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26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26



겉치레를 버리고 새로움을 찾는 삶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6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8.5.25. 4200원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08) 스물여섯째 권을 읽으면 책끝에 뒷이야기가 붙습니다. 애장판이 아닌 가벼운 낱권책으로 나올 적에 뒷이야기가 붙기도 하고 안 붙기도 하는데, 스물여섯째 권에 붙은 뒷이야기는 남다릅니다. 그린이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유교수’가 어떤 사람인가를 짤막하게 밝히기 때문입니다.



“‘왜?’냐는 물음에 대해 대답을 못하는 것은 생각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증거란다.” (9쪽)


‘정직하게 말하면 됐을 텐데. 사실은 그 책의 의미를 하나도 모른다고.’ (21쪽)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꽤 오랫동안 읽었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한국말로는 1999년에 첫째 권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스물여섯째 낱권책이 나올 즈음은 이 만화책을 스무 해 즈음 그렸다고 합니다. 스물여섯째 낱권책 뒷이야기를 보면, 그린이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야기를 아주 짧게 적으면서, 이 만화에 나오는 유교수는 바로 이녁 아버지가 바탕이 되었다고 해요.


  만화책에는 ‘유교수네 네 딸’이 나오는데, 만화를 그린 분은 참말로 ‘교수 아버지를 둔 네 자매 가운데 막내’였으며, 경제학과 교수인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연구’를 하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늘 연구를 하고 책을 읽던 아버지는 네 딸하고 논 일이 아주 드물다고 해요. 그래도 넷째 딸은 이런 아버지를 싫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늘 곁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는군요. 늘 지켜보았고, 아버지 이야기를 언니하고 어머니한테서 들으며 이 만화를 스무 해 넘게 그릴 수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잘은 몰라도, 일본은, 많은 것을 버리며 앞으로만 가요. 다들 앞으로도 영원히 커지기만 한다고 착각하면, 그 자리에서 다 멈춰버릴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41쪽)


“스트립쇼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걷지만, 조금 전까지 어떤 얼굴로 무대를 보고 있었을까 상상하면 재미있거든요. 엉큼한 얼굴들이지만 어쩐지 밉지는 않고, 때로는 사랑스럽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이상한가?” (45쪽)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 첫째 권을 1999년에 처음 만날 무렵에도 문득 느꼈습니다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유교수는 예나 이제나, 그러니까 첫째 권이 나올 때이든 스물여섯째 권이 나올 때이든, 또 서른 몇째 권이 나온 뒤이든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은 어릴 적이든 젊을 적이든 정년퇴직 언저리이든 ‘겉치레’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겉을 꾸미지 않아요. 유교수가 마음을 두는 곳은 언제나 ‘마음’입니다. ‘마음’에 마음을 두면서 살아요. 마음을 가꾸자고 하는 생각을 아침마다 새롭게 지으면서 일어나고, 밤마다 즐겁게 되새기면서 잠듭니다.



“할아버지, 이 사람 누구예요?” “할아버지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란다.” “소중한 사람? 하나코보다?”“소중한 사람에게 우열을 따져서는 안 돼. 소중한 사람은 마음 여기저기의 한켠에 있어도 되는 거야.” “엉! 하나코는 하나도 모르겠어요!” “할아버지도 이 나이가 돼서야 겨우 그걸 인정할 수 있게 됐지.” (62∼63쪽)


“할아버지! 카메라로 찍지 말고 이 비디오로 찍으라니깐요!” “비디오가 반드시 좋다는 법은 없어요. 순간적인 약동을 기억에 오래 새기려면 정지화면이 더 좋을 때도 있단다.” (166쪽)



  만화책 한 가지를 스무 해 넘게 그릴 수 있는 바탕이라면 무엇보다 ‘꾸준함’이라고도 하겠지만, 이 꾸준함을 잇는 기운이란 늘 ‘마음을 가꾸려는 숨결’이지 싶습니다.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가꾸려는 숨결이기에 오래도록 한 가지 만화를 그릴 수 있고,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운 마음결’로 살림을 짓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만화책뿐 아니라 우리들 여느 삶자리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똑같은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스무 해나 마흔 해를 살기는 어렵습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아 보일는지 모르나, 속보기로는 늘 새롭기에 아침저녁으로 기쁘게 웃으면서 살림을 지을 만해요. 한 사람을 사랑한다든지 아이를 사랑하는 숨결로 쉰 해나 일흔 해를 사는 기운이란 ‘깊고 넓으며 따사로이 마주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바라신다면, 제가 나이마다 겪은 ‘첫 경험’을 모두 들려 드릴까요? 그 차이가 사소하다 해도, 60세가 되지 전에 60세를 경험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다른 뭔가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미지로 가는 위대한 첫걸음이죠!“ (205쪽)


“예, 저는 자신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거죠. 그렇군! 즉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당신의 인생을 모두가 사랑한다는 뜻이군요!” (207∼208쪽)



  만화책에 흐르는 말을 가만히 곱씹습니다.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찍는 마음을 생각해 보고, ‘소중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하고 밝히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마음을 고스란히 털어놓으면 동무를 사귈 수 있다고 하는 말을 생각해 보고, 해마다 늘 새로운 삶을 겪을 뿐 아니라 날마다 늘 새로운 하루를 만난다고 하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섭니다만, 막상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자리에 서기’이지 싶어요. 스스로 교수라고 생각하기보다 ‘배우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가르칩니다. 늘 새롭게 배우는 기쁨을 누리면서 가르칩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삶·살림·사랑을 이웃하고 나누려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로구나 싶습니다.


  스무 해 넘는 나날에 걸쳐 수십 권이 나온 만화책으로 여길 수 있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라고 할 만하지만, 나는 이 만화책을 한 권씩 오래도록 되읽고 돌아보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한 번 슥 훑고 줄거리만 좇은 뒤에 덮는 만화책이 아니라, 뒤엣권이 언제 나오나 하고 손꼽는 만화책이 아니라, 권마다 다 다르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 함께 나눌 기쁨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생각하는 길동무책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만화책을 처음 보던 1999년에는 좀 시큰둥하기는 했는데 다시 볼수록 새로웠고, 이제는 이 만화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도 있을 만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만화를 그린 분이 이녁 아버지한테 ‘마음을 가꾸고 새로 배우는 삶’을 물려받았다면, 나는 내 나름대로 언제나 새로 배우면서 우리 아이들한테 ‘삶을 사랑하는 살림을 짓는 길’을 즐겁게 물려주자고 생각합니다. 2016.5.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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