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중’인 집에 들이닥치지 마셔요



  어제 5월 24일 낮에, 어느 방송국 다큐팀에서 전화가 왔다. 5월 26일 목요일부터 6월 5일까지 열흘에 걸쳐서 방송을 찍자고 한다. 너무 갑작스럽기에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들하고 읍내에 나가는 군내버스였기에 집으로 돌아가서 연락하겠노라 하고 끊었다.


  다큐 방송은 지난해부터 촬영 섭외가 왔다. 지난해 끝무렵에는 ‘올해 유월에 선보일 새로운 사전 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아주 바빴기 때문에 뒤로 미루자 했고, 올 1월에는 ‘올해부터 우리 집 아이들하고 시골집 도서관에서 새롭게 배우고 가르치는 얼거리를 세우기 때문에 어떤 바깥손님도 받지 않는다’는 말로 미루자 했다. 적어도 삼월쯤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월 즈음 다큐팀에서 고흥에 한 번 왔는데, 그 뒤로 딱히 언제 찍겠노라 하는 말이 없어서 안 찍나 보다 하고 여겼다. 이러다가 지난주 즈음 새로운 피디가 찍기로 했다면서 이주에 다시 한 번 와서 어떤 살림을 찍으려 하는가를 이야기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와 본다고 하면서 언제 오겠노라 하는 말은 없이 다큐팀 회의로 촬영 날짜를 잡아서 통보를 한 셈이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차렸다. 아이들이 밥을 먹도록 한 뒤에 전화 아닌 쪽글로 우리 살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5월 21일에 ‘유산’을 한 곁님을 돌보아야 하기에, 적어도 석 주는 바깥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방송국 다큐팀은 내 쪽글에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 하고 답쪽글을 남겼다.


  짤막한 답쪽글을 받고는 내 마음속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이를테면 ‘끓어오르는 짜증’ 같은 뭔가가 일어났다.


  ‘한 목숨이 며칠 앞서 바람처럼 떠나서 조용히 지내는 시골집’에 ‘열흘씩이든 하루이든 방송국에서 바깥손님으로 들이닥치는 일은 반기지 않는다’는 뜻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을까? 내가 아무리 사회하고 손을 끊고 지낸다고 하지만, ‘상중’인 집에 무턱대고 찾아가지는 않는다.


  방송국에서는 무엇이든 ‘그림이 되는 다큐’를 찍겠다는 마음일는지 모른다만, 방송이든 다큐이든 어떤 일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는 일을 하겠노라 한다면, 언제나 ‘찍히는 사람’을 헤아릴 노릇이라고 느낀다. 아무 때에나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아이들을 재우고,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끙끙 앓으며 자다가 깊은 밤에 문득 한 가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이번 다큐 방송은 말끔히 손사래쳐야겠다고. ‘방송국 사람’은 ‘이웃이나 동무’가 아닐는지 모르나, 피디나 작가라는 자리에 앞서 그들이나 나나 모두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집이나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려면 먼저 ‘이웃이나 동무’가 되려는 마음이시기를 바랍니다. 2016.5.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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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minee 2016-05-2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들은 자기들 입장에서만 상대방을 대하는듯 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숲노래님의 방송도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