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책 읽기 100
‘징그러운 벌레’ 아닌 ‘고운 이웃’이 되고 싶어
― 조영권이 들려주는 참 쉬운 곤충 이야기
조영권 글·사진
철수와영희 펴냄, 2016.4.21. 18000원
비가 그치고 나면 시골마을에는 몇 가지가 새삼스레 바뀝니다. 첫째, 저녁나절부터 개구리 노랫소리가 우렁찹니다. 둘째, 손수 심은 씨앗이며 흙 품에 안겼던 들풀 씨앗이며 쑥쑥 올라옵니다. 셋째, 봄바람은 한결 싱그러우면서 푸르고 맑게 달라집니다. 넷째, 바야흐로 수많은 풀벌레가 더욱 많이 기지개를 켜고, 겨우내 잠들었던 나비가 신나게 깨어납니다.
곤충들은 경쟁이 심해지거나 견뎌 내기 힘들 정도로 자연환경이 변할 때 그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적응하거나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어. 바로 탈바꿈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춰 몸과 습성을 변화시키는 거지. (37쪽)
비가 그치고 난 도시에서는 무엇이 바뀔 만할까요? 도시에서는 시골과 달리 개구리 노랫소리라든지 싹이나 풀이 우거진다든지 바람결이 사뭇 달라진다든지 하는 날씨를 알거나 느끼기는 쉽지 않으리라 느껴요. 그렇지만 도시에도 나무가 있고 골목밭이 있어요. 공원에서 돋는 풀에 풀벌레가 있고, 꽃가루를 찾는 벌하고 나비가 드문드문 날아요.
《조영권이 들려주는 참 쉬운 곤충 이야기》(철수와영희,2016)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집하고 마을에서 으레 마주치는 풀벌레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나도 우리 집하고 마을에서 자주 만나는 풀벌레마다 어떤 이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름만 안다고 해서 풀벌레를 안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이름뿐 아니라 한살이를 알아야 하고, 한살이를 넘어서 이 풀벌레가 짝을 짓는 결이나 알을 낳고 흙밭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도 찬찬히 알 수 있어야지 싶어요.
곤충은 1차 생산자인 식물을 먹고 자신은 더 큰 동물에게 잡아먹히며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해. (47쪽)
나비 무리는 몸통에 비해 날개가 유난히 크고, 날개는 털로 덮여 있으며, 애벌레 시기에 입으로 실을 토해 낼 수 있는 곤충이야. (76쪽)
밭둑이나 마당 한쪽에서 들풀을 뽑아서 뿌리를 하늘로 보도록 해서 눕힐라치면, 언제나 온갖 풀벌레가 가득합니다. 밭을 갈 적에는 지렁이뿐 아니라 쥐며느리와 집게벌레와 달팽이에다가 아직 안 깨어난 풀벌레 알이 잔뜩 있어요. 조금 큰 돌을 들어서 옮길 적에는 으레 개미가 바글거려요. 아차, 또 개미집을 건드렸네 싶다가도, 개미들은 저희 집 뚜껑으로 삼던 돌이 사라지면 어느새 새로운 곳을 찾아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일구어요.
그런데, 시골살이를 하면서 풀벌레하고 흙이 어떻게 얽히는가 하는 대목을 좀 새롭게 바라봅니다. 무엇보다도 ‘흙이 살아서 숨쉰다’고 하는 데에는 풀벌레가 많아요. ‘흙이 메마르거나 죽었네’ 싶은 데에는 풀벌레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까무잡잡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흙에는 수많은 풀벌레하고 흙벌레가 어우러져요. 허옇거나 시뻘건 흙에서는 풀벌레나 흙벌레를 좀처럼 찾아보지 못해요. 왜 그러한가 하고 여러 해에 걸쳐서 살펴보았는데, 풀벌레나 흙벌레는 가랑잎이나 마른 풀줄기나 풀잎을 갉아먹기도 해요. 마른 잎을 좋아하는 풀벌레나 아주 작은 벌레(이른바 미생물)가 마른 잎을 흙으로 천천히 바꾸어 주고, 이 자리에 ‘조금 큰 풀벌레’가 찾아들어요.
파리 무리는 앞날개 한 쌍만 남아 있어. 뒷날개는 퇴화해서 작은 돌기로 남았는데, 이것이 평형감각을 유지해 주며, 끝이 봉긋한 곤봉처럼 생겼다고 해서 ‘평균곤’이라고 불러. 딱정벌레들이 쓰지 않는 날개 한 쌍을 보호용 갑옷으로 바꿨다면, 파리들은 날개 한 쌍을 평형감각 기관으로 바꾼 거지. (78쪽)
《조영권이 들려주는 참 쉬운 곤충 이야기》는 우리를 둘러싼 풀벌레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대목을 사진으로 차근차근 보여주면서, 이 풀벌레는 ‘그냥 징그러운 벌레’가 아니라 ‘지구라는 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웃’이라고 하는 대목을 글로 밝힙니다. 이러면서 사람 곁에서 쉽게 찾아볼 만한 벌레마다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주고, 잠자리나 딱정벌레뿐 아니라 모기나 파리는 어떠한 한살이로 어우러지고, 날개나 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암컷 입장에서는 쓸모없어진 수컷을 잡아먹어 새끼를 돌보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쓰는 게 더 효율적인 거지. 나중에 새끼들이 자라 먹이가 많이 필요해지면 암컷은 자신의 몸도 새끼들의 먹이로 내어 줘. (103쪽)
(벌과 파리) 암컷이 나방이나 나비 애벌레, 하늘소 애벌레 등의 몸에 산란관을 꽂고 알을 낳으면 그 안에서 알들이 깨어나 기생한 애벌레의 몸을 파먹고 자라는 거야.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지만, 벌들의 이런 행동 덕분에 식물에 해를 입히는 곤충의 양이 조절되기도 해. (107쪽)
시골집에는 집 안팎으로 벌레가 많습니다. 거미는 집안에도 집밖에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부엌에 뭐만 떨어뜨려도 어느새 개미가 찾아옵니다. 나방은 어느 틈을 비집고 들어왔는지 저녁에 불을 켜는 자리를 붕붕 납니다.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둘레에는 으레 애벌레가 나뭇가지나 나뭇잎에서 미끄러졌는지 애벌레가 기어다닙니다. 비가 온 뒤나 바람이 세게 분 날에는 애벌레 한두 마리쯤 쉽게 찾아봅니다. 마을이나 숲에서 사는 새는 바로 이 애벌레를 잡으려고 우리 집 나무를 찾아오지 싶어요.
애벌레는 자라는 동안 잎을 갉고, 번데기나 고치를 튼 뒤에는 마음껏 하늘을 날며 꽃마다 찾아들어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자그마한 풀벌레나 흙벌레는 마른 잎이나 줄기를 갉아서 새로운 흙으로 바꾸는 구실을 합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이 흙에서 나온다면, 흙에 씨앗을 심는 시골지기 손길뿐 아니라, 이 흙을 함께 돌보며 곁에 있는 풀벌레가 있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수많은 벌레가 있어서 우리(사람) 모두 밥을 기쁘게 먹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얼핏 ‘징그러운 벌레’로 여길 수 있지만, 이 작은 벌레가 하는 일이라든지 이 작은 벌레가 제 몸을 지키려고 여러 몸빛을 보여주는 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운 이웃’이 우리 곁에 있어서 지구가 푸르네 하고 느낄 만하지 싶어요. 오늘도 새로운 풀벌레를 만나면서 가만히 속삭입니다. 얘야, 네 이름은 뭐니? 2016.4.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숲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