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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기요시코 ㅣ 카르페디엠 11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3년 12월
평점 :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싶었을까?
- 내 마음에 담긴 《안녕, 기요시코》
《안녕, 기요시코》란 책을 다 읽은 지 제법 되었습니다. 아마 서너 달 지났지 싶군요.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난 뒤 무어라 말을 못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참 많은 이야기가 남았는데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더군요. 책에 나오는 `기요시'라는 아이한테서 제 지난날 모습 가운데 적잖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선뜻 어떤 말을 하기 어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보는 동안 밑줄을 칠 만한 곳은 많지 않았으나 이야기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남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쉬 꺼내기 어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글 하나 써 봅니다. 책 이야기라기보다는 제 이야기를. 이야기책 《안녕, 기요시코》는 `기요시'란 아이 이야기를 펼쳤다면, 저는 `최종규'란 아이가 세상과 부대끼며 자기 자신을 만나며 `잘 있었니?' 하고 인사를 하게 된 대목까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1〉 싫어하는 말
인천사람은 인천사람대로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음성사람은 음성사람대로 싫어하는 말이 있겠지요. 남원사람도, 부산사람도, 서울사람도, 제주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로서로 달가이 여기지 않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가 달가이 여기지 않는 말'이 있는데도, 맞은편 사람한테도 자기처럼 달가이 여기지 않는 말이 있는 줄을 생각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인천을 떠났습니다. 인천이 싫어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인천 아닌 곳으로 갔을 뿐입니다. 인천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어요' 하고 말하면 `인천은 서울과 똑같은 도시'인 줄 알거나 말하기 일쑤입니다. 인천사람으로서 이 말처럼 듣기 싫고 거북한 말도 없습니다. 인천은 인천이고 서울은 서울이지만, 인천은 서울이 바로 옆에 있다는 까닭 때문에 온갖 차별과 푸대접과 깔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광역시 가운데 지역방송국이 없는 곳은 인천뿐이지만, 인천에 생긴 지역민간방송국은 서울에 본거지를 둔 세 군데 방송사 입김 때문에 끝내 사라지고야 말았습니다. 꼭 그 방송사(iTV)가 인천사람들 꿈은 아니었으나, `인천에도 지역방송국이든 다른 방송국이든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참 깊었습니다.
인천에는 공장이 대단히 많습니다. 요새는 안산이나 구로 쪽에 더 많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천에 있는 공장은 공장 가운데 무척 지저분한 배기가스와 오염물질을 내뿜는 공장들입니다. 인천에는 서울사람들이 쓰는 연탄을 찍는 공장부터(요샌 연탄을 많이 안 쓴다지만), 유리공장, 제철소, 화학공장 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살림집 바로 옆에 화학공장과 유리공장이 있는 곳은 인천뿐일 것입니다. 제가 다닌 국민학교 옆에는 연탄공장이, 중고등학교 옆에는 화학공장과 폐수처리장과 목재처리장(수입한 나무를 쌓아 놓는 곳)이 있었습니다. 제 살가운 벗이 사는 만석동과 화수동에는 유리공장과 제철소에서 날아오는 쇠먼지 때문에 빨래를 늘 집에다 널어야 했지만, 바깥에 널 만한 자리도 없었어요. 인천 앞바다가 똥물이라 말하는데, 인천 앞바다가 똥물이 될 수밖에 없도록 온갖 공장을 인천 앞바다에 지었고, 서울사람들이 버리는 온갖 쓰레기더미와 똥오줌이 한강을 따라서 인천 앞바다로 모입니다. 그러니 인천 앞바다가 똥물이 될밖에요. 그 똥오줌이 다 누가 눈 똥오줌일까요?
.. "긴장을 풀고 말을 하면 돼요. 걱정을 하니까 더 말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말을 더듬어도 상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맘 편히 자기 자신을 격려하며 말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번에는 속에서 뭔가 울컥,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좀 막힌다고 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어른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남들이 보고 웃는다고 뭐가 어때, 그런 녀석은 그냥 무시해."
"말 더듬는다고 기죽을 것 없어."
"말이 서툰 것도 다 개성이야."
