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
김태완 지음 / 호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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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2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가 되어 살기

― 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

 김태완 글

 호미 펴냄, 2002.12.30. 13000원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경쟁이 없던 어린 시절, 배만 부르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던 시절, 오로지 앞날의 희망만 있던 시절, 때로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을 해도 너그러운 웃음으로 넘어가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17쪽)



  동양철학자인 김태완 님은 광주에 있는 지혜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생각하기(철학)’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김태완 님이 쓴 《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호미,2012)도 ‘생각하기’를 다룹니다. 이 책은 김태완 님 나름대로 ‘한시 읽기’를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시 한 줄을 놓고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한시 번역이나 한시 소개나 한시 강좌는 아닙니다. 한문을 잘 알도록 이끄는 책이 아니고, 한시 역사를 짚도록 이끄는 책이 아닙니다. 문학이나 공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시를 쓴 옛사람 마음’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짓는 삶을 되새기도록 이끄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가난에 대한 긍정적 저항정신이라 할까 이런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리라. 내가 지금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나중에 내가 성취하는 바가 더 클 테니까! 그리고 내가 일구는 세계는 돈이나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정신의 세계이니까! (124쪽)


농사일을 할 때나 농촌에 살 때는 비가 가끔 성가시긴 해도 여간 반갑지 않다. 게다가 오래 가물다가 비가 오면 마음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모처럼 일을 쉬게 되니 한가롭기도 하고, 그래서 모자란 잠도 몰아서 낮잠으로 자기도 하고, 모여서 전도 부쳐 먹고 막걸리도 기울이며 한가로운 이야기도 나눈다. (195쪽)



  “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이란 “서울로 가서 살지 않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시냇가에서 살고, 누군가는 바닷가에서 살아요. 누군가는 들판에서 살고, 누군가는 숲에서 살아요. 누군가는 멧골에서 살며, 누군가는 시골에서 살지요.


  다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헤아리면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서울을 둘러싼 크고 작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시냇가에 사는 사람”은 열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꼽기도 어려워요. 아마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쯤 꼽을 수 있을까요?



버들가지 잎사귀 무성해질 때면, 멧새, 참새, 온갖 자그마한 텃새들도 날아들어 가지 사이를 들락거리며 짝을 찾고, 아이들은 버들가지에 물오르면 가지를 꺾어 틀어서 호드기를 분다. (213쪽)


봄은 모두의 봄이다. 비도 모두의 비이고, 바람도 모두의 바람이고, 꽃도 모두의 꽃이고, 모두가 봄을 만들고 봄을 꾸미고 봄을 일구는 것이다. (253쪽)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숫자를 생각해 봅니다. 이 숫자를 ‘등수’나 ‘차례’로 살핀다면, 99등이나 100등쯤 되겠지요. 한마디로 꼴등입니다. 이 숫자대로 살핀다면, 99등이나 100등은 아주 가난할 테고, 아주 뒤처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숫자가 아닌 삶하고 살림으로 생각해 봅니다. 등수도 차례도 아닌 ‘삶’하고 ‘살림’으로 살핀다면,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라 할 만한 삶이나 살림이란 ‘스스로 짓는 하루’라 할 만해요. 이른바 자급자족이지요. 자급자족이니 남한테 손을 벌리지 않고, 돈에 얽매이지 않아요. 주머니에 돈이 없다 하더라도 돈 때문에 살림이 쪼들리지 않습니다. 손수 지어서 거둔 것을 내다팔지 않아서 돈을 벌지 않더라도, 손수 지어서 거둔 것을 손수 가다듬어서 먹으니,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밥을 누리는 하루예요.


  이 얼거리를 더 들여다볼 수 있다면, “시냇가에 물러나 사는 즐거움”을 누리려 할 적에는 바로 나 스스로 찾고 가꾸고 나누고 웃음짓고 노래하는 하루라 할 만합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방송을 보아야 즐거움이 아니고, 손수 짓는 하루에서 스스로 웃고 노래하는 즐거움이라 할 만해요. 이리하여 《시냇가에 물러나 사는 즐거움》이 한시 하나를 놓고 펼치는 이야기는 ‘소재 파악’이나 ‘주제 분석’이 아닙니다. 시를 지어서 부른 사람들이 스스로 즐긴 꿈하고 사랑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곳을 아름답게 가꾸자는 숨결로 이어져요.



의식주를 모두 자급자족하던 농가에서 삼을 키워 실을 뽑고 옷감을 짜는 일은 여자의 일 가운데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일이었다. 물론 삼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여 삶는 일까지는 남자가 하지만, 쪄낸 삼베 껍질을 벗겨서 올올이 째고 끝과 끝을 이어서 실로 만들고 베틀에 올려 삼을 짜는 일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다. (313쪽)



  김태완 님은 삼을 심고 가꾸어 거두어 실을 얻는 이야기를 ‘한시 풀이’가 아닌 ‘한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 얽습니다. 어릴 적에 보았고 겪었으며 늘 하던 살림짓기를 한시 이야기로 버무립니다.


  한시를 읽고 시골 이야기를 읽다가 조용히 책을 덮습니다. 우리 집 마당을 둘러보고 밭자락을 살핍니다. 콩씨랑 옥수수씨랑 당근씨랑 무명씨 곁에서 자라는 여느 풀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뽑습니다. 여느 때에 여느 풀은 여느 나물로 삼지만, 밭에 씨앗을 심으면 이 여느 풀을 아낌없이 뽑아서 밭둑에 두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가 되는 삶이라 한다면, 백 손가락이 저마다 다른 백 가지 손가락이 되는 길이 더없이 즐겁다는 뜻이리라 느낍니다. 다섯손가락을 놓고 보아도 그래요. 엄지는 엄지이면 될 뿐, 새끼일 까닭이 없습니다. 넷째는 넷째일 뿐 셋째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다섯 사람이 있으면 다섯 갈래 삶하고 살림이 있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겁지 싶어요.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갈래 삶하고 살림이 있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거울 테고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삶하고 살림을 배우면서 다 다른 아름다움을 나눌 때에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참말로 우리는 누구나 서로서로 다르면서 아름다운 숨결로 하루를 맞이할 적에 즐겁게 웃고 노래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2016.5.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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