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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동사니 대장 ㅣ 동화는 내 친구 16
폴라 폭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4년 4월
평점 :
어린이책 읽는 삶 143
사랑스런 손길로 놀잇감을 아이랑 함께 지어요
― 나는 잡동사니 대장
폴라 폭스 글
잉그리드 페츠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0.3.25. 6000원
플라스틱이 없던 옛날에는 모든 놀잇감을 어버이가 손수 깎아서 아이한테 선물로 주었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아이들 모든 놀잇감은 집집마다 달랐고, 아이마다 달랐어요. 똑같은 놀잇감은 하나조차 없었고, 아이들은 오직 저 한 사람만 생각하며 어버이가 지어서 선물한 놀잇감을 무척 알뜰히 여기고 보듬으면서 자랐어요.
플라스틱이 넘치는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놀잇감을 어버이가 돈으로 사서 줍니다. 아이들은 아직 돈 흐름을 깊거나 넓게 알지 못하니, 길을 가다가 가게에서 보는 장난감을 보면 ‘저거 사 줘!’ 하면서 떼를 쓰다가 악을 쓰다가 앙앙 울기도 합니다. 사랑이 깃든 오직 하나뿐인 놀잇감을 선물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플라스틱으로 찍은 값비싼 장난감’을 쌓고 쌓아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서 자꾸 ‘다른’ 장난감을 더 얻어서 모으고 싶습니다.
모리스의 부모님은 종종 손님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모리스의 방을 보면, 한 동네에 쓰레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어 새삼 놀란다고. 또 엄마는 모리스가 잡동사니를 모으는 덕분에 거리가 깨끗해졌다고 모리스를 두둔했다. (12쪽)
클랭크 아저씨는 모리스의 수집품만큼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번은 모리스한테 캐러멜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음, 넌 물건 보는 눈이 있어. 비록 잡동사니를 모으긴 하지만. 네 마음속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단 말이야.” (25쪽)
폴라 폭스 님이 글을 쓰고, 잉그리드 페츠 님이 그림을 넣은 《나는 잡동사니 대장》(논장,2000)을 읽으면서 가만히 살림살이를 돌아봅니다. 내가 뜻했건 뜻하지 않건 우리 집에도 플라스틱이 참 많습니다. 냉장고나 세탁기 껍데기도 플라스틱이고, 셈틀을 쓸 적에 두들기는 글판도 플라스틱입니다. 볼펜 자루도 플라스틱이요, 바닥에 끼는 물이끼를 벗기는 솔도 플라스틱입니다.
밥그릇이나 수저는 플라스틱이 아닌 것으로 장만해서 쓰지만, 아이들 장난감을 하나하나 살피면 플라스틱 아닌 것이 매우 드물다시피 합니다. 짚이나 나무나 돌로 엮거나 깎은 장난감은 매우 드물구나 싶어요.
모리스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어젯밤에 어둠 속에서 팻시를 감시하느라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팻시는 모리스보다 먼저 곯아떨어졌고, 그래서 모리스의 물건을 하나도 훔쳐가지 못했다. (43쪽)
우리는 아이들한테 플라스틱을 물려주어도 될까요? 비닐봉지는 백 해가 흘러도 안 썩는다고 하는데, 안 썩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것을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늘 만지면서 놀아도 될까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돌이나 나무나 모래나 흙이나 풀이나 나무를 만지지 못한 채 자라도 될까요? 따스한 숨결이 깃든 장난감을 어버이한테서 고이 선물로 받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다른 집 얘기가 아니라 우리 집 얘기로 돌아봅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놀잇감을 내주었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일찍 깨달았든 늦게 깨달았든, 아무튼 깨달았으면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은 시골집이요, 나무를 얻기 퍽 손쉽다 할 만합니다. 그러니, 나는 손이 닿는 대로 얻는 나무를 칼로 잘 깎아서 아이하고 함께 새 놀잇감을 빚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를 만지는 기쁨이나 재미를 아이들도 느끼고 어버이인 나도 더 깊이 느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흙길이 펼쳐졌다. 트럭이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건물도, 주유소도,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푸른 산과 나무와 전선에 앉아 있는 새들뿐이었다. (92쪽)
어린이문학 《나는 잡동사니 대장》에 나오는 아이는 ‘잡동사니 모으기’를 합니다. 다만, 어른들이 보기에 ‘잡동사니’입니다. 그러면 아이가 보기에는? 아이는 언제나 ‘보물’을 모아요.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재미나게 갖고 놀 장난감을 모읍니다. 다만, 아이는 길을 가면서 둘레를 살피다가 ‘버려진 것’ 가운데에서 장난감을 찾아서 모을 뿐입니다. 버려진 매트리스도, 버려진 매트리스 용수철도, 이 아이한테는 더없이 멋지고 재미나며 훌륭한 장난감입니다. 이 아이네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언제나 한숨을 폭폭 쉬거나 잔소리를 할 뿐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아름답고 신나며 기쁜 놀잇감을 손수 지어서 누리자’는 생각까지 나아가지 못해요.
그밖에도 가죽이나 나무, 쇠붙이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많았는데, 모리스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굵은 햇살 한 줄기가 바닥에 드리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문가에 서 있었다. 건초 부스러기와 먼지가 아빠 주위를 떠다녔다. (103쪽)
“맨 먼저 뭘 할 건데?” 모리스가 말했다. “일단 물건들의 이름부터 알아내야지.” 제이콥이 물었다. “왜?” 모리스는 의젓하게 대답했다. “원래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알았어?” (106쪽)
가게에서 무엇이든 살 적마다 쓰레기가 하나씩 생깁니다. 비닐봉지가 생기고, 비닐로 된 껍데기나 싸개가 생깁니다. 다 쓰고 난 빈 통도 쓰레기가 됩니다. 이를 되살리면 재미난 놀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만, 모든 생활쓰레기를 되살리기는 벅찰 만해요. 게다가, 생활쓰레기를 되살리는 길을 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생활쓰레기가 아닌 살림을 가꿀 적에 더욱 재미나면서 알차리라 느껴요. 손수 짓고 가꾼다면, 손수 아끼면서 보듬을 수 있다면, 이런 살림살이에서는 근심이나 걱정이 차츰 가시겠지요?
어린이문학 《나는 잡동사니 대장》에서는 아버지가 크게 다짐을 합니다. 이대로는 도무지 안 된다고 여겨서 집을 옮겨요. 도무지 더 견딜 수 없기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지요. 마당이 있고 헛간이 있는 시골에서 살기로 해요. 아버지는 일터로 오가는 품이나 겨를이 많이 든다고 해도, 아이를 헤아려서 시골살이를 다짐합니다. 이러면서 시골집 헛간을 통째로 아이한테 주어요. 시골집 헛간에 있는 모든 ‘농사 연장’을 아이가 마음껏 만지면서 ‘새로운 놀이살림’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 책에 나오듯이 오늘날 도시에 있는 집집마다 ‘아이가 흙과 연장을 마음껏 다룰 시골집을 찾아서 새로운 길로 떠나기’를 하기는 수월하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수월하지 않더라도 못할 만하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해 보면 되지요. 그리고 아주 조그맣더라도 어버이 스스로 놀잇감을 깎고 다듬어서 아이하고 함께 놀 수 있어요. 뜨개질로 인형을 뜨고, 나무를 깎아 놀잇감을 지을 만해요. 아이더러 ‘잡동사니 그만 모아!’ 하고 다그치기보다는 ‘우리 함께 멋진 놀잇감을 손수 지어 볼까?’ 하고 물어보는 길이 한결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살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016.4.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