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도서관 풀내음

― 풀내음 맡는 흙에서 배우기



  마당에서 붓꽃이 노랗게 올라옵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오늘은 붓꽃이 몇 송이가 더 늘었나 하고 숫자를 셉니다. 어느 날 아침에 한 송이가 터진다 싶더니, 이내 두 송이가 더 벌어지고, 저녁에 새롭게 두 송이가 더 벌어집니다. 이튿날에도, 또 다음 날하고 다음다음 날에도 자꾸자꾸 더 벌어집니다.


  마당 한쪽에서 붓꽃이 봉오리를 열 즈음, 뒤꼍에서는 찔레꽃이 흐드러집니다. 찔레꽃이 달콤한 냄새를 퍼뜨리는 철에는 감나무에 올망졸망 감꽃이 달려요. 꽃내음을 맡으며 호미를 놀리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옮아 가는 철을 처음 겪지 않습니다. 해마다 겪지요. 그런데 해마다 겪고 만나고 누리고 맞이하는 이 오월꽃과 유월꽃이 더없이 싱그럽습니다. 해가 갈수록 한결 짙으면서 맑은 숨결로 우리한테 찾아오는구나 싶어요.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후박나무랑 초피나무를 살피다 보면, 반짝반짝 푸른 잎빛이 곱기 마련인데, 때때로 잔뜩 파인 잎이 보입니다. 어느새 애벌레가 이렇게 갉아먹었나 하고 갸우뚱하는데, 온통 푸른 잎물결 사이에서 푸른 빛깔 애벌레를 찾아내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애벌레를 찾기도 만만하지 않고, 번데기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어느 날 갑작스레 나비가 쏘옥 하고 나타나요.


  우리 집 나무에 기대어 알을 낳고 애벌레로 자라다가 번데기로 잠을 잔 뒤에, 바야흐로 곱게 깨어난 나비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어요. “얘, 넌 언제 여기에서 깨어났니? 네 번데기는 어디에 있었니?”


  무늬가 몹시 고운 나비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 님이 쓴 《은하철도 저 너머에》(너머,2016)라는 책을 읽습니다. 갓 깨어난 나비는 날개를 말리느라, 또 날갯짓에 힘을 주느라, 두 시간 가까이 마당에서 이리 걷다가 저리 날아오르려다가 톡 떨어지다가를 되풀이합니다.


  “조반니는 자신을 격려하듯 말했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아빠와 엄마를 추억하는 일이 아니야.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는지를 아는 일이야.” (179쪽)


  나비가 깨어날 수 있는 까닭은 ‘어제(지난날·과거)’가 아닌 ‘오늘(오늘날·현재)’을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앞으로 새롭게 살아갈 ‘모레(앞날·미래)’를 생각하고 온몸으로 꿈을 꾸기 때문에 ‘알→애벌레→번데기→나비’라는 놀라운 거듭나기를 보여주는 셈 아닌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큰아이는 ‘우리 집 나비’를 보다가 나비 그림책이나 나비 도감을 들고 나와서 어떤 이름인가를 알아보려고 애씁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애벌레를 마당에서 보고는, 나뭇가지에 애벌레를 옮기고는 다시 그림책이나 도감을 펼쳐서 어떤 이름인가를 찾아내려고 용씁니다.


  풀밭에서 풀밥을 먹고 풀벌레가 살아요. 나무에 깃들어 나뭇잎을 먹으며 애벌레가 살아요. 사람은 풀도 먹고 나무 열매도 먹어요. 사람은 풀씨를 갈무리하고 가꾸어서 남새로 키우고, 나무를 집이나 마을 둘레에 심어서 숲정이를 짓습니다. 수백 해를 고이 돌본 나무는 먼 앞날에 이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태어나서 살아갈 ‘앞날 아이(미래 아이)’가 집을 지을 적에 기둥이 되고 도리가 되겠지요. 나무를 심어서 돌보는 동안, 오늘 우리는 그늘과 바람과 열매를 얻고, 먼 앞날 아이는 집을 얻어요.


  김준 님이 쓴 《섬: 살이》(가지,2016)를 읽습니다. 뒤꼍에서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다가 커다란 돌을 캐내고는 등허리를 펴면서 읽습니다. 커다란 돌은 아이들이 딛고 뛰어내리는 놀잇감이 되다가는, 내가 밭일을 쉬며 앉아서 쉬는 ‘쉼돌’ 구실을 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도와서 씨앗을 함께 심기도 하고, 풀밭에 폭 엎드려서 무당벌레를 그림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어른이란 ‘한몫’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몫을 맡아서 할 만큼 자랐다는 의미이다 … 한몫은 다른 말로 ‘한짓’이다. ‘온짓’이라고도 한다. 품앗이를 할 때 보통은 일대일로 품을 교환하지만 일손이 부족하면 ‘반짓’도 필요하다.” (266쪽)


  사진이 아닌 두 눈으로 무당벌레를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책이나 도감에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손바닥에 올려놓거나 민들레 꽃씨에 앉아서 짝짓기를 하는 노린재를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려요.


  풀밭에 엎드리거나 앉으면서 풀내음을 맡지요. 호미로 밭을 갈면서 흙내음을 맡고, 흙결을 온몸으로 맞이해요. 아이들은 꽃삽으로 땅을 파며 흙놀이를 하다가 “아이 참!” 하면서 뭔가를 성가셔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고 지켜보니 모기 때문입니다. 그렇구나, 모기가 깨어날 철이지.


  그동안 미리 뽑아서 잘 말린 쑥하고 짚을 그러모아서 모깃불을 피웁니다. 올들어 첫 모깃불을 구경하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여기는 듯했지만, 어느새 불가에 다가섭니다. 작은 모깃불을 둘러싸고 불씨랑 불티랑 불꽃이랑 불길을 바라보다가 “땔감!” 하면서 땔거리를 찾는다며 바지런을 떱니다.


  곧 대숲에서 대를 베어다가 짚보다 훨씬 오래 타는 땔거리를 마련하자고 생각합니다. 뒤꼍에서도 마당에서도 저녁마다 모깃불을 태운다면, 아이들은 이 모깃불을 둘러싸고 노래하며 춤추는 저녁놀이를 누릴 테지요. 이동안 나는 곁님하고 이야기꽃을 즐길 만하리라 느껴요. 해를 바라보면서 풀바람을 쐬는 흙일을 하고, 달을 바라보면서 모깃불 연기를 쐬는 저녁놀이를 하는 셈일까요.


  풀내음을 맡으며 풀한테서 배웁니다. 흙내음을 맡으면서 흙한테서 배웁니다. 철이 바뀌는 숲바람을 쐬면서 바람한테서, 또 숲한테서 배웁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늘 새롭게 배우는 싱그러운 봄 끝자락이요 여름 첫머리입니다. 2016.5.18.물.ㅅㄴㄹ


(‘도서관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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