이런 말들을 하는 어른들은 모두 막힘 없이 술술, 아무런 고민도 없이 지껄인다 .. 〈70쪽〉
인천은 서울 옆에 있어서 `살기 좋지 않느냐'고(서울 옆에 있다고 좋을 것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하는 사람들, 서울에 쉬 놀러갈 수 있고 문화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참 속없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마음 가붓이, 누릴 것 다 누리며 사는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2〉 나는 어느 길로 가면 좋을까
바다를 보며 자랐습니다. 바닷가에서 놀며 자랐습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랐고, 바다낚시도 즐기고 먼바다에서 들어오는 커다란 배를 보며 놀았습니다. 비둘기나 참새보다 갈매기를 더 많이 보았고, 밀물과 썰물이 언제 바뀌는지, 해질녘 바다가 얼마나 붉게 물드는지 날마다 보며 자랐습니다. 봄이나 가을마다 뿌옇게 끼는 안개는 코앞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짙었습니다. 예전 살던 집 옆에 있는 제일제당이란 공장에서 흘러보내는 폐수가 얼마나 끔찍한 빛깔이고 냄새가 풍겼는지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제일제당에서 만든 설탕이나 먹을거리는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 Y대학에 합격한다 해도 도쿄에 있는 W대에 가고 싶다. Y대학에도 W대학에도 둘 다 불합격했을 경우엔 재수를 하고, 다음에는 처음부터 지원 대학을 W대학만으로 좁힐 것이다. 왜 그러냐고 누가 묻더라도 똑 부러지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말을 더듬는 데 왜 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거냐?"고 물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갖고 싶은 캔디는 이거다, 이것뿐이다 .. 〈252쪽〉
살아도 인천에서, 죽어도 인천에서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나날이 더러워지고 나날이 메말라가고 나날이 병들어가는 이 터전에서도 꿈을 간직하며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인천을 떠나서 서울로 왔습니다. 골목골목 모르는 길이 없고, 사람들 마음씀씀이나 살림살이나 훨씬 푸근하고 따뜻한 곳이 인천이었지만(저한테는), 인천은 바닥이 좁아서 좀더 많은 책을 볼 수 없었습니다. 좀더 세상을 알고픈 저한테는 참 좁은 곳이었고, 우리 세상을 이끌어 가는 더 많은 일거리를 만나기 어려웠으며, 늘 한 단계나 몇 단계 아래쯤에 머물러 있는 곳에서 자꾸만 `그냥 이대로'에 묻혀 버릴 듯했습니다.
손쉽게 살아갈 수 있는 길, 그저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하는 길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안녕, 기요시코》에 나오는 아이처럼 저도 말더듬이였고, 여자 앞에서는 늘 얼굴이 붉어지고 어디에 눈길을 두어야 할는지도 모르는 수줍음쟁이였습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건만 누가 볼세라 걸음도 똑바로 걷지 못하는 반편쟁이처럼 지내면서, 이런 저를 있는 그대로, 글쎄, 있는 그대로였을는지 모르겠지만, 큰 어려움 없이 살도록 마음써 주던 고향에서 죽 지내고 싶었는데.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여자들 앞에서도 말을 하고 싶었고, 큰길에서 떳떳하게 여자친구 손을 잡고 걷고 싶었으며, 누가 보거나 말거나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제 모습 그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참말로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면서 그 길만 꿋꿋하게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에 있는 대학교 원서는 일부러 안 사고 시험도 치지 않았습니다. 딱 두 군데,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만 시험을 쳤고, `안전하게 붙을 수 있는 곳도 치라'는 모든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붙어도 내가 붙고, 재수를 해도 내가 재수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 대학교에 붙는다고 제가 갈 길이 그 길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너무 손쉽게 살아가는 길에 길들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직 무엇을 가지면 좋을지 모르던 그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아직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가지면 좋을까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내 꿈은 무엇인지,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은 무엇인지, 내가 이룰 수 없어도 죽는 날까지 힘껏 애쓰면서 보람을 얻을 만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조금씩 이뤄 갈 수 있는 꿈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몸으로 부대끼고 싶었고 겪고 싶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 가운데 한 군데에 가까스로 붙었습니다. 추가합격 2번으로. 다행이면 다행이고 불행이면 불행인데, 저보다 좋은 성적으로 앞에 붙었던 두 사람이 그만두는 바람에 턱걸이로 들어갔어요.
〈3〉 걸어가고 싶은 길을
인천에서 서울 한쪽 끝에 있는 대학교로 다녔습니다. 이 학교를 그만두기 앞서까지 알아보니, 인천에서 서울 한쪽 끝에 있는 이곳까지 4년 내내 전철로 다닌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도 꼽기 어려울 만큼 드물다고 하더군요. 거의 두 손을 든답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저는 집에서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에서 내린 뒤 주안역에서 동인천역으로 돌아가서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안 그러면 부평도 안 되어 지옥철이 되어서 거의 오징어처럼 되니 책도 못 읽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오로지 사람들한테 덜 밀리면서 책읽을 자리를 마련하려고 전철을 돌아 내려간 셈입니다.) 한 시간 이십 분쯤 달리면 비로소 목적지입니다. 새벽 6시 7분이나 15분 차를 타면 인천-서울 오가는 시간이 4시간 30분 안에 들었고, 6시 30분이나 45분 차를 타면 거의 5시간 가까이 걸리곤 했습니다. 그래,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은 하루 가운데 으레 4시간쯤은 전철이나 버스에서 보내곤 했어요.
