼, 어쩌면 이 책은 이러한 테두리에서 도움이 될는지 모릅니다.



[머리가 모자라다]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머리가 복잡하다] 고민이 많아서 마음이 혼란스럽다

[얼굴이 두껍다] 부끄럼이나 염치가 없이 뻔뻔하다

[얼굴을 돌리다] 상대방을 피하거나 외면하다

[낯이 깎이다] 체면이 손상되다



  그런데 이 《초등 표현력 사전》을 찬찬히 읽으면서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머리가 모자라다]라는 올림말을 풀이하면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로 적는데, ‘부족하다’라는 한자말은 바로 ‘모자라다’를 뜻합니다. [머리가 복잡하다] 같은 올림말은 “혼란스럽다”로 풀이하지만 ‘복잡하다’와 ‘혼란스럽다’ 같은 한자말은 얼마나 다를까요? [얼굴이 두껍다] 같은 올림말을 “부끄럼이나 염치가 없”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염치’라는 한자말은 바로 ‘부끄럼’을 뜻합니다. [낯이 깎이다]라는 올림말을 “체면이 손상되다”로 풀이하지만 ‘낯’을 ‘체면’으로 바꾸고 ‘깎이다’를 ‘손상되다’로 바꾸었을 뿐이에요.



[입을 봉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다 /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지 못하다

[침 발라 놓다] 자기 소유물로 정해 놓다

[가슴을 울리다] 감동시키다

[가슴이 찔리다]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교양 있는 표현력”이란 ‘한국말을 한자말로 바꾸는 일’일까요? [입을 봉하다] 같은 올림말을 생각해 봅니다. [입을 꿰매다] 같은 올림말을 다룰 만하지 않을까요? 한자말 ‘봉하다’는 ‘꿰매다’를 가리킵니다. [가슴을 울리다] 같은 올림말을 “감동시키다”로 풀이하는 대목도 아쉽습니다. 한국말을 한자말로 풀이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찔리다]를 “양심의 가책” 같은 ‘표현력’으로 풀이하는 대목에서도 아쉽고요.



[손에 익다] 익숙하다

[손이 가다] 육체적으로 힘을 기울이다

[미관상 나쁘다] 보기에 좋지 않다

[구태에서 벗어나다] 예전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탈바꿈하다

[사지가 멀쩡하다] 몸이 건강하다



  [손에 익다]를 “익숙하다”로 풀이하지만, 정작 ‘익다’와 ‘익숙하다’가 어떻게 다른 한국말인지 《초등 표현력 사전》은 제대로 밝히지 못합니다. [미관상 나쁘다]라든지 [구태에서 벗어나다]라든지 [사지가 멀쩡하다] 같은 한자말을 섞은 ‘표현력(관용구)’은 어른들이 흔히 쓰는데, 이런 한자말은 일제강점기부터 널리 퍼진 일본 한자말이기 일쑤입니다. 초등학교 어린이한테 꼭 이런 표현력을 가르치거나 알려주어야 할는지 차분히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말이 통하다] 두 사람의 뜻이 같거나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해서

[말꼬리를 잡다] 상대방의 말 가운데 사소한 문제를 지적해 공격하다



  쉬운 말을 쉽게 풀이해야 쉽게 알아듣습니다. 쉬운 말을 쉽게 풀이하지 않고 ‘한국말 아닌 한자말’을 잔뜩 빌어서 풀이한다면, 아이들은 이러한 글을 읽고 머리가 더 아프기만 하리라 느껴요.



[기치를 내걸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장을 앞세우다

[긴히 할 말이 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열변을 토하다] 목소리를 높여 자기 주장을 내세우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전혀 쓸모가 없다

[일언반구 말이 없다] 아무 말도 없다

[화제를 바꾸다] 이야깃거리를 다른 것으로 바꾸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초등 표현력 사전》은 사회에서 어른들이 좀 지나치다 싶게 흔히 쓰는 ‘한자말 표현’을 너무 많이 싣는다고 느낍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회에서 어른들이 손보거나 손질할 때에 더 아름답다고 여길 만한 올림말까지 실었구나 싶기도 해요. [열변을 토하다]나 [일고의 가치]나 [일언반구]나 [화제]나 [원천적 불가능] 같은 말마디를 가르치는 뜻을 다시금 짚어야지 싶어요. 쉬우면서 예쁜 말을 찾고,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한국말을 아이들이 배우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고주망태가 되다] 술을 마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다

[기승을 부리다] 굳세고 강하게 행동하다

[노익장을 자랑하다] 나이는 들었으나 힘이 있음을 널리 알리다

[답습하다] 이전까지 내려온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다

[박차를 가하다] 일이 더 빨리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다

[진풍경을 연출하다] 보기 드문 구경거리를 보여주다

[국위를 선양하다] 나라의 힘과 위력을 널리 알리다



  그리고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하나인 [고주망태가 되다]까지 굳이 아이들한테 가르쳐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을 아이들한테 모조리 가르치도록 이끄는 일은 그리 ‘표현력 키우기’가 될 만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표현력이란 외국말을 더 잘 쓴다고 해서 살릴 수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영어를 더 잘 쓸 수 있어야 표현력이 살지 않습니다. 한자를 더 많이 외워야 표현력이 살지 않습니다. 생각을 가꾸고 마음을 살찌울 때에 표현력이 살 테지요.



[미증유의]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심한

[유명을 달리하다] 죽어서 저세상으로 가다

[유종의 미를 거두다] 일의 마무리가 만족스럽게 잘되다

[종언을 고하다] 어떤 일이나 상황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다

[종지부를 찍다] 어떤 상황이 종료되거나 일을 끝내다

[독보적인 존재] 남이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나 사물

[우위를 점하다] 상대방에 비해 높은 위치에 있다



  곰곰이 돌아보니, 《초등 표현력 사전》은 ‘한자말 표현력 사전’이라고 여겨야지 싶습니다. 좀 지나치다고 느낄 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이 먼저 스스로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다듬어야 할 말마디가 너무 많이 실렸기 때문에, 이러한 대목에서 우리 어른들은 생각을 기울여 보아야지 싶습니다.


  말살림은 더 많은 낱말을 알기에 살찌우지 않습니다. 말넋은 더 많은 한자말을 알아야 키우지 않습니다. 흔하거나 수수한 낱말 한 마디부터 제대로 살리고 넉넉히 가꿀 적에 비로소 말살림이나 말넋을 북돋울 만하다고 느낍니다.



[-은 고사하고] -은 그만두고 / 더 말할 나위도 없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절세의 미인]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여인

[공세를 취하다] 공격하는 태도를 갖추다

[교두보로 삼다] 어떤 일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삼다

[공방전을 벌이다] 서로 공격과 방어를 이어 가는 전투를 벌이다



  그리고 《초등 표현력 사전》은 ‘전쟁과 얽힌 한자말’도 많이 실립니다. [공세]나 [교두보]나 [공방전] 같은 한자말은 이 낱말에 깃든 ‘전쟁 기운’까지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셈입니다. [고사하다]나 [타의 추종 불허] 같은 말마디는 ‘국어순화’를 할 말마디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절세의 미인] 같은 말마디를 아이들한테 알려주는 뜻이 아리송합니다. 너무 어른 잣대로, 너무 어른 사회 테두리에 맞추어, 아이들 말을 길들이려는 흐름이나 줄거리는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모로 많이 아쉬운 책입니다. 2016.7.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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