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12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19



생각을 지어 새로운 길을 걷는다

― 은여우 12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1.30. 5000원



  씨앗에서 싹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면 무척 재미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작은 씨앗을 그저 땅에 묻을 뿐이지만, 이 작은 손짓으로 새로운 숨결이 깨어나요. 더욱이 작은 씨앗 한 톨은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위로 옆으로 퍼지면서 꽃을 피우지요.


  땅에 씨앗을 심어서 틔우듯이, 사람은 마음에 생각을 심는다고 느낍니다. 작은 씨앗이 고운 꽃을 피워서 넉넉한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작은 생각 한 가지에 고운 꽃을 피워서 너른 꿈을 이루리라 느낍니다.



“신을 믿고 섬기는 일, 인간과의 사이를 이어주는 일, 신과 함께 사는 일. 나도 줄곧 집에서 느껴 온 것에 대한 답이 나온 것 같아서.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곳을 너와 함께 보며 갈 수 있다면.” (12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열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열둘째 권에서는 ‘일본 신사’를 돌보는 일을 맡은 아버지가 어떤 꿈을 품고서 이 일을 했는가 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에는 ‘일본 옛술’을 담가서 마을에 파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내였고, 그저 집안일을 잇겠거니 하고 여기면서 살다가 ‘신사집 딸’한테 마음이 끌려요. 어릴 적부터 ‘나중에 집안일을 물려받겠구나’ 하고 느끼면서 ‘내 앞날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살던’ 아이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만나면서 비로소 생각을 처음으로 품습니다. 어떤 생각을 품느냐 하면 ‘그냥 이대로 아무 생각이 없이 집안일을 물려받아도 내 삶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품어요. 이러고 나서 이 생각을 잇고 가꾸고 가다듬고 돌아보면서 ‘내가 스스로 여는 내 삶길은 무엇일까?’ 하고 다시 스스로 수수께끼를 냅니다.



“아빠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 아직 먼 미래의 일이고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알고 계시겠지. 뭐, 어떻게든 될 거야.” (51쪽)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한때의 감정인지는 지금 본인이 누구보다 깊이 생각하고 있겠죠. 그러니 어떻게 되든 이쪽도 그저 지켜볼 생각입니다.” (56쪽)



  어버이가 잘 가꾸어 놓은 집안일을 물려받는 일은 이 일대로 즐거울 만합니다. 아이가 어버이하고는 다른 길을 새롭게 갈고닦으면서 씩씩하게 나아가려는 일은 이러한 일대로 즐거울 만해요. 어느 쪽이든 즐겁고, 어느 길이든 기운을 내어 나아가면 돼요. 집안일을 물려받더라도 이 집안일에 어떤 넋이 깃들었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할 노릇이고, 내 길을 내가 새롭게 닦으려 한다면 이러한 삶에서도 스스로 어떤 꿈을 가꾸면서 웃음꽃을 피우려 하는가를 생각할 노릇이에요.



“유코는 이곳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기에 제게도 소중한 곳이 됐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둘이 함께 이곳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88쪽)


“인간은 태어날 때 신의 세계에서 왔다가, 죽으면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하거든. 할머니도, 신이 되어서 지켜보고 계실 거야. 우리 모습도.” (139쪽)



  생각을 지어서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생각을 짓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못 걷기도 하지만, 이냥저냥 흘러온 길에서도 기운을 내거나 웃음을 틔우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도 생각을 해야 밥맛이 나요. 옷 한 벌을 빨 적에도 생각을 해야 한결 깔끔하면서 고운 옷으로 보듬을 수 있어요. 가벼운 놀이를 할 적에도 생각을 해야 신나게 웃고 뛰놀 만해요.

  만화책 《은여우》는 열두 권에 이르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톡톡 튀거나 대단하다 싶은 대목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을 땅에 심어서 가꾸는 흐름처럼, 우리가 마음에 심을 고운 생각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스스로 기운을 내고 활짝 웃느냐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주어진 길대로 가든, 새로운 길을 내든,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자리에 꿈씨를 심을 수 있으면 됩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마을에서든, 아이들은 슬기로운 어버이 곁에서 삶을 생각하는 기운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2016.4.1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