이 삶을 1년 잇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집에서 쓸돈도 넉넉히 못 받는 한편, 집안 형편도 썩 좋지 못하다고 느껴서 신문사지국에 들어갔어요. 먹고잘 수 있는 곳으로요. 덕분에 찻삯을 아낄 수 있었고, 신문 돌려 번 돈으로 책도 더 많이 살 수 있었으며, 신문도 거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지나가는 사람 A, 지나가는 사람 B라고 했는데 이 세상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니?"
등장 인물 모두에게 이름을 붙이라는 말씀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도 좋고, 새로 지어 붙여도 좋다. 연극 중에 이름이 꼭 불리지 않아도 된다. 아무튼 이름이 없는 등장 인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 〈136쪽〉
작은 과에 들어가기를 참 잘했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뭐, 아무것도 없지만요. 한 과에 서른 사람. 이렇게 작은 과다 보니 이웃한 작은 과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네덜란드말, 포르투갈말, 이탈리아말, 스웨덴말. 한 과에 서른 사람인 이 작은 과들은 `네이포스'란 이름으로 서로 똘똘 뭉쳤습니다. 그래서 기마전을 하건 체육대회를 하건 술마시기 겨루기를 하든, 우리 작은 과 연합이 늘 이기곤 했어요.
배우는 것은 달라도 품은 꿈은 비슷했는지 모르고, 품었던 꿈이 하루하루 사그라들며 똑같은 취업준비생이나 고시생이 되는 흐름은 비슷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자그마한 모둠에서도 있기 어렵겠구나 느꼈습니다. 그래,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제 막 스물을 넘기려는 나이, 몸에서 힘은 넘치지만 마음은 붙잡아 둘 곳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1년 365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 2병 넘게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없어서 석 달을 술을 쉬고 다시 석 달을 마시고, 다시 쉬고. 술을 쉰 마지막 때에 군대에 갔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갔습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낸 뒤 학교로 돌아옵니다. 학교는 많이 밝아졌다는 느낌이고 여학생도 많이 늘어났지만 제가 있을 만한 자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안녕, 기요시코》에서 주인공 아이가 학예회 때 내놓을 연극 대본을 쓸 때 `지나가는 사람 A', `지나가는 사람 B'라고 적었듯, 제 자신이 그 `A-B'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나일 뿐인데. 나는 똑같이 굴러가고 싶지 않은데. 외국말을 배우는 강의요 수업인데도 교재 베껴쓰기 숙제를 해서 내야 하고, 이런 베껴쓰기 숙제를 안 내면 학점이 깎이고, 이 베껴쓰기 숙제에는 골똘하면서 정작 자기가 배우는 말은 힘써서 익히려고 하지 않는 동무들… 혼자서 이 외국말을 배우기에는 너무 벅찹니다. 배울 마음이 사라집니다. `남들이 제대로 안 하는 것을 하는 일'도 좋겠지만, 이곳에는 제가 갈 길이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갈 길은 무엇일까? 내 꿈은 무엇일까? 내가 무엇하러 날고생 하면서 서울까지 왔을까? 이렇게 살려고 서울에 왔나? 부모님 집하고 인연을 끊을 마음을 먹고 학교는 아예 그만두기로 하고 한 해 동안은 이 학교를 떠나기 앞서 나한테 모자란 것을 채우고 내 나름대로 혼자서 살아갈 길을 깨우쳐 줄 사람들 강의만 골라 듣자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해. 둘레에서 아무리 무어라 떠든들 한 귀로 흘린 채 신문배달 부수를 늘렸고, 새벽에 신문 돌리고 아침잠을 잤다가 신문을 읽고, 낮잠을 잤다가 책방과 도서관을 다니고 저녁나절까지 책에 파묻혔다가 다시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이렇게 해서 그동안 써 왔던 굴레는 내려놓았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한테 손을 벌릴 수도 없지만 벌리고 싶지도 않은 제 자신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주 자유로운, 어쩌면 아주 외로운 사람이 된 채 세상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안녕, 기요시코》에 나온 기요시가 걸어가고픈 길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4339.1.25.물.ㅎㄲㅅㄱ)
- 책이름 : 안녕, 기요시코
- 글쓴이 : 시게마츠 기요시
- 옮긴이 : 오유리
- 펴낸곳 : 양철북(2003.12.19.)
- 책값 : 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