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그제 밤부터 서울마실을 헤아리며 짐을 챙기고 막바지 원고 교정을 했다. 이 막바지 원고 교정은 한 번 더 해야 한다. 아무튼 고흥집에서 밤을 새다시피 원고 교정을 했고, 어제 아침에 이웃마을에서 읍내로 가는 군내버스를 여덟 시에 타려고 일곱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서기까지도 원고 교정을 했고, 군내버스에서도 시외버스에서도 내내 원고 교정을 했는데, 이때에 한 가지를 아주 뚜렷하게 느꼈다. 집안일을 안 하고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면서 원고 교정에만 오롯이 마음을 쓰다 보니, 원고 교정이 아주 빨리 끝났다. 원고지 삼천 장에 이르는 원고 교정을 참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이 일을 여러 날에 걸쳐 해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는데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맞이했다. 시외버스가 성남이라는 곳을 가로지를 즈음 원고 교정을 마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고맙고 예쁜가, 아버지가 혼자 바깥일을 보러 나들이를 나올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면서 저희끼리 고흥집에서 놀아 주는 이 아이들이란 얼마나 사랑스럽고 훌륭한가 하고 생각했다. 겉으로만 보자면 나는 ‘내 이름’만 ‘내가 쓴 책’에 올리지만, 막상 내가 쓴 모든 책에는 곁님뿐 아니라 아이들 숨결이 고이 깃들면서 네 사람, 아니 여섯 사람(먼저 떠난 두 아이를 더해서) 손길이 깃들었다고 할 노릇이지 싶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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