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나무 풀빛 그림 아이 15
숀 탠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57



희망 없는 아침을 맞이하며 고단한 이웃님께

― 빨간 나무

 숀 탠 글·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펴냄, 2002.10.21. 11000원



  숀 탠 님이 빚은 그림책 《빨간 나무》(풀빛,2002)를 선물로 받아서 펼치는데, 첫 쪽부터 숨이 막히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그림책은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숨이 막히는 삶’을 보여주거든요. 줄거리가 ‘숨이 막혀서 괴로운 삶’을 보여주니, 이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로서도 괴롭습니다.


  그림책은 어린이만 보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보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 가운데 ‘어린이보다 어른한테 어울리거나 걸맞는 그림책’이 있어요. 《빨간 나무》는 바로 어린이보다 어른한테 읽힐 때에 잘 어울리거나 걸맞을 만한 그림책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5쪽)



  왜냐하면, 오늘날 무척 많은 ‘어른’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모습을 느낀다고 하거든요. 메마른 사회에서 쳇바퀴를 똑같이 도는 하루를 맞이하기에 괴롭거나 고단합니다. 괴롭거나 고단한 나머지 어느새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하루를 맞이하고 맙니다.


  달력을 들여다보면 어느 때에는 끔찍하기조차 하지요. 정년퇴직을 하는 날까지 이 달력에 적힌 숫자대로 꼬박꼬박 날마다 똑같은 일만 해야 하거든요. 이러면서 받는 일삯은 그다지 크지도 않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웬만한 수험생도 ‘어른 못지않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하루를 맞이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대학교 가운데 이름이 높은 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보내야 하거든요. 푸르게 빛나는 나날이 아니라, 입시공부로 지옥 같은 나날이에요. 이런 지옥 같은 나날이라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 “이야, 신나는 아침!”이 아니라, “아이고, 지겨운 아침!”이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테지요.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귀머거리 기계. (11∼12쪽)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17쪽)


아름다운 것들은 그냥 날 지나쳐 가고, (20쪽)



  메마른 사회에서는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는다고 느낄 만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만합니다. 더군다나 “아름다운 것들은 그냥 날 지나쳐” 가는구나 하고 느낄 만해요.


  그림책 《빨간 나무》를 펼치면서 피어나는 고단하고 괴로운 마음을 털고자 책을 한동안 덮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놀아야지!” 하고 노래하면서 잠옷바람으로 노는,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더 놀고 싶어!” 하고 노래하면서 가까스로 꿈나라로 가는, 이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 못지않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놀았습니다. 다만, 국민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놀 수 있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는 날부터 머리를 박박 밀고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학교에 머물면서 입시공부를 해야 했고, 이런 나날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어요.


  놀 수 없었고, 동무들하고 느긋한 한때를 누릴 수 없던 그무렵을 돌아보자니, 너무 끔찍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지요.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열넷∼열아홉 살 즈음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가겠느냐고 한다면, 도무지 그무렵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31쪽)



  그림책 《빨간 나무》는 마지막 쪽에 이르러 ‘빨간 나무’ 한 그루를 보여줍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괴로움과 고단함에 시달리던 ‘그림책 주인공 아이’가 맨 마지막이 되어서야 비로소 ‘희망과 같은 빨간 나무’ 한 그루가 아이 마음속에서 자란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어쩌면 이 그림책 《빨간 나무》는 오늘날 수많은 아이들 마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수많은 아이들은 어른들 못지않게 ‘지겨운 공부(선행학습)’를 하느라 지치거나 힘들거든요.


  나는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떤 학원에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늘 노느라 바빴어요. 그렇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서너 군데뿐 아니라 예닐곱 군데나 열 군데가 넘는 학원에 다니기 일쑤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너무 바쁘고 힘들지요. 요즈음 아이들은 밤에도 쉬 잠들기 어렵지요. 숙제나 공부가 날마다 밀리니까요.


  ‘그래도 우리 마음속에 희망이 자란다’고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희망이란 이처럼 ‘그래도 있다’ 하고 말해야만 할까요?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거운 꿈과 노래로 지낼 수는 없을까요?


  아무도 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기보다는, 스스로 짓는 즐거운 살림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달라지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기다리기보다는,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차분하게 지을 수는 없을까요?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그냥 지나쳐 간다고 슬퍼하기보다는,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좋으니 아름다운 것을 우리 손으로 스스로 빚을 수는 없을까요?


  아무쪼록 아이들 마음자리에 즐거운 노래가 흐를 수 있기를 바라요. 어른들 마음자리에도 기쁜 웃음이 흐를 수 있기를 바라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새로운 아침을 반기면서 활짝 웃고 노래하는 사랑이 피어나기를 바라요. 2016.5.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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