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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수학개념 100
라파엘 로젠 지음, 김성훈 옮김 / 반니 / 2016년 3월
평점 :
책읽기 삶읽기 248
신문배달부가 ‘빠른 길’을 찾아서 다니기
―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개념 100
라파엘 로젠 글
김성훈 옮김
반니 펴냄, 2016.3.29. 15000원
얼마 앞서 나무 한 그루를 옮겨서 심으려 하면서 감나무 뿌리 곁에서 잠자던 굼벵이를 보았어요. 그 뒤로 당근을 심거나 옥수수를 심으려고 호미로 밭을 갈아서 골을 내는데 풀벌레 애벌레가 곳곳에서 나와요. 땅속에서 오래도록 꿈을 꾸는 이 아이들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네 하고 생각하며 다시 흙으로 덮어 줍니다. 이러면서 또 한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집 밭에 온갖 벌레가 참 많이 사는구나 하고. 이 많은 벌레들은 어떤 삶을 짓고 싶어서 이곳에 깃드는가 하고.
매미는 소수의 햇수를 바탕으로 하는 주기를 따르기 때문에 그 순간에 다른 동물의 새끼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줄어든다. 십칠년매미는 사실상 소수를 자신의 방어 메커니즘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263쪽)
종이접기놀이의 한 가지 매력은 이것이 전통 수학, 특히 기하학을 뛰어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도구 없이 접은 종이만 갖고도 한 각도를 삼등분할 수 있으니까. (37쪽)
돌돌 말아 놓은 한지를 장만합니다. 아이들하고 읍내로 마실을 가는 길에 읍내 문방구에서 장만합니다. 돌돌 만 한지는 ‘말린 모습’으로는 작고 길쭉하다고 할 만하지만, 말림새를 풀어서 바닥에 펼치면 꽤 널찍합니다. 큰아이가 펼친 한지를 들고 손을 위로 들면 몸이 모두 가려집니다.
문득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책을 이처럼 돌돌 말아서 엮기도 했어요. 이러다가 종이를 네모낳게 낱으로 잘라서 실로 묶었어요. 요새는 풀로 붙이는 책이 많이 나오는데, 저마다 수많은 사람들 슬기하고 생각이 모여서 태어나는 ‘새 모습’입니다. 종이를 둘둘 마는 책도 이대로 재미있고 볼 만하지만, 종이를 낱으로 잘라서 실이나 풀로 엮으면 읽기에 한결 나아요.
우리가 구축한 환경 구석구석에 삼각형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삼각형은 대단히 안정된 형태라 강도 유지가 필요한 구조물에 이상적이다. (51쪽)
우편배달의 핵심은 우편배달 트럭운전사가 취할 수 있는 최단 경로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127쪽)
라파엘 로젠 님이 지은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개념 100》(반니,2016)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책은 수학을 이야기하되 수학 공식이나 이론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수학 공식이나 이론을 이야기하되 ‘숫자와 기호’가 아닌 ‘말’로 이야기해요.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채 여느 삶에서 누리는 ‘수학’을 이야기합니다.
우체국에서 편지나 소포를 나를 적에 언제나 ‘최단거리’를 따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배달부 한 사람만 보면 아무것이 아니라 할 테지만, 전국을 도는 수많은 배달부를 헤아리면, ‘느슨한 배달거리’로 오토바이나 짐차를 몰면 기름값이 어마어마하게 들고 품도 엄청나게 들어요. ‘움직이는 길’을 알맞고 빠르게 줄이면 기름값도 줄어들 테고, 배달을 하는 일꾼도 품이 적게 들어요.
나는 예전에 혼자 살며 살림을 꾸릴 적에 오래도록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신문배달을 처음 맡을 적에는 구역을 물려받아요. 마을 몇 곳에서 신문을 보는 집이 적힌 주소를 번호를 매겨서 적은 종이꾸러미를 받아서, 이 구역지도에 따라서 신문을 돌리지요. 그런데 이 구역지도는 그때그때 늘고 주는 독자에 따라서 바뀌기도 하지만, 성가셔서 예전대로 그냥 다니기도 해요. 이리하여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오래된 구역지도 그대로 다니면 배달 시간이 더 드는구나 하고요. 신문사 지국에 있는 지적도를 보고, 배달하며 다닌 길을 헤아리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 새로운 구역지도를 그려 봅니다. 이렇게 구역지도를 마음속에 새로 그리고 종이로도 옮긴 뒤에 혼자 낮에 자전거를 몰며 이 길을 달리지요. 초시계로 재면서요. 한 구역에 넣는 신문 100부를 어떤 점과 점으로 잇느냐에 따라 때로는 20분이 더 들 수 있고 20분을 줄일 수 있더군요.
선택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더 나은 교통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이 대한민국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활용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도심을 관통하는 6차선 고속도로를 허물고 그 자리에 8km 길이의 공원을 만들자, 실제로 교통 흐름이 훨씬 효율적으로 변했다. (160쪽)
공식을 풀고 이론을 세우는 일도 수학입니다. 공식하고 이론은 생각하지 않지만,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움직이는 길(동선)’을 줄이려고 생각을 기울이는 일도 수학이 된다고 합니다. 더 생각해 본다면, 무엇을 볶을 적에 무엇부터 볶는지, 얼마만 한 크기로 썰어서 볶는지, 불판은 어느 만큼 달구어서 볶는지 살피는 일도 수학이 되겠지요. 이와 함께 화학도 될 테고요. 빵을 구우려고 반죽을 할 적에 무게를 재어 소금하고 효모를 섞는 일도 수학과 화학이 되리라 느껴요.
우리가 사는 집도 수학이지 않을까요? 해가 떠서 지는 동안 햇볕이 듬뿍 들어오도록 짓는 집도 수학일 테지요. 못을 하나도 안 쓰고 나무를 켜고 잘라서 맞추어서 짓던 살림집도 수학이라 할 테고요. 논밭을 일구면서 열매를 어느 만큼 거두어 몇 사람이 먹을 만하면서 이듬해에 심을 씨앗을 얼마나 남길 수 있는가를 어림하거나 따지는 일도 수학이 되리라 느껴요. 민들레나 박주가리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도록 폭신한 날개를 매다는 일도 어느 모로 본다면 수학이지 싶습니다. 제비꽃이 씨주머니를 세 갈래로 터뜨리는 모습도 수학이지 싶고요.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개념 100》이라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우리 삶은 수많은 수학 개념이 슬기롭게 녹아든 모습이라 할 만하리라 봅니다. 수많은 사람이 빚은 수학 개념이 녹아들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수학 개념으로 살림을 다스리면서 한결 낫거나 즐거운 길을 찾는다고 할 만하지 싶습니다. 2016.5.1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