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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 ㅣ 처음 만나는 사전 시리즈 1
이상권 지음, 김중석 그림 / 한권의책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어린이책 읽는 삶 148
코피가 날 적에 쑥잎을 써 보렴
―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
이상권 글
김중석 그림
한권의책 펴냄, 2014.7.10. 13500원
갈대, 강아지풀, 개구리밥, 개망초, 괭이밥, 국화, 꽃다지, 나팔꽃, 냉이, 달맞이꽃, 달래, 도라지, 며느리밑씻개, 봉숭아, 민들레, … 잔디, 제비꽃, 질경이, 코스모스, 토끼풀, 패랭이꽃, 할미꽃, 이렇게 서른여섯 가지 풀이나 꽃을 알려주는 어린이 인문책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한권의책,2014)을 읽습니다. 풀이나 꽃을 잘 모르는 채 자란다고 할 만한 도시 아이들한테 길동무가 되도록 빚은 책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풀이나 꽃은 무척 많지만,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려서 서른여섯 가지를 추려서 엮어요.
그런데 이 책에 실은 풀이나 꽃을 살펴보자면 “들꽃 사전”보다는 “풀꽃 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갈대나 강아지풀은 들꽃이 아니고, 개구리밥도 들꽃이 아니거든요. 나팔꽃이나 봉숭아나 잔디도 들꽃이라 하기는 좀 어려워요. 도라지도 그렇고, 할미꽃도 들꽃이라는 이름이 안 어울려요. 도라지는 나물 쪽에, 할미꽃은 깊은 숲에서 자라는 멧꽃 쪽에 넣어야지 싶습니다. 쇠뜨기나 쇠무릎도 들꽃보다는 들풀이라 할 만하고, 뱀딸기나 쑥이나 억새도 들꽃이라 묶기에는 어쩐지 안 어울려요. 그러니까 ‘들꽃’보다는 ‘풀이랑 꽃’을 다루는 “풀꽃 사전”이라고 이름을 붙일 적에 아이들도 ‘풀이랑 꽃’하고 한결 살가이 다가서도록 도울 만하리라 생각해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다가 지치거나 입이 심심해지면 괭이밥 이파리를 따서 씹어 먹었어요. 괭이밥 이파리는 부드럽고 새콤하니 신맛이 나거든요. 아이들은 ‘고양이싱아’라고 불렀지요. ‘싱아’라는 말에는 ‘시다’라는 뜻이 들어 있어요. (27쪽)
나는 어릴 적에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 같은 책을 본 적이 없습니다. 1980년대에는 이만 한 책이 한국에서는 나온 적이 없거든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른들은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잘 몰랐고, 학교 선생님도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잘 모르기 일쑤였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 어머니를 ‘풀 선생님’이나 ‘꽃 선생님’으로 모셨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어머니, 이 풀은 뭐예요?” 하고 물으면 거의 척척 알려주셨어요. 다만, 어머니가 이름을 알려주셔도 고개를 돌리고 나면 곧 잊었습니다.
친구하고 싸우다가 코피가 나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쑥 좀 찾아보자.” 하고 말했어요. 쑥 이파리를 뜯어다가 둘둘 말아서 코를 막으면 흐르던 피가 멎거든요. (95쪽)
잔디밭은 곤충들의 천국이에요. 농약만 치지 않는다면 잔디밭은 곤충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끝없이 펼쳐진 천국이나 다름없지요. 방아깨비, 섬서구메뚜기, 풀무치, 팥중이, 콩중이, 밑들이, 사마귀 들이 바글바글해요. 아이들은 놀다가 지치면 메뚜기를 잡는다며 뛰어다녔어요. (115쪽)
생태동화를 꾸준히 쓰는 이상권 님은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이라는 이쁜 책을 빌어서 어린이가 이 땅에서 풀하고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권 님이 어릴 적에 보고 겪고 만지고 누리던 풀하고 꽃 이야기를 이 책에 가만히 풀어놓습니다.
도시 아이들이 도시에서 들풀이나 들꽃이나 숲풀이나 숲꽃을 만나기 어렵다 하더라도, 도시 아이들이 도시에서 들나물이나 멧나물을 마주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이 책을 빌어서 ‘풀 한 포기가 사람한테 베푸는 싱그러운 바람’을 함께 마실 수 있기를 바라지요.
그러고 보면 오늘날은 예전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어른’이 훨씬 많아요. 아무리 어른이라 하더라도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잘 모르기 일쑤예요. 일부러 배우지 않으면 모르고, 애써서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지요.
이파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많아서 손으로 만지기도 힘든 풀이었어요. 며느리는 아픔을 참으면서 시어머니가 준 이파리로 밑을 닦았답니다. 그래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은 거예요. (54쪽)
그나저나 이쁜 생태도감이라 할 수 있는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인데, 풀이름을 놓고 잘못 알려진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며느리밑씻개’하고 얽힌 이야기인데,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은 일본사람이 일본 옛이야기를 빌어서 붙인 풀이름(繼子の尻拭い)입니다. 우리 겨레 이야기가 아니지요. ‘며느리밑씻개’하고 이름이 비슷한 ‘며느리배꼽’도 잘못 알려지고 잘못 퍼진 풀이름 가운데 하나예요.
한국 풀이름은 ‘사광이아재비’하고 ‘사광이풀’입니다. ‘며느리밑씻개’가 아니라 ‘사광이아재비’라고 해야 올바르고, ‘며느리배꼽’이 아니라 ‘사광이풀’이라고 해야 올발라요.
일본 학자가 일본 옛이야기를 빌어서 ‘재미나게’ 또는 ‘슬프게’ 붙인 이름을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요. 이런 일본 옛이야기도 한국에서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고요. 다만, 한국 풀이름이 버젓이 있다면, 이 풀이름을 찬찬히 살펴서 왜 ‘사광이’라는 이름을 쓰는가를 생각해서 아이들한테 알려줄 수 있으면 더 나으리라 생각해요. ‘사광이’는 ‘삵(살쾡이)’에서 온 말이라고 해요. 사광이아재비나 사광이풀이나 어린 싹부터 날카로운 가시가 줄기에 잔뜩 돋거든요.
아무쪼록 온누리 아이들이 온갖 들풀하고 들꽃을 사랑하는 싱그러운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들나물을 즐겁게 먹고, 들꽃을 곱게 사랑하면서, 들바람을 해맑게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2016.5.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 인문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