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기쁨



  어제 하루 내내 교정종이를 붙들고 하루를 보냈다. 머리가 살짝 지끈거릴 적에는 비를 맞으면서 뒤꼍 텃밭을 손질했다. 다시 교정종이를 붙들다가 밥때가 되었다 싶으면 어설프나마 밥을 차려서 아이들이 먹도록 하고서는 밥상맡에서 밥은 안 먹고 내내 교정종이를 살폈다. 아이들이 밥그릇을 비우고 저희끼리 재미나게 노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면서도 교정종이를 넘기다가 비로소 뒤늦게 숟가락을 든다. 아이들을 재우고서도 촛불을 밝히고 조용히 교정종이를 살피다가 두 아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눕는다.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교정종이를 보면서 어젯밤에 풀지 못한 실마리를 즐겁게 풀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렇게 ‘글쓰기’를 한 뒤에 ‘글손질’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저 글쓰기가 익숙하거나 글손질을 제법 솜씨가 있도록 하니까 글을 만지는가? 이는 틀림없이 아니다. 익숙하거나 솜씨가 있대서 글을 쓰거나 만질 수 없다. ‘생각하는 기쁨’이 솟을 수 있기에 글을 쓰거나 만진다. 말을 글이라고 하는 그림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동안 내 삶과 살림과 사랑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고, 이렇게 새롭게 생각을 키우는 사이에 반짝반짝 빛나는 생각이 태어나고, 어느새 이 반짝이는 생각은 고요히 가라앉아서 내 숨결로 거듭난다. 2016.4.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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