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머금은 (사진책도서관 2016.4.30.)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어떤 책이든 시간을 머금습니다. 책뿐 아니라 모든 것이 시간을 머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을 놓고 정부에서 내놓은 안내책자를 문득 보면서 아스라한 시간을 돌아봅니다. 그무렵 정부에서는 한일협정을 홍보하려는 데에 힘을 쏟으면서 이 같은 안내책자를 여러 가지로 내놓았습니다. 그때에나 이제에나 정부는 ‘스스로 잘 했다’고만 밝힙니다. 사람들이 따지거나 묻는 잘잘못을 받아들이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 흐름은 엇비슷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이 바뀌더라도 행정을 맡은 사람들 생각은 그대로 이을는지 모릅니다.


  책꽂이를 갈무리하면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조약 및 협정 해설》하고 함께 쌓아 두었던 《에밀과 소년탐정단》을 들춥니다. 이 책은 1962년에 나왔고, 그 뒤로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책이 나왔습니다. 요즈음은 《에밀과 탐정들》이라는 이름으로 나와서 읽힙니다. 나는 어릴 적에 이 책을 1962년 보진재 판으로는 읽지 못했고, ‘딱따구리 전집’ 가운데 하나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다만 줄거리는 하나도 안 떠오릅니다. ‘탐정’이라는 대목, 뭔가 일이 터진 뒤에 이 일 실마리를 풀려고 하는 몸짓에 재미를 붙여서 읽었다는 생각만 떠오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어릴 적에 마음을 기울인 ‘탐정 이야기’는 누군가 다른 사람하고 얽힌 일입니다. 숨기거나 가려진 실마리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고 할 텐데, 나는 이제 다른 데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재미를 누린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씨앗이 싹이 터서 잎하고 줄기가 굵어지는 수수께끼를 살피는 재미를 느낍니다. 웬만한 초는 파라핀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파라핀을 넣지 않은 초를 어떻게 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길로 빚을 수 있을까 하는 대목을 찾아나섭니다.


  남이 지어 놓은 시간이 깃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지으면서 삶을 담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숨결이 흐르는 것이 있고, 내 노래가 흐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내 도서관’을 우리 보금자리에서 꾸립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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