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감자 - 박승우 동시집
박승우 지음, 김정은 그림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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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1



‘뿔 난 염소’도 아기 앞에서 얌전한데

― 생각하는 감자

 박승우 글

 김정은 그림

 창비 펴냄, 2014.11.15. 9000원



  박승우 님이 선보인 동시집 《생각하는 감자》(창비,2014)를 읽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박승우 님이 동시에서 들려주듯이 ‘생각 안 하고 싹이 트는 감자’는 없으리라 느껴요. 감자도 동백나무도 시금치도 콩도 ‘저마다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싹을 틔우고 새 가지를 내거나 꽃을 피운다고 느껴요. 모든 풀과 나무는 저마다 즐겁거나 기쁜 꿈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자라리라 느껴요.


  사람도 생각을 하지요. 날마다 새롭게 생각을 키우고, 언제나 새삼스레 생각을 북돋워요. 어제하고는 다른 하루를 생각하고, 어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삶을 생각해요.



뿔 난 염소도 / 아기 염소한테 / 젖 먹일 때는 / 가만히 있는다 (염소 2)


어른 염소 두 마리가 / 머리 들이박고 싸웁니다 // 아기 염소 두 마리도 / 머리 들이박고 싸웁니다 (염소 6)



  그런데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를 연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제하고 똑같거나 비슷한 하루가 되리라 느껴요.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를 연다면,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즐겁거나 기쁜 일은 좀처럼 맞이하기 어렵겠구나 하고 느껴요.


  생각하는 아침이란 ‘하루를 여는 살림’을 생각하는 아침이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스스로 생각을 지으면서 맞이하는 하루란 ‘오늘은 어제하고 다를 뿐 아니라 새롭게 피어나는 삶’이 되도록 씩씩하게 일어서려는 몸짓이라고 할 만하지 싶고요.



요즘 소는 뭐 했소 / 사료 먹었소 / 눈만 끔벅거렸소 / 심심하면 꼬리로 파리 쫓았소 / 살이 오르자 팔렸소 / 팔린 날 세상과 작별하였소 (소)


눈사람은 / 모두 다 눈사람 // 눈사람한테도 이름을 / 붙여 주고 싶어 // 내가 만든 눈사람은 / 찬우 // 이름을 밝힐 수 없는 / 그 애가 만든 눈사람은 / 민지 (눈사람 민지)



  동시집 《생각하는 감자》에 흐르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만히 살펴봅니다. “뿔 난 염소”도 아기한테 젖을 물릴 적에는 가만히 있는다는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염소한테는 뿔이 있습니다만, ‘뿔나다’는 ‘골나다’나 ‘성나다’ 같은 말씨이기도 해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달래거나 다스릴 적에는 누구라도 ‘뿔·골·성’부터 먼저 차분히 달래거나 다스릴 수 있어야 해요. 아이한테 윽박지르면서 “밥 먹엇!” 하고 꽥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은 밥맛이 떨어지겠지요.


  머리를 들이박고 싸우는 “어른 염소”를 늘 보던 새끼 염소도 끼리끼리 머리를 들이박고 싸움질을 할 테고요. 아이들이 어른들 곁에서 본 몸짓이 싸움이라면 아이들도 싸움을 할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른으로서 서로 아낄 줄 아는 몸짓이면 아이들은 ‘서로 아끼는 몸짓’을 고스란히 배워요. 우리가 어른으로서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눈길이면 아이들은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눈길’을 낱낱이 물려받아요. 뿔 난 염소도 새끼(아기) 앞에서는 얌전하다는 대목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감자가 무슨 생각이 있냐고? // 그럼 생각도 없이 / 때가 되면 싹 틔우고 / 때가 되면 꽃 피우나 (생각하는 감자 1)


엄마한테 혼나서 / 울고 싶은 날은 // 몸을 숨기고 / 기대어 울 수 있는 / 구석이 좋다 // 그때는 / 구석이 엄마 같다 (구석)



  큰아이하고 밭에서 모시풀 뿌리를 캡니다. 옥수수를 심으려고 땅을 가는데, 여러 해 묵은 모시풀 뿌리가 무척 깊고 굵어요. 처음에는 혼자 진땀을 빼며 뿌리를 캐는데, 어느새 큰아이가 호미를 챙겨서 내 옆에 앉더니 함께 뿌리캐기를 합니다. 걸레를 손에 쥐어 방바닥이나 마루를 훔칠 적에도 아이들은 어느새 옆에 붙어서 함께 걸레질을 하겠노라 합니다. 비를 들고 마당을 쓸 적에도 이와 같아요. 하나하나 가르쳐도 배우지만, 하나하나 보여주는 모든 여느 삶이 아이한테 ‘배움’이 되어요.


  ‘생각하는 감자’처럼 나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어버이’로서 ‘생각하는 어른’으로서 하루를 일굴 줄 알아야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한테 보여주는 몸짓도 생각하고, 아이한테 보여주는 몸짓이기 앞서 나 스스로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열려고 하는 새 아침이나 하루가 되는가를 생각해야겠다고 느껴요.


  생각하는 어른으로 하루를 살며 생각하는 아이를 돌볼 적에 바야흐로 ‘생각하는 어버이’가 되겠지요. 생각을 꽃피워 사랑으로 가꿀 줄 아는 어른으로 아침을 열 적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어버이’로 거듭나겠지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일이요, 언제나 새롭게 웃음을 짓는 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감자 한 알처럼, 동백나무 한 그루처럼, 구름 한 조각처럼, 바람 한 줄기처럼, 곱고 따스하게 생각을 빚자고 거듭거듭 마음을 기울입니다. 2016.4.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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