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 반갑다 사회야 10
김현주 지음, 권송이 그림 / 사계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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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5



부지런히 일하는데 가난한 굴레에 갇히다

―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

 김현주 글

 권송이 그림

 사계절 펴냄, 2016.3.3.30. 12000원



아프리카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이야기는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유럽의 관료들이 남긴 기록에 많이 나와요. 게으르고 지식 수준이 낮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부지런함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노예 노동을 시킨 것을 정당하게 여기도록 꾸며 낸 것이지요. (40쪽)



  김현주 님이 글을 쓰고, 권송이 님이 그림을 그린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사계절,2016)를 읽으면서 가난이란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먼저, 이 책에 나오는 ‘빈곤(貧困)’은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을 뜻해요. 사회에서는 흔히 ‘빈곤’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그저 ‘가난’이라고 하면 된다는 소리입니다. 가난한 모습 가운데 먹을거리가 없는 모습은 ‘굶주림’이라 합니다. 몹시 가난한 모습은 ‘억판’이나 ‘엉세판’이라 해요. 무엇이 모자라서 어렵게 지낼 적에는 ‘몰리다’라는 낱말을 써요.



가난한 사람들은 단지 먹을 것을 사고 약을 살 돈이 없어서 어렵고 불편한 게 아니에요. 그보다 인권을 제대로 누릴 수 없어 힘들지요. (16쪽)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넉넉한 사람이 있다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요. 어느 한쪽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틀림없이 다른 한쪽에는 안 가난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한쪽에 힘없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다른 한쪽에는 힘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에요.


  가난은 무엇이 될까요. 가난하면 잘못일까요? 가난이 잘못이라면 가난하지 않은 살림은 잘못이 아닌 셈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살림일 적에 ‘가난하다’고 말할 만할까요?


  한 달에 오백만 원을 벌어서 오백만 원을 고스란히 쓰는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한 달에 백만 원을 벌어서 오십만 원을 쓰고 오십만 원을 남기는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그리고, 한 달에 십만 원을 벌랑 말랑 하지만 밥이나 옷이나 집을 손수 지어서 손수 누리기에 돈을 한 푼도 쓸 일이 없다면, 이러한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우리 겨레뿐 아니라 이웃 수많은 나라를 헤아려 봅니다. 사람들이 땅을 지어서 밥이랑 옷이랑 집을 얻던 나날에는 ‘경제발전’이나 ‘국민소득’이 모두 0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자급자족’ 사회에서는 경제교류나 상업이 거의 안 나타나기 마련이에요. 자급자족을 하면서 이웃하고 주고받는(교환) 살림을 꾸린다면, 그야말로 ‘돈 한 푼 없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이 없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이와 달리 경제발전을 이루거나 국민소득이 높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할 수 없다면, 반드시 돈이 있어야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누립니다. 자급자족이 안 되는 사회나 경제에서는 ‘돈이 있어도 가난할’ 수 있고, 더군다나 ‘돈이 많아도 가난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집가난(하우스푸어)’이 있어요. 집이 있습니다만 빚을 잔뜩 짊어져요. 그리고 ‘일가난(워킹푸어)’도 있어요. 다달이 돈을 버는 일자리는 있습니다만, 아무리 바지런히 일해도 살림살이가 뾰족하게 나아지지 않는 살림이에요.



부자 나라에서 태어났어도 가난할 수 있어요. 2011년 미국에서는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이 빈곤 상태에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23쪽)



  미국은 ‘부자 나라’일까요, 아니면 수수한 나라일까요? 한국은 ‘부자 나라’일까요, 아니면 수수한 나라일까요, 아니면 ‘가난한 나라’일까요? 미국 어린이 다섯 가운데 하나가 가난하다면, 어른도 이와 비슷할 테지요. 무엇보다도 가난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핀란드나 스웨덴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아예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이든 ‘지나치게 많이 거머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나누면서 함께 누리는 살림으로 넓게 어우러지지 못하는 지구 사회라면 ‘몇몇 대륙이나 나라’에만 가난이나 굶주림이 있지 않아요.


  어린이 인문책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가난한 여러 나라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책에서는 ‘가난한 한국 어린이 삶’까지 다루거나 짚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에도 틀림없이 가난한 어린이가 있고, 꽤 많으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가난한 살림 때문에 주름살하고 시름이 늘어요.



식량 배급소를 찾아 얻을 수 있는 죽 한 그릇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생활 터전을 함부로 빼앗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일이에요. (115쪽)



  한국이 가난하지 않은 나라가 되더라도 이웃나라가 가난하다면 한국도 이 가난을 함께 살필 수 있어야지 싶어요. 한국에서도 바지런히 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한국 아닌 이웃나라에 공장을 세워서 그 나라 사람들한테서 아주 값싼 일삯으로 한국에서 ‘무척 값싼 물건’을 쉽게 사서 쓰는 얼거리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가난하다면 가난이 있다고 느껴요. 어느 한 사람이라도 밥을 굶는다면 가난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살림을 생각할 노릇이고, 서로서로 기쁠 살림으로 나아가는 길을 아이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린이 인문책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에서도 다루듯이 ‘식량 배급소’나 ‘원조’나 ‘구호’가 아니라 ‘살림터를 빼앗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길’을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돈에 얽매이지 않아도 넉넉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살림이 되도록 정책이 서야지 싶어요. 지구별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이 손수 삶을 짓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부지런히 일하는데 가난에 갇히는 굴레가 아니라, 즐겁게 일하면서 다 함께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기쁨누리가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2016.4.2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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