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 앉아서 읽는 책



  아침에는 마을 할배가 경운기에 땅갈개를 싣는 일을 거들었다. 땅갈개가 망가졌는데 이튿날 이웃마을에 농기계를 고쳐 주는 사람들이 온다고 해서 오늘 미리 실으신단다. 할배도 할매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좀처럼 힘을 쓰기 어렵다면서 나를 부르셨고, 나는 힘껏 일을 거들었다. 일을 거들고 보니 젊은이가 힘을 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을 할배는 “애들은 많은데 다 도시로 나갔고 ……” 하신다.


  낮에는 큰아이하고 밭을 일군다. 아이들하고 곁님이 좋아하는 옥수수를 이레씩 틈을 두면서 마당하고 밭 가장자리에 차곡차곡 심는다. 해바라기씨를 심을 자리를 골라 놓고는, 씨앗은 이튿날이나 그 다음 날에 심기로 한다. 엊그제 갈아서 씨앗을 심은 자리에는 새로 물을 한 번 주고는, 열흘 즈음 앞서 심은 콩에서 돋는 싹을 한참 들여다본다.


  뜨거운 볕이 살짝 기울 무렵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서 면소재지에 간다. 일요일 늦은 낮, 면소재지 초등학교 운동장은 조용하다. 두 아이는 집에서도 내내 놀았지만 학교 놀이터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논다. 놀이를 할 적에는 그야말로 쉴 겨를이 없이 내처 논다.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책을 손에 쥔다. 두 아이가 놀이터에서 이리 달리고 저리 뛰는 동안 바지런히 책을 넘긴다. 해가 기울 즈음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차리랴 집 안팎을 치우랴 아이들을 재우랴 하다 보면 그야말로 하루 가운데 책을 손에 쥘 틈은 매우 적다고 할 만하다.


  그래도 밥을 짓는 동안 국물하고 밥물이 끓는 사이에 살짝살짝 몇 쪽씩 넘긴다. 밑반찬이 다 떨어진 날은 이마저도 못하지만, 밑반찬을 넉넉히 해 두어서 국만 끓이면 될 적에는 밥상을 차리는 틈에 열 쪽이나 스무 쪽쯤 읽을 만하다.


  저녁을 먹이고 밥상을 치운 뒤에 등을 톡톡 치면서 또 몇 쪽을 펼쳐 본다. 책이란 무엇일까. 집안일이나 집밖일을 하면서 바쁜 사람들한테 책이란 무엇일까. 평균독서량 같은 통계를 말하기도 하는데, 종이책을 읽는 일이란 그야말로 ‘일’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틈을 내고 쪼개고 마련해서 새롭게 힘을 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 또는 즐길 수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2016.4.1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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