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물드는 눈 2 - 완결
우니타 유미 지음, 김재인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27



말은 어설퍼도 마음은 잘 다가왔어

― 푸르게 물드는 눈 2

 우니타 유미 글·그림

 김진희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6.4.29. 7000원



  우리는 서로 말을 주고받아요. 말을 주고받는 까닭은 내 말뜻을 알리면서 네 말뜻을 들어야 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서로 말뜻을 알리고 듣기도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서로서로 어떤 마음인가 하는 대목을 함께하려는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밥상맡에서 밥이 맛있다고 말을 한다면, 어떤 마음이나 몸짓으로 이런 말을 할까요? 녹음된 목소리를 기계처럼 읊는 말인가요, 아니면 마음을 깊이 담아서 노래처럼 들려주는 말인가요?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늘 다른 마음이요 언제나 새로운 마음이며 노상 사랑을 품는 마음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내 말이 마음을 전해 줬어?” “저, 전해졌어. 제대로 전해졌어.” (11쪽)


“유키코도 외쿡인이었구나!” “아, 아이다! 내 일본인이다!” “뭐?” “아, 난 몰라. 사투리 터져 버렸어.” (46쪽)



  우니타 유미 님이 만화로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푸르게 물드는 눈》(애니북스) 둘째 권을 읽으면서 ‘말에 담는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모두 두 권으로 마무리짓는 이야기인데, 2013년에 첫째 권이 나온 뒤 세 해가 지나서야 둘째 권이 나옵니다. 참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하고 느끼는데, 빨리빨리 그려내어 빨리빨리 읽고 치우는 만화가 아니니, 이쯤 기다리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천천히 피우는 나즈막한 숨결이 싱그럽다고도 느낍니다.


  만화책 《푸르게 물드는 눈》은 두 사람 사이에 얽히는 사랑스러운 마음을 다룹니다. 한 사람은 일본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사람입니다. 다만, 일본과 중국이라고 하는 ‘나라(국적)’는 겉모습입니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시골이라 할 만한 곳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도쿄로 왔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일본으로 배움길을 왔어요. 두 사람은 ‘다른 터전’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니 다른 말과 삶과 살림이 몸에 익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다른 터전’에서 무르익은 말·삶·살림을 ‘하나인 사랑’으로 지피려 합니다.



“유키코는 물건 아니야! 중요한 건 유키코 마음이야!” (67쪽)


“게츠, 나 말이야, 사투리 공부할까?” (71쪽)



  아직 일본말이 서툰 중국 유학생은 ‘표준 일본말’을 알아듣거나 따라하는 일도 살짝 벅찹니다. 이녁은 ‘시골 일본말’을 처음 들은 자리에서 ‘시골 일본말’은 ‘외국말’로 여깁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도 엇비슷해요. 요새는 방송이나 책이나 교과서나 학교나 사회 얼거리 때문에 고장말이 거의 사라졌습니다만, 깊은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는 분들은 ‘표준 한국말’이 아닌 ‘시골 한국말’을 쓰셔요. 시골에서는 공공기관이나 학교조차 모두 표준 한국말을 씁니다만, 작은 마을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와 할배는 으레 시골 한국말을 써요.


  서울말에 익숙하면 시골말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서울말은 이름 그대로 서울에서 주고받는 말이요, 시골말은 시골에서 주고받는 말입니다. 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는 저마다 고장말이 있습니다. 미국도 서부와 중부와 동부와 남부와 북부가 말이 다르고, 중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쓰는 영어가 다릅니다. ‘사는 터전’이 다르기에 삶이나 살림도 다르기 마련이라, 말도 함께 달라요.



“됐다! 마도카는 익숙한 고향 말을 듣고 안심하고 싶은 것뿐이다! 거꾸로 말해서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단 거고! 게다가 내 마음 같은 건 딱히 알려고도 안 했잖아?” (103쪽)


“나에겐 모두 확실히 전달되었어. 안심해.” (140쪽)


“사모님은 아야메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시나 봐요.” “아하하. 그야 엄마니까 대충은!” (146쪽)



  모든 사람이 서울말을 쓰기에 서로 말을 잘 나누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둘레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이 대목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서로 ‘같은 표준 한국말’을 쓰지만 ‘의사소통이 안 된다’거나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표준말을 쓰기에 서로 마음을 환하게 열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똑같은 표준말을 쓰느냐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구나 싶어요. 만화책 《푸르게 물드는 눈》에서도 나오듯이, 일본사람하고 중국사람이라고 하는 머나먼 틈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따사로이 아끼고 너그러이 보듬으려고 하는 사랑스러운 마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마음 나누기’를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같은 말’을 쓰기에 나누는 마음이 아니라, ‘같은 마음’이 되어 ‘같은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일 때에 나누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나는 생각해. 제대로, 포기하지 않고, 말하면, 틀림없이 마음은 전해진다고.” (167쪽)



  서로 사랑이기에 푸르게 물들 수 있습니다. 푸르고 싱그럽게 물들 수 있어요. 푸르면서 싱그럽게 피어나는 풋풋하면서 고운 숨결로 물들 수 있어요.


  마음을 나타내려고 말을 하기에 마음이 드러나요. 마음을 읽으려고 귀를 기울이기에 마음을 알아요.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입을 열기에 마음을 함께 열어요. 마음을 나누려고 부드러이 손을 내밀기에 함께 삶을 짓는 기쁜 사랑으로 피어나요. 2016.5.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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