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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맑음 ㅣ 문학의전당 시인선 226
최상해 지음 / 문학의전당 / 2016년 5월
평점 :
시를 노래하는 시 115
바람이 세찰수록 밝은 별빛을 노래합니다
― 그래도 맑음
최상해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6.5.27. 9000원
비가 오고, 비가 그칩니다. 해가 나고, 해가 집니다. 구름이 끼고, 구름이 걷힙니다. 때로는 무지개가 뜹니다. 그렇지만 요새는 무지개를 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지를 만한 터전이 못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소나기나 무지개는 흔했는데, 이제는 시골에서조차 무지개가 매우 드문 날씨입니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비가 세차게 몰아쳐도 머잖아 날이 개요. 아무리 어두운 밤이 길어도 머잖아 아침이 밝아요.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머잖아 봄이 찾아와요. “그래도 맑음”이에요.
새벽마다 배냇저고리 같은 밀양강이 콧김을 내뿜고, 씩씩거리는 강줄기를 달래는 영남루와 마주한 삼문송림이 울울창창 위용을 뽐내는 밀양에는, 누구든 한 발 들이기만 하면 쉽게 마음을 내려놓고 만다. (밀양)
강도 아이고 늪도 아이고 첩첩산중에 악어떼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 사는 마을 앞에 뒤에 위에 해 뜨면 긴 그림자로 머리를 내리눌리고 비만 오면 씩씩거리고 윙윙거리는 악어떼가 지나다닌다는 게 말이 되나 이 말이지요. 소문이 돌 때만 해도 아무도 안 믿었지요.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 꿈만 같아요. (악어떼가 나타났다)
최상해 님이 선보인 시집 《그래도 맑음》(문학의전당,2016)을 읽습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랐다는 최상해 님은 경남 창원에서 아이를 낳아 살림을 짓는다고 합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 ‘그래도 맑음’이라는 시는 없습니다. 이 이름으로 쓴 시는 없지만 시집 이름은 ‘그래도 맑음’입니다. 시집 이름은 ‘그래도 맑음’인데, 이 시집을 읽으면 밀양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아니, 밀양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가 하나씩 태어나서 이 시집을 이루었다고 할 만합니다. 밀양에서 사는 이웃을 마음으로 아끼려고 했기에 이 마음이 고스란히 시로 태어났다고 할 만합니다.
내 당숙 이름은 ‘히도’이다 / 일제강점기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름 / 어릴 적 히도 아재 하고 / 내 입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 얼굴 붉히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히도 아재)
장마가 아무리 길어도 햇볕은 이 땅을 내리쬐어 줍니다. 나락은 볕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옥수수도 콩도 오이도 들깨도 볕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능금도 배도 포도도 살구도 볕을 받으면서 익어요. 그러니까 우리 삶터는 ‘그래도 맑음’이기 때문에 쌀밥을 먹고 여러 남새를 먹으며 온갖 열매를 먹을 수 있어요. 우리 삶자리가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마음속으로 ‘그래도 맑음’이라는 꿈을 품기 때문에 다시금 기운을 차릴 수 있어요.
어릴 때는 / 잘 자라는 말이 / 단순하게 / 잘 자라는 말로만 들렸는데 / 지금 생각해보니 / 잘 자라는 말은 / 잘 자라나라는 / 말 (잘 자라)
가난한 소극장에서 / 오디션을 보던 날 / 푹 고개 숙인 내 등 뒤에서 / 살포시 안아주시던 / 어머니 (버릇)
어머니가 아이를 살포시 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살포시 안는 따사로운 품을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아이는 어느새 자라서 어머니가 됩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었을 테지요. 할머니는 할머니가 되었어도 이녁 아이는 언제나 이녁 아이예요. 그래서 할머니는 이녁 아이인 ‘어머니가 된 어른’을 늘 곱게 따스하게 살포시 안아 줍니다. ‘어머니가 된 아이’는 어머니로서 낳은 아이를 이녁 어머니(할머니)가 늘 했듯이 곱고 따스하며 보드라운 품으로 살포시 안아 주어요.
시집 《그래도 맑음》을 읽으면 최상해 님이 낳은 아이가 대학교를 그만두고 용접공으로 일하는 이야기가 나란히 흐릅니다. 퍽 어린 나이에 고된 일을 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꽤 어린 나이에 고단하게 일을 하는 아이를 마주하면서, 대학교 졸업장이 아닌 용접공이라는 이름을 얻는 아이와 함께 살면서, ‘그래도 맑음’을 곱다시 되새깁니다. 그래요, 참으로 ‘그래도 맑음’입니다. 어떤 일이 있든, 어떤 일을 맞이하든, 어떤 일을 맞닥뜨리든, 우리 마음은 늘 ‘그래도 맑음’이지 싶습니다.
가끔 스무 살 적 창가에 / 나를 꿇어앉히기도 하지만 / 내일은 여전히 맑음 / 깜깜하고 무겁던 그림자를 끌어안고 / 여인숙 골방 깊숙이 / 슬픔의 무게만큼 가둬놓았던 / 한때의 시간, 그래도 맑음 (해피엔딩)
어둠이 깊은 곳에서는 어둠만 보인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둠이 깊은 곳에 있기에 이 어둠을 밝히는 빛나는 별빛이 있구나 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밝은 곳에서는 밝음만 보인다고 느끼기 마련이지만, 이 밝은 낮이 저물면 곧 어두운 밤이 되는 줄 깨닫기도 해요.
슬픈 무게를 떠올리면서 슬픈 무게에 가라앉기도 하지만 다시금 마음속으로 ‘그래도 맑음’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흐리지만, 모레에는 글피에는 틀림없이 ‘그래도 맑음’이 되리라 여기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세차기에 이 세찬 바람이 곧 그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할까요. 고단한 나날이 깊기에 이 고단한 나날이 곧 멎으리라고 여길 수 있다고 할까요. 마음속에 꿈을 품기에 이 꿈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할까요.
어둠이 / 지독할수록 / 바람이 / 세찰수록 / 빛나는 / 별 하나 / 내 가슴속에 산다 (북극성, 아버지)
씨앗 한 톨을 땅에 심으면 곧바로 싹이 트지 않습니다. 씨앗 한 톨을 땅에 심은 뒤 ‘씨앗 묻은 자리’를 따사로이 보살피면서 지켜보기에, 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지나며 사흘이 가고 이레쯤 이를 무렵 빼꼼하고 자그마한 싹이 올라옵니다. 씨앗 한 톨을 손에 쥐면 며칠이나 몇 달이 지나도 싹이 트지 않는데, 땅에 묻으면 며칠 뒤에 감쪽같이 싹이 터요. 참 놀라우면서 대단하지요.
이 놀라운 씨앗 한 톨처럼 삶을 사랑으로 밝히려는 싯말 한 자락을 조곤조곤 곱씹습니다. 내가 오늘 심어서 가꿀 씨앗을 고요히 되새깁니다. 빗내음을 머금으며 살랑살랑 이는 여름 바람을 느끼면서 시집 《그래도 맑음》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2016.6.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