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꿈 난 책읽기가 좋아
마저리 윌리엄즈 글, 윌리엄 니콜슨 그림, 김옥주 옮김 / 비룡소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47



꿈꾸는 인형이 참말로 토끼가 되었네

― 인형의 꿈

 마저리 윌리엄즈 글

 윌리엄 니클슨 그림

 이옥주 옮김

 비룡소 펴냄, 1998.11.6. 7000원



  마저리 윌리엄즈 님이 1922년에 “the Velveteen Rabbit”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어린이문학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사랑받는 날에는》이나 《헝겊 토끼의 눈물》이나 《토끼 인형의 눈물》이나 《사랑받는 날에는 진짜가 되는 거야》나 《벨벳 토끼 인형》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책을 살피다가 이 가운데 《인형의 꿈》을 골라서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이 작품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꿈꾸는 인형’이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를 다루기에 “인형의 꿈”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값비싼 장난감들도 토끼 인형을 무시했지. 헝겊 쪼가리로 만들어진 토끼 인형을 누가 거들떠나 보겠어. (9쪽)


토끼 인형은 진짜 토끼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 무엇을 본떠 자길 만들었는지도 몰랐지. 진짜 토끼도 모두 자기처럼 톱밥으로 가득 차 있는 줄만 알았지. (10쪽)



  단출한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토끼는 ‘그냥 토끼’가 아닙니다. 책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형 토끼’입니다. 인형인 토끼이니 몸에서 피가 흐르지 않습니다. 뼈가 없어요. 소리를 내지 못하고, 뛸 수 없을 뿐 아니라, 웃거나 울 수 없어요. 밥을 먹지 않고, 똥을 누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인형입니다. 마음이 없다고 여길 만하고, 생각도 없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형 토끼’는 가만히 생각을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어느 날 문득 어느 아이 곁에 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값싼 인형이라며 놀리는 다른 장난감이 있지만, 이 인형 토끼는 ‘오래된 장난감 말’이 들려준 이야기를 늘 마음에 새겨요. 오래도록 따사로이 사랑을 받으면 ‘인형이 아니라 목숨이 깃든 토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을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얘야, 뭘로 만들어졌든 아무 상관이 없단다. 너도 진짜가 될 수 있고말고. 누군가 널 장난감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아주아주 오랫동안 진심으로 사랑해 주면, 너도 진짜가 될 수 있지.” (14쪽)


소년은 어딜 가든지 토끼 인형을 데리고 다녔지. 토끼 인형을 손수레에 태워 주기도 했고, 정원에 데려가 점심을 먹기도 했어. 꽃밭 울타리 뒤 산딸기 나무 밑에다 동화에 나오는 오두막 같은 예쁜 토끼집도 지어 주었어. (19쪽)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인형인 토끼는 꿈을 꾸면 ‘폴짝폴짝 뛰는 토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그냥 말도 안 되는 일일까요? 아니면 이 말도 안 될 만한 일은 참으로 일어날 만할까요? 문학이니까, 게다가 어린이문학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만할까요?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애타게 바라고 온힘을 쏟아서 꿈을 꾸면 이룰 수 있을까요?


  인형 토끼는 어느 날 ‘인형을 아끼는 아이’하고 들판으로 마실을 가요. 이때에 ‘인형이 아닌 참말 목숨이 있는’ 토끼를 만나지요. 들토끼 또는 멧토끼는 인형을 보고는 처음에는 동무인 줄 여기다가, 나중에는 인형인 줄 알아요. 인형 토끼는 저도 높이 뛸 수 있고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외치지만, 들토끼 또는 멧토끼는 인형 토끼를 더 쳐다보지 않고 떠납니다. 인형 토끼는 너무 서럽고 슬프지만, 저를 아끼는 아이가 다가왔기에 아이 품에서 잠들고 놀면서 서러움하고 슬픔을 달랩니다.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아름다움을 잃으면서까지 사랑을 받아 진짜 토끼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눈물 한 방울이, 진짜 눈물 한 방울이 누더기가 된 벨벳 코를 간지럽히며 흘러내리더니 땅에 떨어지네. (36쪽)



  책을 덮고서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벼리야, 이 책에 나오는 인형 토끼는 참말로 폴짝폴짝 뛰는 멧토끼가 되었네.” “응. 진짜 토끼들처럼 진짜 토끼가 되었어.” “그러면 인형 토끼는 어떻게 진짜 토끼가 되었을까?” “음, 꿈을 꿔서?” “그래, 인형 토끼가 꿈을 꾸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인형 토끼?” “인형인 채 있으면서 꿈을 안 꾸었으면 그냥 인형으로 있겠지. 그냥 인형으로 있다가 낡거나 해지면서 버려지겠지.”


  아이한테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줍니다. “우리도 늘 꿈을 품으면, 이 꿈을 자꾸 되새기면서 한결같이 마음속으로 그리면, 아침에 일어나서 꿈을 새롭게 그리고, 저녁에 자면서 꿈을 다시금 그리면, 이렇게 늘 꿈으로 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어. 그렇지만 꿈이 안 이루어질 수도 있지.” “언제? 언제 꿈이 안 이루어져?” “꿈을 안 꿀 때에는 꿈이 안 이루어져. 꿈을 안 꾸니까 이루어질 꿈이 없겠지?” “응. 그래. 그러면 꿈을 꾸어야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그렇지. 그리고 꿈을 그냥 꾸기만 할 뿐 아니라, 자꾸자꾸 생각하면서 늘 그릴 수 있어야 꿈이 이루어져.”


  《인형의 꿈》을 읽으면, ‘사랑받은 장난감’은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꿈을 꾼 장난감’은 오직 헝겊 토끼 하나입니다. 헝겊 인형이던 토끼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꿈을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에 새겨요. 기쁠 때에도 꿈을 그리고, 슬플 적에도 꿈을 그려요. 마침내 막다른 벼랑 같은 자리에 놓여도 인형 토끼는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꿈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꿈이 없이 지내는 삶은 어떤 뜻이 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꿈을 그리기에 꿈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고, 꿈을 안 그리기에 아무 꿈이 없이 쳇바퀴를 도는 삶이 된다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더없이 쉽고 그지없이 마땅한 이야기인데, 바로 이 쉽고 마땅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늘 잊은 채 똑같은 쳇바퀴를 굴리지는 않나 하고 돌아봅니다. 멧토끼가 되고 싶은 꿈을 품어서 끝내 멧토끼가 된 헝겊 인형 토끼처럼, 나도 내가 될 새로운 모습을 꿈으로 고이 꾸면서 마음에 찬찬히 아로새기자고 생각합니다. 2016.5.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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