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6년 4월호에 실었습니다. 5월이 되어서야 걸쳐 놓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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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두 손에 담는 냄새



  봄철에 마을 할머님은 쑥 캐고 나물 캐느라 바쁘십니다. 우리 집도 새봄에 바쁩니다. 집살림도 손질하면서 새롭게 치우고, 서재도서관도 손질하면서 새롭게 가꿉니다. 아침에는 집에서 뚝딱거리다가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먹인 뒤에는 서재도서관으로 가서 뚝딱거립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플 즈음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차린 뒤에는 집안을 새롭게 꾸미려고 힘을 씁니다. 이러면서 나도 두 아이하고 소쿠리를 들고 뒤꼍에 나가 쑥을 뜯습니다. 큰아이는 가만가만 쑥뜯기를 하면서 두 손에 쑥내음을 담습니다. 작은아이는 조금 거들다가 이내 꽃삽을 들고 땅을 파면서 흙놀이에 빠져듭니다. 작은아이는 쑥내음보다는 흙내음을 한결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마당 한쪽에 선 동백나무에서 동백꽃이 커다란 송이째 툭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면 모두 이 소리를 알아채고는 그리로 고개를 돌립니다. “와! 꽃 떨어졌다! 소리 되게 커!” 큰아이는 꽃순이가 되고, 작은아이는 꽃돌이가 됩니다. 맨발로 통통통 동백나무 밑으로 달려가서 커다란 꽃송이를 줍고 두 손에 품습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는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직 개구리가 많이 깨어나지는 않습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 노랫소리입니다. 가깝고 먼 논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노랫소리인데 아이들이 저녁을 먹다가 “어라? 개구리 소리잖아! 나 들었어!” “나도, 나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외칩니다. 수저질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아직 바쁜 일철은 아니라지만 새봄은 참으로 부산합니다. 겨우내 미룬 일을 건사하고, 겨우내 마음속으로 꿈꾸던 일을 하나씩 풀어놓으니까요. 더욱이 이곳을 보아도 꽃이요 저곳을 보아도 꽃이에요. 그리고, 이곳을 보아도 나물이요 저곳을 보아도 나물입니다. 우리는 쑥뿐 아니라 갈퀴덩굴하고 살갈퀴하고 코딱지나물하고 곰밤부리도 실컷 뜯어서 나물무침을 합니다. 매화나무에서 매화꽃잎이 흩날리면 조금 주워서 밥에 살짝 얹어 봅니다.


  하치카이 미미 님이 글을 쓰고, 미야하라 요코 님이 그림을 넣은 어린이문학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파란자전거,2011)을 읽습니다. 마음결이 사뭇 다른 두 양이 한마을에서 서로 이웃으로 지내면서 차츰차츰 새롭게 거듭나는 모습을 그리는 책입니다.


  “비가 와서 밭일을 할 수 없는 날, 느릿느릿 양은 그림을 그립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멋진 그림을 그립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물감을 묻힌 붓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립니다(35쪽).”


  느릿느릿 양은 일부러 느리게 살려 하지 않지만 빨랑빨랑 양을 좇아가지 못합니다. 빨랑빨랑 양은 부러 빠르게 하려 하지 않으나 느릿느릿 양하고 걸음을 맞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러할 뿐입니다. 서로 아끼고 헤아리는 마음으로 지내는 이웃이기에 느릿느릿 양은 빨랑빨랑 양이 어떤 마음인가를 느끼면서 반깁니다. 빨랑빨랑 양도 어느새 느릿느릿 양하고 걸음을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빨리’가 아닌 ‘즐거운 살림’을 짓는 손길을 배워요.


  어른하고 아이는 서로 어떤 사이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어른은 아이보다 몸이 크고 다리가 길어요. 어른은 짐을 많이 나르고 밥도 지으며 달리기도 잘 합니다. 아이는 아직 혼자 밥짓기를 못하고, 빨래나 옷짓기나 집짓기도 못 하지요. 그러나 어른은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가 어떤 숨결인가를 읽고 아이하고 걸음을 맞춥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함께 지내면서 몸이 무럭무럭 자라요. 어느덧 어른하고 발걸음을 맞출 만큼 다부지게 큽니다. 일손을 어깨너머로 익히고, 심부름을 손수 하면서 새로운 길을 엽니다.


  고미 타로 님이 쓴 《어른 노릇 아이 노릇》(미래인,2016)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어른이 어른답지 않다고 느끼면서 풀어놓는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휴일이라면 만세를 외칩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수영장에 가기 위해, 도서관에 가기 위해 학교에 간다는 아이는 적지 않지만, 그냥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아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69쪽).”


  생각해 보니, 참으로 많은 아이들이 ‘학교 재미있어!’ 하고 외치면서 학교에 가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학원 신나!’ 하고 외치면서 학원에 가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요. 사회살이를 걱정하는 어버이가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넣고, 입시공부를 시키는 얼거리예요. 즐겁게 놀이하듯이 살림을 가꾸는 삶이 되지 못해요.


  서재도서관하고 집 사이를 오가면서 봄일을 합니다. 저녁에 밥을 지어서 차리고 나면 기운이 쑥 빠집니다. 두 아이를 곁에 누이고 드러누우면 자장노래를 한두 가락 부르다가 그만 먼저 곯아떨어집니다. 새벽이 되어 멧새 노랫소리와 동 트는 결로 하루를 열면 어제와는 다른 기운이 솟아 다시 일손을 잡습니다.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느라 평상을 손질하는 데에 이레 남짓 걸립니다. 비에 맞아 삭은 자리는 톱으로 잘라내고 새 나무를 받침으로 댑니다. 앞뒤로 옻을 바르면서 찬찬히 말립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일하는 아버지 곁에서 마당놀이를 합니다. 마당 한쪽에서 돋은 제비꽃을 꺾어서 꽃고리를 맺습니다. 옻붓을 쥐고 옻을 발라 보고 싶습니다. 옻이 잘 스며들어 마른 평상에 큰아이가 앉아서 그림을 그리면서 놉니다.


  여러 일을 하느라 잔뜩 어질러진 마당을 치울 적에 아이들이 즐겁게 거듭니다. 비질도 거들고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서 치울 적에도 거듭니다. 놀면서 웃고, 심부름하면서 웃는 아이들은 밥상맡에서도 웃고 마실을 하면서도 웃습니다. 그냥 걸어다니면서도 웃음보따리입니다. 이 기쁜 봄날에 온마음으로 웃음내음이 퍼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싱그럽게 새파란 하늘이 고맙습니다. 2016.3.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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